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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스통영=양문석 통영정책연구원 이사장] "한센인 정착촌 환경개선은 낡은 불법 건축물과 축산 분뇨 등의 환경문제뿐 아니라 한센인들의 생업, 가족과의 의절 여부 등 생활 전반에 대한 보장이 고려돼야 한다."

국민권익위는 2010년 6월 한센인 정착촌이 있는 전국 자치단체와 당시 국토해양부에 주거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라는 권고 공문을 내려보냈다. 이 공문의 일부.

지금은 사라져버린 통영 애조원, 여기에 지으려는 1257가구 규모의 대규모 아파트 사업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관이다. 한때 나환자촌으로 불린 한센인의 삶터 애조원 자리에 아파트 단지를 건립하는 이유를 추적해보면 지금 전개되는 현실과 너무 달라 당황스럽다. 2010년 6월 국민권익위가 '한센인 권익강화 및 정착촌 환경개선 방안'이라는 공문을 전국 자치단체와 당시 국토해양부에 보내면서 이 사업은 시작된다. 국민권익위가 보낸 공문의 핵심은 분명하다. 낡은 불법 건축물과 축산 분뇨 등의 환경문제뿐 아니라 한센인들의 생업, 가족과의 의절 여부 등 생활 전반에 대한 보장이다.

그런데 이것을 김동진 통영시장과 시청의 당시 도시과 직원들은 기막히게 '오독'해낸다. 누가 봐도 한센인의 권익 강화와 정착촌 환경개선이며 공문의 제목도 이것이다. 한데 통영시장과 담당 공무원들은 이 공문 내용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사업'으로 둔갑시키는 '의도적 오독'을 감행한다. 일견 대단한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의도적 오독'의 시기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시절이다. '비지니스 프랜들리(기업 친화)'가 아무리 이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었다고 하더라도 한센인 복지 관련 방안을 이렇게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오독'해낼 수 있을까. 국정 운영철학을 완벽하게 수행했다고 손뼉을 쳐줘야 할지 아니면 의도적 오독을 감행함으로써 사업의 성격을 왜곡 훼손했다며 뺨을 때려줘야 할지.

낡은 불법 건축물을 새롭고 합법적인 건축물로 어떻게 전환할까? 축산 분뇨 등 한센인의 건강과 삶의 질에 직결되는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까? 해소과정에서 생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이며, 생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장 적게 미치는 대안은 무엇일까?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정은 아마도 이런 질문지에 답을 적어가는 과정일 터. 하지만 김동진 시장과 통영시 당시 도시과 직원들은 이에 대해 기상천외한 해법을 내놓는다.

'낡은 불법 건축물과 축산 분뇨 등 환경문제'는 포크레인으로 싹 밀어버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면 되고, '한센인들의 생업, 가족과의 의절 여부 등 생활 전반에 대한 보장'은 일정한 보상비를 지급해서 쫓아내는 것이었다. 자기들끼리는 '쾌도난마'라고 '창의적 행정'이라고 자축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그 땅에 의지하여 생업을 일구어 온 그들이 그 땅을 떠나면서 받은 알량한 보상금으로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들이 터전을 버리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복지 시스템을 우리 사회가 제대로 마련해 두고 있는가? 통영시는 과연 쫓겨나는 한센인을 중심에 두고 이런 것을 생각해 봤을까. 불문가지다. 또 한 번 떡고물이 뚝뚝 떨어지는 대형 개발사업을 성사시켰다고, '또 하나의 가족' 같은(?) 개발사업자에게 큰 돈벌이를 안겨 줬다고 '행복'해 하지는 않았을까.

<애조원마을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협약서>가 무슨 대단한 행정 비밀이라고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놀이를 통영시장이 나서서 했다. 심지어 협약서 내용 중에도 '협약내용은 도시계획변경 수립 전까지 비밀을 유지'하기로 합의한다. 더 숨 막히는 대목은 <애조원마을 도시개발사업을 위한 협약내용 - 통영시와 (주)동호파트너스>이다. 2항을 보면 '도시개발사업의 인허가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그에 필요한 전담부서를 지정한다'고 협약한다. 행정의 적극적인 지원 대상이 한센인에서 개발사업자로 바뀌고, 내용도 적극적에서 노골적으로 바뀐다.

더 기막힌 대목도 있다. 6항에서는 '통영시는 요트계류장 건설이 필요할 경우 향후 전면 바다의 어업권을 신규 허가하지 아니하며, (주)동호파트너스에서 계획한 요트계류장 활용에 적합하도록 주차장 부지를 적법하게 확보하여 (주)동호파트너스에 매각한다'고 적는다. 바다와 갯벌을 생업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어민들은 통영시민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요트 정도는 갖고 있어야 통영시민으로 대우해 준다는 선언이요 특혜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특혜 뒤에는 '검은 돈'이 있었고, 밝혀지면 준 자와 받는 자는 '수갑'을 찼다. 검찰과 경찰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터 잡고 살던 한센인들이 이곳을 떠나 어떻게 살든 말든, 원문성이 존재하든 말든, 문화재가 훼손되든 말든, 동원중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습권과 조망권이 침해되든 말든, 원문고개를 넘어오든 시민들의 추억이 말살되든 말든, 1257가구의 입주로 인한 교통 혼잡이 시민들의 불편함을 가중하든 말든, 김동진 시장과 통영시 당시 도시과 직원들은 화끈하고 노골적으로 개발사업자들의 이익을 대변, 실현해 주고 있다. 권익위가 제안했던 '적극적인 행정지원'을 한센인에게 한 것이 아니라 개발사업자에게 해 준 이들, 한센인들을 제외한 이 글의 등장인물들인 통영시장 당시 도시과 직원 그리고 개발사업자들이 부디 행복해야 할 텐데. 한 번 지켜보자.

통영시민에게 비밀로 부친 그들만의 협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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