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인사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9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최윤석 오마이뉴스
검찰이 5년을 구형한 사건을 재판부가 가뿐히 무죄로 평결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고, 여러차례 피의 사실을 흘리기도 한 사건에 대해 기본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유무죄에 대한 최소한의 판단을 못할 지경이라면 가히, 국가적 혼란 사태라고 할 만하다.

최근엔 검찰 스스로 지명수배를 내려놓고 잡지 못하다가 시민의 제보를 통해서야 잡게 된 칠성파 두목을 검찰을 스스로 풀어줬다. 유죄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했다. 경위야 어찌되었건 올바른 태도이다. 기각 될 기소를 남발하면 안 된다. 그건 신뢰를 떨어뜨리고 법치를 조롱의 대상으로 만든다. 더디더라도 완전에 다가서야 한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만.

각설하고, 한국에서 가장 호감을 샀던 검사 가운데 하나였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이 사건을 두고 '검사의 치욕'이라고 했다. 한 때 그가 검찰총장을 원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적극 지지한다. 모래시계 검사의 메시지는 간명한 것이다. '쪽 그만 팔고, 쫄리면 이제라도 죽으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새삼스러울 건 아니지만, 검찰의 무능이 또 다시 정권에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지금, 시국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말은 '한명숙 무죄, 검찰 유죄'이다. 하지만 이전의 사례들(미네르바, PD수첩, 박원순 명예훼손, 용산 수사 기록 거부 등)과 달리 이번의 경우 지방선거를 채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다. '한명숙 무죄, 검찰 유죄'의 외침은 한나라당에게 '못 살겠다 갈아보자' 만큼이나 무섭고 가혹하게 들릴 것이다.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야당의 유력 정치인을 향해 '부패'의 올무를 펴는 일은 쉬운 일처럼 보였다. 살아있는 권력이 손 안대고 국면을 전환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 작렬했다. 피의사실을 고루 언론에 나눠주는 일은 편안해 보였고, 기사를 키워가는 언론의 솜씨는 야무졌었다. 권력형 비리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정파를 가리지 않고 값싸게 피었다가 또 지는, 널린 것이기에 큰 뒤탈도 없어 보였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는 믿음은 한국 정치의 신화다.

그런데 이 간단해 보이는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적절한 시점에 걷으려 했던 올무가 죽은 권력은 옭아 메지 못하고, 살아있는 권력의 발목을 덮치고 만 것이다. 한명숙을 잡으려고 시작한 수사는 지방선거를 삼킬 기세이고 자칫 서울이 날아간다면 김준규 검찰총장은 방을 빼야 할 것이다.

"어쩜 이렇게까지 무능할 수 있느냐는 탄식과 무능한 주제에 또 어쩜 이토록 무모하기까지 하느냐"는 조롱이 검찰 위로 겹쳐지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조차 검찰이 한명숙 선거운동에 작심했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정도다. 검찰이야 말로 진정 고단수의 'X맨'일지도 모른다는 기괴한 유머가 인터넷을 물들이고 있고, 급기야 범정부 차원에서 혹시 모를 차기 대통령 한명숙을 제어하기 위해 미리 서울시장 한명숙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제법 진지하게 그의 나이와 선거 연도를 비교한 걸로 봐서 영 농담은 아니었지만.

이 와중에 '별건 수사'의 방식으로 새로운 혐의를 쫒고 있으니 무능한데다가 무모하고 게다가 졸렬하기까지 하다면, 어찌 해야 하는 것인가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했다. 한 마디로 이보다 나쁠 수 없는, 한명숙을 위한 검찰이다.

1편 보다 나은 속편 없다던데, 사건의 서사까지 거의 판에 박았다. 무죄 판결을 받은 사건이 '오찬'에 중점을 뒀던 것이라면, 이번에는 '만찬'을 문제 삼고 있다. 이미 내러티브를 대강 예측할 수 있으니, 보여줄 건 스케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밥상의 규모를 키웠다. 1편에서 5천만 원이던 수뢰 혐의를 2편에선 10억으로 키웠다. 특수 2부는 장난이었다며, 특수 1부를 등장시켰다. 동일한 피의자, 엇비슷한 정황을 이어 맡게 된 특수 1부가 과연 전에 없던 어떤 기상천외한 비약을 보여줄 것인지 자못 궁금할 따름이다. 참고로 특수 1부의 활약을 담을 속편에 대한 반응과 기대는 이미 싸하다.

언론 장악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여론 조작은 가능하다고 믿는지 모르겠지만, 끝내 참 모질고 끈덕지게도 괴롭힌다는 것 이상을 보여주긴 힘들다. 조중동 데스크를 모시고 재판을 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행여, 검찰의 캐비닛에 한명숙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어떤 결정적 자료가 있는지 모른다. 있다면 횡설수설 하는 증언이 아니라 그럴 지도 모른다는 추론이 아니라는 그걸 좀 내놓았으면 한다. 그럴게 아니라면 그만두어야 하는데 그만두는 것이 그냥 가기보다 어려워 이렇게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보길 바란다. 권력에게 종속되어있다거나 특정 정파에 편향적이란 얘기는 않겠다. 진정, 안쓰러워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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