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삼파전을 예상했던 수목 드라마전쟁이 다소 싱겁게 결판이 나는 분위기다. 1강 2중의 구도가 되버릴 듯 한데, 신데렐라 언니가 그 1강임은 누구나 짐작할 것이다. 신데렐라 언니는 짜증날 정도로 흠이 없는 문근영의 케릭터와 연기로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서우에 대한 시청자의 오해와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 용수철처럼 솟구칠 잠재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의 추이는 드라마 속사정도 그렇거니와 오히려 바깥에서 작용할 변수가 더욱 커 보인다.

각각의 드라마가 4회까지의 전개를 모두 보여주었다. 신데렐라 언니의 두 자매는 8년 후로 순간이동을 했고, 덜렁이 쑥맥녀 박개인은 드디어 여자임에도 여자이지 못했던 자아를 파악하고 여자 찾기의 화두를 잡았다. 검프. 대략 검프도 진짜 검사가 되기 위한 마혜리식의 동기를 강제했다. 이제부터 수목드라마는 우열반 편성이 시작될 것이다. 기대감과 호기심을 누가 더 주느냐에 따라서 다음주부터의 시청률은 좀 더 차이를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싱겁기는 하지만 신데렐라에 줄서는 것은 당연하다. 아주 많은 이유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신데렐라가 타 드라마에게 압도적으로 이기고 가는 한 요소가 있다. 바로 화면의 미학이다. 아주 처음부터 신데렐라 언니는 소중한 배우들의 대사를 뭉텅뭉텅 잘라내고 그 자리에 말없이 그림만 채워넣었다. 불과 4회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신데렐라는 스토리를 이어주는 사건의 징검다리보다도 몇 컷의 인상적인 화면들이 장기기억 저장고에 입력되었다.

신데렐라 언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무대사의 화면들은 배우들의 대사로 말해도 좋지만 그것을 절제한 여백이 존재한다. 그 여백을 통해 케릭터들과 시청자 간의 공명이 이루어지고 분명한 대사보다 보다 세련된 정서적 전달을 받게 된다. 그런 결과 대사 백 마디보다 짧은 몇 초의 근사한 화면들은 연기하지 않아도 연기자에게 유리한 정서를 보충하게 해주고 있다.

대사를 쫓아다니는 앵글은 답답하다. 그러나 신데렐라 언니의 화면은 대사를 그 안에 말풍선처럼 작게 녹여내고 있다. 화면에 말없이도 감정이 담겨 있다. 보이는 라디오같은 실사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드라마들과 대별되는 요소이며 신데렐라 언니가 말없이 시청자를 붙들어매는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다.

KBS가 요즘 드라마는 잘 만들고 있다. 추노의 레드원 카메라가 무협의 동작들을 역동적으로 잡아냈다면 신데렐라 언니는 동화에 발상한 드라마답게 서정과 서경의 포커싱이 유려하다. 3,4회에는 애니메이션 기법도 살짝 동원시켜서 시청자로 하여금 동화가 원전임을 잊지 말아달라는 애교도 보태고 있다.

배우가 자기의 모든 것을 대사로만 해결한다면, 그것은 연기라기보다는 보도나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일이다. 더욱이 연기자라고 해서 연기로 모든 것을 다 표현해내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 감독들이 적절한 장소들을 찾아내기 위해 발품을 파는 것이고, 드라마 미술이 계산적이어야 하며 그것을 담아낼 유능한 카메라 감독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신데렐라 언니의 카메라가 빚어내는 화면의 미학은 아주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점수를 매기자면 적어도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으뜸으로 치고 싶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를 뒷받침해주는 화면의 보조적 역할에 충실하고 대단히 섬세하다. 이렇듯 배우들의 속사정 알아주는 카메라가 참 고마울 것이다그래서 신데렐라 언니는 느긋하게 등 기대고 관조하며 쉴 틈이 있어 좋다. 그것은 시청자를 세련되게 해준다.

지금까지 방영된 부분들이 모두 사전제작이라 또 가능했을 것이다. 사전 제작은 정말 중요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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