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사라진 관용어가 몇 가지 있다. 예컨대, “신문에서 봤다” 혹은 “테레비에서 그러더라” 등의 말은 아주 연세가 많은 분들조차 쓰지 않고 있다. 사인들 간의 이견이 발생했을 때 보이지 않는 심판 역할을 하던 신문과 방송이 이제 그 역할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관이나 학계가 좀 조사를 해볼 일이겠지만, 지난 9년을 지나면 굳어졌을 것이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이번 주 시사주간지 시사IN이 조사해 발표한 언론 신뢰·영향력 순위에서 JTBC가 기존 부동의 1위 KBS를 큰 차이로 따돌린 것이 간접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단순한 순위변동은 아니다. 보수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공영방송의 뉴스가 더 이상 뉴스로서의 가치를 상실했거나 최소한 그런 과정에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야 한다.

MBC와 SBS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전보다 더 추락한 신뢰도에 초라한 모습만 남았다. 출범 당시 지상파들이 무시하고, 더 심하게 말하자면 ‘쓰레기방송’이라고 불리던 종편 중 한 곳 때문에 지상파들은 이미 모든 보도의 가치를 상실한 셈이다. 그중 민영방송인 SBS가 MBC에 뒤진 것을 보고 한 네티즌은 “MBC에 밀리다니”라고 혀를 차는 현상은 이 시대의 공영방송이 가진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MB 국정원 '언론장악 문건' 의혹 (PG) [연합뉴스=자료사진]

이들 지상파 방송들의 언론으로서의 역할 포기는 최근 봇물 터지듯이 드러나는 MB정부의 국정원 게이트가 반증해준다. 매일 터져 나오는 특종은 그래서 특정 언론만 연일 ‘본의 아닌 단독보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9년간 언론들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한 직무유기고, 알았다면 부역이다.

권력을 감시하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시민사회가 용인한 본연의 의무를 내팽개친 언론으로 인해 세간에서 “신문에 났다” “테레비에서 그랬다”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9년 간 언론의 모습은 ‘받아쓰기’에 급급한, 더 나아가 ‘형광등 100개’가 상징하는 정권의 시녀 역할뿐이었다. 티비에서 하는 말을 철석같이 믿던 노인들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지난 정부들의 적폐는 파도 파도 끝이 없다. 그런 사실들은 고스란히 언론들의 태만을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그럼에도 반성은 없다. 그나마 공영방송 두 곳은 정권교체와 그 이전의 촛불시민혁명에 용기를 얻어 공정방송을 쟁취하고자 파업으로 나서고 있어 희망을 가질 수 있다지만 그밖에는 이렇다 할 반성과 사과가 없다. 오히려 과거정부의 적폐를 은근히 감싸려는 시도를 엄폐물 삼아 숨으려고 한다.

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KBS·MBC 공동파업과 언론노조 총력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적폐청산이 시대정신이라 하더라도 이에 동의하지 않는 부류는 반드시 존재한다. 부정한 언론이 생존하는 방법은 국면을 피장파장으로 만드는 데 전력을 쏟는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들을 보면 적폐청산과 정치보복을 섞어 짬뽕으로 만들고자 무던 애를 쓰는 것이 훤히 보인다. 다만 시민들이 그 의도와 진실을 모를 것이라고 믿는 오만과 무지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요즘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본다는 한 방송에는 매일이 국정원 혹은 지난 정권들의 부정과 의혹들이 톱뉴스로 오르고 있다. 그 특종이 지난 9년간의 언론에게 하는 말이 따로 있다. 그것을 듣지 못하면 이미 죽어버린 신문과 뉴스의 가치는 다시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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