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미국 동부 해안선을 따라 키웨스트, 플로리다를 잇는 미국 1번 국도(Route 1)는 1936년 세계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도로였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로버트 크레이머 감독의 눈으로 본 미 1번 국도는 미국에서 오래되고 낙후된 지역의 하나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 1번 국도>

한동안 미국을 떠나 방랑자처럼 살았던 크레이머 감독은 자신이 예전에 만든 극영화 <닥의 왕국>(1987)의 주인공이자 감독의 분신 닥(폴 막이작 분)을 내세워 미 1번 국도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고자 한다.

제목 그대로 <미 1번 국도> (Route One USA, 1989)를 다루고 있는 영화. 감독은 1930년대만 해도 가장 번성한 도로였으나 50년이 지난 1988년에는 고속도로 옆의 낡고 허름한 도로가 된 '미 1번 국도'를 바라보고자 한다.

감독의 관심사는 도로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낙후된 도로 옆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을 떠나 유럽을 떠돈 지 10년 만에 그토록 그리워하던 고향으로 돌아온 크레이머 감독은 그가 오래 살았고 잘 안다 생각하는 뉴욕을 등지고 자신이 잘 모르는 미 1번 국도 주변을 떠돈다.

1988년 크레이머 눈으로 바라본 '미 1번 국도'는 훗날 지어진 고속도로 옆에서 나란히 지역과 지역 사이를 잇는다. '미 1번 국도' 지역을 그저 낙후된 지역으로만 여겼던 크레이머 감독은 약 5개월가량 주행 끝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거를 거니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국의 진솔하고 역동적인 단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245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미 1번 국도 주변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카메라로 기록한 감독은, 그들을 통해 레이건 시대를 살고 있는 미국을 보고 의사로 설정된 닥을 통해 미국 사회를 검진하고 관찰하고자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미 1번 국도>

크레이머 감독의 분신인 '닥'이 현실을 살고 있는 '미 1번 국도'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 <미 1번 국도>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두루 오간다. '미 1번 국도' 주변을 살피는 크레이머의 카메라는 유려하면서도 그가 바라보는 미국의 80년대를 낱낱이 살핀다.

닥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내세워 '미 1번 국도' 주변을 바라보는 것으로, <미 1번 국도>는 레이건 이후 신보수주의 물결로 물든 미국 사회를 해부하고 고찰한다. 이러한 현실을 목소리 높여 비판하는 대신, 카메라를 든 크레이머는 80년대 후반 미국 사회를 바라보고 조용히 응시한다. 카메라를 통해 기록된 그 주위의 현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사색적인 영화다. 9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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