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록의 전설 편은 보는 이에 따라서 평가가 엇갈렸을 것이다. 김종서가 닦아놓은 예능록커의 길을 이어받은 김태원은 그나마 시청자 눈에 익었지만 록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도대체가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은 출연진들이었다. 백두산의 유현상은 그나마 트로트를 부른 적이 있기도 하지만 한동안 티비를 떠나있었던 터라 낯설기는 다른 멤버들과 그다지 다를 바 없었을 터다. 그렇지만 나이 좀 되는 시청자라면 향수에 젖을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김태원과 유현상 두 사람 위주로 가리라 예상했지만 방송 편집은 가능한 전 멤버에게 고루 분량이 주어졌다. 그중에서도 방송출연을 위해서 단체로 퍼머까지 했다는 백두산 쪽이 좀 더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방송이 끝난 후 실시간 검색어에 오랫동안 오른 사람은 김태원과 함께 환상적인 기타 씬을 보여주었던 백두산의 김도균이었다. 그러나 그의 기타리스트로서의 면보다는 미스코리아 출신 사촌 여동생 전혜진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일 뿐이었다.

놀러와 작가들의 정보요원을 뺨치는 실력에도 찾아내지 못(했거나 알고도 지나친)한 김도균에 대한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물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그 가치를 알고 호응해준다면 미래에 더욱 빛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먼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록과 마찬가지로 이제는 가요사의 넘겨진 페이지가 된 포크의 전설 한대수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 이우창과 함께 김도균은 삼총사라는 음반작업에 뛰어들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 셋이 모여서 하나의 음반에 각자의 영감에 셋의 호흡을 불어넣은 대단히 이색적인 음반이었다. 물론 국내 5대 음원 사이트라도 대부분 음원이 없을 정도로 대중성과는 담 쌓은 완벽한 마니아 음악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석장으로 구성된 이 음반에 세 사람은 공평하게 한 장씩의 음악을 담았다. 각자 자기만의 독립적인 음악 공간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서로의 작업에 품앗이를 한 공동창작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속에 김도균이 담은 것은 다름 아닌 국악과 일렉트릭 록기타의 접목이었다. 이후 그가 국악퓨전그룹의 대표격인 슬기둥을 만나 꾸준히 작업한 것이 바로 기타 산조이다. 이전에 작은거인 김수철이 있어 영화음악 등을 통해 대중 친화력을 높였다면 김도균은 대중성보다는 음악적 깊이를 더 추구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포크계의 거목 한대수를 만나 갑작스럽게 시도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훨씬 전부터 혼자서 국악에 대한 공부와 수련을 쌓아가던 김도균에게 베이시스트 배찬우와 드러머 박동식이 합류하여 1999년 김도균 그룹을 결성했다. 한대수와의 작업에는 김도균만 공식 가담했지만 2002년에는 정중동이라는 김도균그룹의 음반을 내놓았다. 이 정중동 이너북에 그의 오랜 고집의 단면을 잘 나타내주는 글이 있어 옮겨와 본다.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니면 평생이 걸릴지 모르는 모험이지만, 우리의 젊음을 바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 큰 게임이다. 때로 주변에서 비웃음을 치거나 우리를 이상한 사람처럼 보는 눈길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럴 때마다 10년 후에 보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아무도 우리의 노력을 관심 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우리 셋이 함께 하는 4년간의 긴 연습과 대화의 시간은 음악의 본질, 새로운 음악의 미래를 찾아가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 퓨전국악그룹 슬기둥과 협연하는 김도균

록 콘서트보다는 국악그룹 슬기둥과의 협연으로 더 자주 대했던 김도균의 기타는 국악 용어인 '산조'라는 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깊이와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물론 김도균 말고도 임동창의 피아노 산조가 다른 쪽 존재했고 그렇게 지속적인 천착은 아닐지라도 서양음악 작곡가들에 의해서 자주 시도되는 것이 산조라는 장르이다. 그러나 피아노의 임동창과 함께 김도균의 산조는 임시로 빌려와 쓰는 일회성이 아닌 그들의 음악인생이 모두 담긴 진짜 산조라고 할 수 있다.

놀러와 때문에라도 불현듯 록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거나, 더 나아가 록과 국악의 세련된 접목이 궁금하다면 정중동이나 혹은 삼총사 음반을 찾아 듣기를 권하고 싶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렉트릭 산조부분은 김도균의 국악을 잘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 모두에게 음악이라는 보편성으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완성도를 전해줄 것이다. 필자의 경우 김도균의 음악을 다른 것과 믹스해서 듣기도 한다. 김도균+김도균 혹은 김도균 + 국악 등등의 다양한 조합의 욕구를 자극한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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