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소위 'LG의 문제'라는 것이 터졌다. 시즌 개막 단 일주일 만이고, 여태 2승 밖에 올리지 못한 이른 시점이다.

무엇보다 우선, 표현이 참 재밌다. 박종훈 감독이 무엇을 일컬어 'LG의 문제'라고 한 것인지를 더 찾아보니, 그것은 "개성이 강한 선수들의 성향"이라고 한다. 참 애매하고도 모호하여 알다가도 모를 그래서 더욱 재밌는 표현이다.

'LG의 문제'라는 표현은 누구도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거나 혹은 파악할 순 없는 표현이다. 하지만 야구를 좀 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즉각적으로 그 표현이 갖는 뉘앙스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이데일리의 야구 기자인 정철우 기자가 네이트 <스포츠Pub>에 기고한 "LG가 정신력이 문제라고?"라는 기사를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기사의 착상은 몇 년 전 두산 선수들 사이에서 제기된 소문의 진상을 밝히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 소문은 유치하게도 '잠실구장의 밥이 LG가 홈경기일 때 더 잘 나온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단다. 공동계약이기에 그럴 수 없다. 이 소문의 진상을 추적하며 정 기자는 이른바 '도련님 야구'라는 LG를 향한 비난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LG의 '전력이 약했던 것이 먼저이지 절대 나약하거나 이기적이어서 LG가 못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꼬집는다.

"LG의 변신은 모든 죄를 ‘선수들의 정신력’에 뒤집어씌우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 기자의 지적은 현재 상황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이다. 그렇다. 애초 이 어처구니없는 에이스의 강등을 보며, 이것이야 말로 참으로 글러먹은 한국적 리더십이란 생각이 들었다. 박종훈 감독이 보기에 LG에 필요한 것은 '투지'란다. 그러나 여기에는 세상 모든 조직에는 다 투지가 필요하다는 것이 생략되어 있고, 선수들의 '투지'를 핑계 삼는 것보다 더 편리한 패배의 변명은 없다는 것은 간과되어 있다.

▲ 4월4일 잠실 넥센 히어로즈전 2회초 박종훈감독이 마운드에 올라가 흔들리는 봉중근을 안정시켜 주고 있다. ⓒLG트윈스 홈페이지

그래서 박종훈 감독은 '투지'를 위해 팀의 에이스를 본보기로 활용하여 단죄했다. 얼핏, 읍참마속으로도 보이는 이 감동적 스토리에는 그러나 사정 상 등판할 수밖에 없었던 에이스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들어있지 않다. 등판 내용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단지, 독단적 절대자인 감독이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이것은 학급이 게으른 것이 문제라며 반장을 나무라던 그 시절 모든 지리멸렬한 담임들과, 당연히 어수룩할 수밖에 없는 1학년의 행동거지를 핑계로 2학년을 소집해서 '뺑이'를 돌리던 어느 예비역 마초들의 익숙한 훈육 방식이다.

물론, 어떤 감독이라도 개막 일주일 만에 에이스를 2군으로 내려 보내기란 쉽지 않을 선택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그 기간 동안 팀이 연패의 분위기로 휘청거리며 단 2승 밖에 올리지 못했음을 감안하면 더욱 초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LG 선발진에서 6이닝 3실점의 퀄리티 스타트를 그나마 이어갈 수 있는 투수는 봉중근이 유일한데, 분명 속이 쓰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해의 이유가 될 순 없다. 더군다나 오늘 알려진 이상훈의 폭로나 이전에 있었던 이형종의 넋두리를 보면 LG의 상황은 글러먹은 한국적 리더십 중에서도 중증이다. 박종훈 감독은 '싸우는 야구'를 표방했다. 이 계통 없는 철학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으로 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에이스들과 모두 등을 지는 팀은 그리고 감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대중이 기억하는 역사와의 호흡이 중요한 프로 스포츠의 생존 이유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후진적 행태이다.

그렇잖아도 바닥일 LG의 팀 분위기는 어디가 끝인지 모를 하염없는 추락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당장에 '무관중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팬들의 반발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감독이 좌초한 일인데, 그 책임은 선수들이 쓰게 될 것이다. 국가대표 외야수 5명을 라인업에 우겨넣은 애당초의 선택이 잘못된 것인데, 선수들은 졸지에 '서군 트윈스'라 봐야 '꼴쥐'라는 빈정거림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직, 일주일치의 정산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올 시즌 LG가 투자 대비 수익을 달성할 가능성은 이미 매우 희박해 보인다. 게도 구럭도 잃는다고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팬은 안고 가야 하는 것인데 그마저도 걷어차고 있다. 5년 장기 계약을 맺은 감독이 단 일주일 만에 곪은 상처를 세상에 다 드러내버린 것을 새살이 돋는 과정이라 봐야할 지 아니면 날 것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 아리송 하다.

"아무리 스타 선수라 해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2군으로 보낼 것"이란 박종훈 감독의 문제의식은 옳다. 다만, 그 필요가 감독의 감정이어서는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LG의 문제'와 정면대결을 해서 넘어서겠다는 그의 의지는 좋은데 문제 설정과 인식이 영 잘못되어 있다. 이러면 'LG의 문제'를 넘어서도 또 다른 문제가 남는다.

'혼'이라고 하는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는 김성근의 야구가 2000년대를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치밀한 데이터로 그 실체가 광활하게 메워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뚝심'이라고 하는 뭉뚝한 전술을 핵심으로 하는 김경문의 야구는 선수기용에 대한 가장 예리한 감각이 존재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소위 'LG의 문제'라는 것, 그걸 해결하기 위해 '투지'의 닻을 올린 박종훈 감독.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실체가 없어 보인다. 여기저기 치받기만 하는 것이 투지는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이 성적이라면, 차라리 외야의 잉여 자원들을 좀 트레이드해서 투수로 바꾸고, 그 기회에 이름값이 덜한 야수들로 하여금 뭔가 할 만하겠다는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어떨까 싶다. 그의 투지는 싸움은 그러한 경영의 논리와 싸우기엔 이미 늦고 혹은 비겁한 것인가? 개막 일주일의 이른 시점, LG가 염려된다. 곪은 상처는 으레 그렇듯 한 번 터지더라도 잘못 치유하면 또 맺히기 마련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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