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있어 종속성 논쟁을 할 때면 기술, 시장, 자본 등의 요소를 동원하곤 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 이들 잣대를 가지고 한국 미디어산업의 종속성을 진단한다는 건 후져보인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글로벌 세상이 되었다 해도 국가독점자본주의가 어딜 가는 건 아니니 그런 정도로 해놓자.

참여정부는 한미FTA 협상으로 방송.통신 분야 규제 장벽을 열어놓았고, 이명박 정부는 작년 7월 미디어법을 통과시켜 외자의 자유로운 진출을 보장했다. 말 그대로 법제도가 보장하는 글로벌 환경을 만들어놓았다.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2년차 정책 성과’(3.25)가 바로 이 바탕 위에서 작성됐다는 점이다.

거슬러보면 그랬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에 포함된 방송.통신 분야 협상 내용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외국인 간접투자 100% 허용(보도.종편 및 홈쇼핑은 49%) △국산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 5% 완화(영화 20%, 애니메이션 30%) △1개 국가 수입쿼터 제한 20% 완화 △기간통신사업자의 간접투자 100% 허용(KT, SKT는 49%)으로 외국인 지주회사의 IPTV 등 뉴미디어 사업 진출 보장 등으로 정리됐다.

작년 7월 미디어법은 한미FTA 협상 내용을 명함도 못 내밀게 해놨다. 신문과 대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지상파 20%, 종편 60%, 보도전문채널 60%까지 소유할 수 있다. 외자도 종편 20%, 보도전문채널 10%까지 소유가 가능하다. 신문과 대기업과 외자가 연합하면 지상파 20%, 종편 80%, 보도전문채널 70%를 장악할 수 있다. 정황적으로는 초국적복합미디어기업의 출현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광고와 컨텐츠 시장 규모가 고만고만한 게 한국 미디어산업의 현실인지라 아직 해외 미디어자본의 진출이 가시화되지는 않는 듯하다.

방통위는 이번 발표문에 10개의 성과를 정리했다. 10개를 관통하는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미디어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 대목이다. 옮기자면 “1인 지분 소유제한과 대기업, 신문.뉴스 통신 및 외국자본의 종합편성 또는 보도전문 편성 콘텐츠 사업에 대한 겸영 또는 주식.지분 소유금지 등의 규제를 완화(09.7)하여 방송시장의 경쟁력을 강화하였다”는 거다. 한마디로 줄이면 ‘조중동 재벌 콘소시엄의 종편 진출 가능’이다. 더불어 가상.간접광고 도입과 방송사업자가 방송광고 사전심의를 직접 또는 위탁할 수 있도록 방송법을 개정(09.7)했다고 밝혔다. 이 모두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 일인데 방통위원회가 했다고 하니 사실관계가 맞진 않지만 뭐 각설하고.

요점은 방통위가 지난 2년간 미디어자본의 독과점 강화를 위해 모든 편의를 제공해왔다는 데 있다. 방통위는 2010년에도 ‘방송통신.미디어산업 육성’을 최우선 정책추진과제로 꼽았다. 신규사업자 진입, 서비스 경쟁 강화, 공정경쟁 환경 조성으로 글로벌 미디어그룹 육성 기반을 마련한다니 미디어자본으로서는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방송광고판매시장도 경쟁하게 하고, 광고 편성규제는 완화한다니 표정관리만 하면 된다. 디지털 전환을 차질없이 한다면서 생뚱맞게 3D방송추진단을 꾸렸다. 3D TV에서 빠질 수익을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유쾌하다. 여기에 DDoS 국가사이버위기종합대책을 세우고 G20 정상회의에서 ‘방송통신 KOREA’ 브랜드를 강화하겠다며 국가적 수준의 역할도 빼놓지 않았다. 이쯤 되면 국가방통자본주의라 이름 부칠 만하다. 누군가 조금만 이론 작업을 하면 국가방통자본주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제목에서 ‘종속적’이라는 수사를 붙인 건 정치종속적인 문제 때문이다. 방송통신융합 기구 개편 논의 당시 방송통신 진흥정책.집행은 정부 부처로 하되 규제정책.집행은 합의제 위원회가, 그리고 심의기능은 독립된 민간기구가 감당하자고 침이 마르도록 제기했던 바다. 공화국이라면 인간적으로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형식적 기초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사법부와 국가인권기구와 방송규제기구 만큼은 형식적으로라도 독립시켜놔야 한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사법부조차 권력에 휘둘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필요성은 더욱 크다.

그러나 어찌어찌하여 대통령이 방통위원장을 임명하고, 여야 교섭단체가 두 명씩 나눠먹는 무늬만 합의제인 방통위원 전체회의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방통위원 전체회의가 공영방송 이사를 여야 7:4(KBS), 6:3(MBC 방문진)으로 선임하고, 다시 이사장과 여권 추천이사들이 방송사 사장을 임명하고, 방송사 사장이 본부장을 임명하다 보니 쪼인트가 난무하는 희한한 일도 벌어지고 그런 거다. 그런데 방통위는 이번 성과 발표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를 누락했다. 손병두, 김우룡 이사장과 함께 이병순, 김인규, 김재철 사장을 내려앉혀 정권의 방송장악에 기여한 일이다. 지난 2년간 방통위가 이룬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업적인데 발표문에 반영하지 않았다니 의아하다.

달이 차면 기울듯 종속적 국가방통자본주의도 언젠가 쇠락하는 날이 오겠지. 지금은 그저 국가방통자본주의를 찬양하는 자화자찬 발표문에 찍찍 낙서나 즐기자꾸나.

* '방송기술인저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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