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성인 동이 한효주와 지진희의 본격 출연으로 MBC월화사극 동이의 무게감이 현저하게 달라졌다. 또한 사극판 베토벤 바이러스라는 닉네임을 굳이 붙이고자 하는 제작진의 바람처럼 장악원의 실제연주 장면도 자주 등장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그려줄 날도 있을 거라 믿어보지만 궁중진연을 묘사하는 것으로는 허술했다. 그건 다른 지면을 통해서 말하기로 하고, 5회의 동이는 혁신적인 캐릭터로 무장한 임금의 등장이 신선감을 주었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숙종으로 분한 지진희는 심각한 붕당의 압박을 재치와 유머로 받아치는 미국 정치가 같은 면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임금의 행차에 아이돌 그룹의 팬클럽처럼 궁녀들이 쪼르르 달려 나와 가는 길에 도열까지 한다. 이 정도면 지위와 권력이 아닌 진정한 인기로 궁궐 안의 궁녀들의 우상이 되었다는 것이니 요즘 아이돌이 부럽지 않을 듯싶다. 게다가 그런 궁녀들을 향해 한 손을 쓰윽 들어 올려 답례까지 해주니 그는 진정 스타의 자격을 고루 갖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과연 그런 장면이 실제로도 가능했을까? 물론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그러나 5회에 드러난 임금을 중심으로 한 모든 장면들이 숙종의 파격적인 모습들을 보였기 때문에 아마도 이런 가설도 가능할 것 같다. 예컨대, 숙종이 행차하는데 멀리서 궁녀들이 숨어서 자기를 훔쳐보는 것을 눈치 채고 그녀들을 가까이로 부른다. 그리고는 여자라면 누구나 가슴에 한번 박히면 빼지 못할 그의 살인미소를 띄우며 이렇게 말을 한다. "앞으로 짐이 보고 싶으면 가까이 와서 보라"

아, 물론 역사적 실제와 거리가 먼 상상이고 드라마라는 허구의 설정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5회에 보인 숙종의 면면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않을까 싶다. 또 엄격한 조선궁중사에 그런 임금이 하나쯤 있었다 해서 나쁠 것도 없다. 이 즐거운 상상 혹은 망상을 위해서 숙종이 어떤 임금이었는지에 대한 검색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천한 노비에게 승은을 내려줄 정도로 파격적인 그의 로맨틱한 설정을 사실을 근거로 구속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숙종의 로맨티스트로서의 면모는 그것만이 아니다. 남자가 한 여인의 삶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외양이 아니라 내면에 있다. 잠행을 다녀오다가 우연히 들은 동이의 해금소리에 반해 그것을 재입궁하게 될 정인 장옥정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씀씀이가 진정 그를 로맨티스트라는 수식어를 붙이게끔 한다. 그것이 여자 옥정을 대하는 남자로서의 마음과 살얼음 같은 붕당정치 속에 휩쓸릴 옥정에 대한 배려던지 간에 어느 쪽이라도 그 배려가 금은비단이 아닌 단지 음악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가슴에 낭만이 그득그득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한편 동이는 50부작 사극의 진행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을 주는데, 다 큰 동이가 등장하고 곧바로 숙종과 만나게 된다는 것이 놀랍다. 대장금의 장금과 이산의 송연이 각각 임금을 만나기까지 많은 뜸들임이 필요했던 것과 비교하면 거의 단막극을 방불할 정도의 급만남이다. 그렇게 임금과 만나게 될 동이의 됨됨이는 로맨틱 가이인 지진희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한효주는 영민함과 보살미소로 온 장악원을 아름답게 장악하고 있다.

궁궐에 들어온 지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지만 동이는 장악원 살림 이모저모는 물론이고 직능을 맡은 사람도 알지 못하는 것까지 다 알고 처방을 내려준다. 가히 신이 내려준 재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착한 미소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효주표 함박웃음과 거기서 한 발 물러서서 입 다물고 눈만 배시시 웃는 보살미소는 임금과 참 잘 어울리는 쌍이 될 법하다.

그런 한효주는 전작의 장금, 송연의 소극적이고 지극히 조심스러워 하던 모습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동안의 이병훈표 여주인공들이 남자들의 로망 속의 터치로 그려졌다면 동이는 앞서 아이돌 스타 같은 임금과 마찬가지로 적극적이고 활발한 현대여성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것이 차분하고 이지적인 장옥정과 대비를 이뤄 두 여인의 운명적 갈등 또한 좋은 화음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대단히 파격적인 사극 캐릭터인 한효주와 지진희를 보는 것만으로 5회는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MBC 전체 파업으로 인해 9시 뉴스가 15분가량 단축된 여파이지만 오히려 동이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한효주, 지진희의 본격 출연과 타사 경쟁 드라마보다 일찍 시작한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해서 시청률은 분명 지난주보다 상승했다.

6회에는 ‘음변’의 음모를 둘러싼 사건이 우연히 만나게 될 동이를 통해 어떤 실마리가 제공될 것으로 예고되어 시청률도 한층 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4회까지의 동이가 다소 무리한 진행과 부실한 디테일로 실망감도 없지 않았으나 점차 이병훈표 사극의 중독성을 서서히 발휘하는 듯싶다. 이제 날선 시선을 무디게 거두고 느긋하게 그의 조련에 빠져봄직하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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