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된다. 서둘러 끝을 내야 한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답답하며, 또 얼마나 불안한가? 유족들이 먼저 대의를 위해 양보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실종된 자식들을 찾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천안호를 물위로 인양하는 작업을 서두를 수 있게 되었지 않은가? 더 이상의 안타까운 희생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결정한 유족들의 마음이 안타깝게, 절절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이념과 정파, 그 모든 것을 떠나 아름답고 숭고하다. 이제 우리도 ‘대의’에 따라야 한다. 21세기 한국 현대사에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지 않기 위해, 천안호 사태의 이성적인 해결을 위해 각자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우선 첫 번째, 누구보다 선한 저널리스트들이 나서야 한다. 말했듯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이크만 들면 할 수 있는 그런 리포터가 아닌, 제대로 자격 갖춘 저널리스트들이 나서야 한다. 한겨레, 프레시안, YTN, 어디에 소속되었든지 상관없다. 상식적 매체의 양심적 저널리스트라면 다음과 같은 명령으로부터 도망치지 말라. 당장 진실의 인양 작업에 나서라! 진실을 암해에서 구조하라! 배위와 해변을 얼쩡거리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역할은 끝났다. 장례식장의 슬픔을 전하고 죽은 영웅을 추도하는 카메라는 몇 개로 충분하다. 해군, 국방부 브리핑 자료를 그대로 옮기기에 바쁜 엉터리 짓을 끝내라. 국회에서 오가는 질의응답, 청와대 ‘당국자’의 해명을 그대로 베껴 적는 엉터리 기자는 펜을 놓으라.

저널리스트는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리포터들과 아무 상관이 없다. 이리저리 사실을 분별하고 그 정확성을 따질 수 있는 기자들만 나와라. 파편적인 사실을 긁어모으고, 빈틈과 남은 부분을 파고들며, 이것저것을 묶어내 마침내 진실을 발굴하는 피디가 남아 있지 않은가? 설혹 총체적 진실을 밝혀내거나 그에 다가갈 수는 없더라도, 결정적인 사실을 제시하고 그럼으로써 진실에의 문에 우리가 좀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해주는 성실한 저널리스트들이 나설 때다. 나는 그런 선량하고 용기 있는 저널리스트들의 출현 가능성을 어제 저녁 MBC <뉴스데스크>에서부터 봤다. 그래서 설렌다. 기대가 된다. 진실 발견의 불가피성을 아무도 회피할 수 없다.

두 번째로, 해군과 국방부, 그리고 정부 당국은 더 이상 정확하지 않은 사실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진실 발굴, 진실 인양의 작업을 의도적으로든 결과적으로든 방해하지 마라. 천안호를 안전하게 인양하고 죽은 군인들의 시신을 온전하게 되찾는 일에 전념하면 된다. 그게 당신들이 성심을 다해 임할 일이다. 진실을 밝히는 몫은 해군의 것도, 국방부의 것도, 정부와 청와대의 것도 아니다. ‘민관합동조사단’이라는 게 꾸려져 조사가 시작되었다지만, 이들에게 위임된 것도 아니다. 국가와 관련된 사건의 진실규명은 오직 사회적으로, 국가가 아닌 사회의 끈질긴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교훈을 우리는 생생하고 뼈아프게 배운지 이미 오래다.

해군과 국방부, 국방부장관, 정부와 청와대가 반드시 지켜야 할 귀중한 의무는 따로 있다. 진상을 밝히고 그럼으로써 향후의 또 다른 비극을 예방해야 하는 ‘국민’ 모두를 위해 반드시 지킬 기본 규칙이다. 정보를 조작하려들지 말고, 사실을 결코 왜곡하지 않으며, 진실을 절대 은폐하지 않는 것이다. 성실하게 요청된 정보를 제공하고, 확인된 사실만을 제시하며, 그럼으로써 진실 발굴의 사회적 노력에 장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래야 했고, 지금 당장 그래야 하며, 앞으로 계속해 그래야 할 것이다. 만약 이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진실은 죽고 결과적으로 사회도 따라 죽는다. 끔찍한 악몽, 당신들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또 다시 엄청난 집단 스트레스를 앓고 있는 이 시기에 ‘사회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푸코식대로 농담처럼, 냉소로 쓰이지 않는다. 사회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보호되어야 하고 민주적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사회는 우리 모두의 귀중한 삶/생명의 공간, 생존의 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보존을 위해 합리적 대화와 이성적 판단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사실의 정확성에 유념하고, 진실의 발굴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진실에 대해 발언하는 시민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가 필수적이다. 대중들의 대화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이들의 여론을 성실하게 반영하며, 나아가 이들의 토론을 적극 격려해야 한다. 이런 기본을 위반하고도 ‘언론’이라 자칭하는 것은 뻔뻔스런 일이다. 이념과 관계없는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바로 진실의 적, 사회의 적으로 전락할 따름이다.

▲ 4월 4일 MBC뉴스데스크 캡처 화면
이런 점에서 세 번째 조건을 제시해 본다. 일부 신문의 극우적 공세는 맞지 않다. 이번 일은 이념적 프레이밍의 전쟁을 펼치기에, 반공적 여론의 제조에 몰두하기에 너무나 위험한 사건이다. 사회질서를 불안케 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일반시민을 전쟁의 공포에 떨도록 하는 악의가 없다면, 지금과 같은 광기의 프로파간다는 당장 멈춰야 한다. 스스로 출처 불투명한 유언비어를 공공연히 유포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개인적 의사를 교통하는 네티즌들을 ‘들쥐들’로 비하하면 안 된다. 외부와의 전쟁을 부추기고 내부의 내전을 음모하는 게 아니라면, ‘국격’은 잠시 잊고 사실과 진실, 그리고 여론을 챙기시라.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찾으려 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답을 찾으라. 보수적 관점에서라도.

이번 사태는 이렇게 단순히 천안호의 진실을 밝히는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그 함의는 말로 표현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이에 대해서는 정치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인지 잘 모른다면, 엉뚱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보수적 주간지 <타임>이 1999년 12월 20세기 100년을 정리하면서 꼽은 주요 세계적인 사건들 중 한국과 관련된 단 하나의 사건이 무엇인지 아는가? 한국 전쟁도 아니고, 83년 구소련 영공에서 벌어진 KAL 007 사건이다. 왜 그랬을까? 냉전의 부활과 군비의 경쟁, 소련의 몰락이 바로 이 사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이번 천안호 사건에서 유사한 정치적 함의를 읽는다.

천안호 사건은 군사적인 사건이자 사회적인 의제이면서, 동시에 명백히 정치적인 사안이다. 우리 운명을 뒤바꿔놓을 수 있는 중대 정치현실이다. 한반도에서 낡은 냉전질서를 몰아낼 것인가, 아니면 이 땅에 섬뜩한 반공체제를 새로 세울 것인가? 이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비상한 결단이 네 번째 조건이 된다. 천안호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고, 그래서 사태를 서둘러 종결하라. 이념 갈등, 내부 적대의 위험하고 혼란스런 파국은 안 된다. 제발 이번에는 ‘국민 모두를 위해’라는 대의를 지켜주시라. 누가 뭐래도 당신은 그래야 할 이 나라의 대통령이고, 당신이 잘해야 한국사회가 평화롭게 살아남을 수 있다. 이번만은 간곡히 대통령의 대승적 결심을 요청한다. 오직 진실만을 듣고, 진실을 갖고 ‘국민’을 만나시라.

이런 기대가 말도 안 된다고 화내거나 피식거릴 분이 많으실 것이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하는 수 없다. 되지도 않을 거라고 욕해도 하는 수 없다. 모든 수를 다 쓰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에게 기꺼이 호소하고, 조중동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재차 경고하며, 해군과 국방부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촉구해야 한다. 기자들에게 사실의 발견을 요구해야 하고, 피디들에게 진실의 서사 창작을 요청해야 한다. 그 것 외에는 솔직히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앞으로 계속 그러면, 천안호 진실의 발견은커녕 우리가 사는 한국사회의 평화가 더욱 불가능해질 것 같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더 이상 이렇게 위태롭게 침몰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들기 때문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 사태 해결을 위한 조건이 이래서 중요해진다. 앞서 말한 네 가지 조건의 당사자들에 앞서, 대중들 스스로가 진실 발굴과 진실 발언의 활동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들쥐’라는 경멸적 소리를 듣더라도 피식 웃고는 계속해 사실의 바다에 투망질하고, 진실의 암해로 잠수해 들어가는 자율적, 사회적 언론활동을 지속한다. 이성과 감각의 이중 역능에 기초한 판단의 권리를 행사한다. 트위터와 블로그, 인터넷의 다양한 망을 통해 일리 있는 의견들을 힘 있게 개진한다. 사실마저 갉아먹을 ‘들쥐’가 아닌, 지하에 길을 내고 구멍을 뚫는 튼실한 두더지로 집단 변신한다. 진실발견과 사태해결의 불가피성을 압박하는 대중 언론인들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교통만이 앞선 네 가지 조건의 실행을 강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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