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를 통해 배우 김소연은 배역 이상의 호감을 얻었다. 동갑내기 배우 김태희가 배역만큼의 보상을 못해주었고 대신 김소연이 그 허전함을 채워주었다. 게다가 연말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보여준 김소연의 엉뚱하면서도 한편으로 차별당한 느낌까지 더해져서 그녀에 대한 호감과 지지는 대단히 높아졌다. 웬만하면 배우로서 그런 호감과 이미지를 차기작을 통해 잘 포장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웬걸 김소연은 천하에 비호감인 된장녀에 무개념 케릭터로 등장했다. 하필 그것도 검사라는 직업이었다. 사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검사 프린세스 첫 회를 보면서 언뜻 떠오른 것은 키무라 타구야의 히어로였다. 실제로 검사 프린세스의 세트장도 히어로의 구조와 흡사하다. 그러나 주인공 케릭터는 같은 듯하면서도 전혀 딴판이었다. 지나치게 엄격한 검사들의 조직 속에서의 일탈된 모습은 같지만, 히어로가 조직의 논리에 저항하는 진짜 영웅을 그리고 있다면 검사 프린세스는 아직은 목적 없는 일탈만이 존재하고 있다.

관료사회의 유사성을 보이는 한일 양국의 분위기로 보아 두 케릭터가 현실성 없기로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히어로 속 괴짜 검사 쿠리우 코헤이 검사는 통신판매에 미친 사람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통신판매를 통해 물건을 구입하고 검사 사무실에는 그것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독립 당하자마자 마혜리 검사가 핑크빛 고가물품으로 도배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두 사람 모두 기존 동료들에게 치명적인 위화감을 조성한 것은 같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키무라 타쿠야가 처음부터 관료주의를 깨고 조직에 도전하는 참 검사상을 보여줬다면, 김소연은 그저 말도 되지 않는 된장녀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중에 좋은 검사가 된다는 것이겠지만 그런 성장의 끝이 히어로의 결말처럼 시청자에게 후련함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접게 한다. 결국은 또 사랑 이야기일 것이고, 검찰조직에 대한 비판의식 따윈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묘한 변신술을 사용하고 있다. 마혜리의 의식 없는 행동들이 마치 검사에 대한 풍자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고작 몇 만원을 훔친 피의자의 속사정 따위 나몰라라 하는 마혜리를 보며 설득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마는 수석검사의 무기력함만 봐도 이 드라마가 결코 정의감에 터를 다지고 있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한다. 대한민국 검사에 대한 신뢰가 대단히 희박하지만 그 정도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일본드라마 히어로의 본편 결말은 최고 권력자를 기소한 후에 키무라 타쿠야가 오지로 전근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 프린세스의 결말은 무엇일까? 마혜리의 개인적 각성으로 보여줄 검사로서의 기대치가 별로 없다. 찬란한 유산의 극본과 연출이 다시 만나 착한 드라마를 지향한다고 하는 검사 프린세스는 마혜리의 개인영역을 벗어나질 못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게 된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겪는 검사에 대한 불만과 기대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검사 프린세스는 그냥 프린세스일 뿐이다. 키무라 타쿠야라는 대형스타 때문도 있겠지만 일드 히어로는 세월이 지난 후에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후 특별편과 극장판이 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히어로 시즌2를 기대하고 있다. 검사 마혜리도 그런 기대감을 줄까? 고작 된장녀 검사에서 보통의 검사가 될 뿐인 아닌가. 아니다. 드라마니까 적어도 착한 검사는 될 것이다. 검사 프린세스는 그저 배우들만 보는 정도, 그뿐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