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환 감독이 한국 야구의 ‘선각자’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을 별로 없을 것이다. 2000년대의 야구를 김성근 감독이 주도했다면, 90년대의 야구에는 단연 이광환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94년 이광환의 LG 트윈스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혁신'의 사전적 의미에 가장 완벽하게 부합하는 '기록'적인 팀이었다.

'자율 야구' 혹은 '신바람 야구'라 불렸던 이광환 야구의 핵심은 지금 생각하면 의외로 간단(!)한 것이다. 그 핵심은 선발 투수를 로테이션 하며 투수별로 역할을 분담하는 '스타시스템'의 도입이었다. 2010년에서 생각해보자면, 너무 당연한, 진부한 상식이 분명하다. 그러나 매년 야구의 초반 판세를 가늠하며 '스타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는가의 여부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 진부한 상식의 달성이 만만치 않은 문제임을 확인케 한다. 2010 프로야구의 초반 화두 역시 '스타 시스템'이다.

2010 시즌 개막 일주일, 롯데의 연패가 우선 눈에 띈다. 로이스터 3년차, '우승'을 기대하고 있는 '갈매기'들의 마음이야 우울하겠지만 크게 염려할 건 아니지 싶다. 앞서 말한 '스타시스템', '사도스키-송승준-장원준'으로 이어지는 선발 로테이션이 승리를 못 거둘 라인업은 결코 아니다. 패배한 경기들 역시 선발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특히 새롭게 가세한 사도스키의 싱커는 매우 위력적이었다. 롯데의 경우 타선이 시즌 초 유별난 침묵을 지키고 있는데, '조성환-이대호-가르시아-홍성흔'으로 이어지는 중심타선의 힘은 뒤로 갈수록 빛을 낼 것이니 염려할 건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연패엔 이유가 있다. 올 시즌 롯데의 고민은 역시나 수비이다. 개막 4경기 만에 이대호가 3루로 돌아갔다는 점은 뼈아픈 대목이다. 투타가 긴 레이스 동안 리듬을 타는 요소라면, 수비는 결코 그렇지 않다. 롯데의 수비력이 결코, 우승 전력은 못 됨이 일주일 만에 밑천을 드러낸 셈이다. 그나마 주말, 기아와의 2연전 가시밭길을 지나면 한화와 LG를 홈으로 불러들이는 일정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개막 일주일, 오히려 심각해 보이는 것은 한화와 LG의 형편이다. 각각 1승만을 따냈다. 승리가 한 번 뿐이라는 것뿐만 아니라 개막하자마자 총체적으로 팀이 난국에 처한 형편이라는 것이 긴 리그를 생각하면, 무섭다.

▲ 선발 곤잘레스 4⅔이닝 11실점.ⓒLG트윈스 홈페이지

LG의 시즌 개막 전부터 빅5로 대변되는 타선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는 기운 전력의 구성이었다. 약하다 약하다 했던 것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투수력이 그야말로 너무한다. 봉중근이 나온 SK전을 제외하면, 매 경기 10점 가까운 실점이다. 단적으로, 어제는 제 1선발인 곤잘레스가 나왔지만 14점을 내줬다. 이런 투수력을 갖곤, 제 아무리 빅5가 있다 해도 이길 수 없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신인 투수 신정락의 내용이 괜찮았다는 것인데, 그걸 위안삼기엔 구멍 뚫린 투수력의 근심이 너무 커 보인다.

한화의 경우 LG보단 상대적으로 좀 낫다면 LG에게 너무 가혹한 말이 될까? 한화의 경우 우선, 패하긴 했지만 외국인 투수 카페얀의 구위가 나빠 보이진 않았다. 첫 등판이었던 SK와의 경기에서 7이닝 3실점이면 충분히 제몫을 해낸 것이고, 어제 삼성과의 경기에선 5이닝 3실점을 하긴 했지만 자책은 2점뿐 이었다. 앞으로 몇 게임 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 로테이션은 지킬 수 있는 수준은 된다. 그리고 한화는 명불허전 류현진이 건재하다. 올 시즌 영건 3인방(유원상, 안영명, 김혁민)의 성장세에 따라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는 선발진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물론, 차포(김태균, 이범호)가 빠진 타선이 아무래도 허하지만, 애당초 우승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니 일단 패스하고)한화의 결정적 문제는 선발이 아니라 중간에 분업을 담당할 투수가 없다는 점이다. 현대 야구에서 릴리프와 셋업맨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키는 것이던 따라가는 것이던 한화에는 제 역할을 해줄 투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주말, 프로야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SK와 두산의 대결이다. 어제, 금요일 첫 경기는 두산이 따냈다.

▲ '이성열 결승포' 두산, 개막 4연승 ⓒ두산베어스 홈페이지
최근 5년 동안 두산은 언제나 강했지만 올해가 가장 강하지 않은가 싶다. 히메네스의 투구는 리오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걸출했고, 김선우의 거듭남도 돋보였다. 여기에 첫 경기에서 부진하긴 했지만 이현승이 가세하고 홍상삼이 작년만큼의 활약만 보여준다면, 탄탄 그 자체이다. KLLL(고창성, 이재우, 임태훈, 이용찬) 라인의 안정감도 돋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 시즌 두산의 타선이다. 그야말로 '미라클'이다. 이종욱, 고영민, 김현수, 김동주, 최준석이 한 라인업에서 뛰는 것은 반칙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200안타에 도전하는 4번과 100타점도 못하는 바보가 아닌가. 수비와 주루 역시 리그 최상, 말할 나위가 없다.

SK의 경우 연승을 하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는 팀들과의 대결이었고, 작년과는 달리 힘으로 압도하기 보다는 SK 특유의 짜내는 야구가 돋보였다. 물론, 그 짜내는 능력이야말로 SK가 한국야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궁극의 힘임을 부정할 순 없다. 돌아온 박경완은 선산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고, 돌아 올 김광현까지 있으니 물론, 앞으로의 전망도 밝은 편이다. 다만, 초반에 독주 태세를 잡지 못할 경우 예년과 같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재하진 않을 듯 하다. 주말 두산에 이어 기아까지 이어지는 초반 일정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올 시즌 SK의 위세를 재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왕지사 인용한 것이니 다시 한 번, 이광환 감독을 인용하면 그는 강팀의 조건으로 5가지를 꼽았다. 강팀이란 '연패를 끊을 수 있는 에이스, 확실한 마무리, 능력 있는 톱타자, 강력한 중심타자, A급 포수'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올 시즌, 그 5가지를 갖춘 팀은 어디인가? 속단은 이르다. 이제, 시작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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