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내년(2018년)부터 스마트폰에서 FM 라디오 수신이 가능해진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있다. 라디오의 디지털화가 답보 상태인 가운데, 참으로 오래간만에 보는 라디오와 관련된 실질적인 정책(?) 실행 내용이었다. 2002년까지만 해도 DAB(Digital Audio Broadcasting)라는 이름으로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이 활발하게 추진되었다.

당시 정보통신부는 2000년 디지털라디오추진전담반을 운영하여 디지털라디오의 대표적인 표준방식에 대해 검토했고, 2001년에는 디지털라디오방송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2002년에는 실험전담반을 운영, Eureka-147 방식을 디지털라디오의 최종표준으로 채택했다. 또한 디지털방송추진위원회를 통해 방송위원회와 DAB도입에 관한 정책을 조율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말 DAB라는 오디오 친화적인 명칭은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로 변화됐다.

정보통신부의 ‘지상파디지털라디오추진계획’에서 ‘디지털화를 통해 “듣는 방송”에서 “보고 듣는” 멀티미디어방송으로 라디오 개념을 확장’하여 ‘기존 DAB라고 지칭되었으나, 한국은 이동멀티미디어방송의 특성을 살릴 수 있도록 DMB로 개명하고자 한다’며 DMB라는 새로운 용어를 제시한 것이다. 이후에도 라디오의 디지털화는 꾸준히 추진되었으나 지상파 디지털TV의 전송방식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면서 라디오의 디지털 전환 계획이었던 DAB(DMB)는 DTV의 이동수신 방식으로 변화됐다. 이는 디지털 라디오의 실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국내 모든 라디오 방송은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디지털 라디오의 추진계획과 일정도 제시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사진 출처=게이티이미지뱅크

라디오는 저렴한 비용으로 제작되어 무료로 배포되는 다양한 음악과 음성 콘텐츠로 가득 찬 국민적 정보소스 및 오락매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보격차와 양극화의 추세 속에서 일반 서민들에게 꾸준한 오락 콘텐츠, 유용한 정보, 친근한 음악 등을 제공하는 갈등해소 매체이며, 무료 보편적 서비스에 가장 부합하는 매체이다. 또한 지역성 구현이 용이한 지역밀착형 매체이자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간편하고 가장 친근한 매체이다. 특히, 미디어와 연관된 최우선이자 기본적인 공공서비스가 재난방송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라디오는 이에 가장 가까운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 시에 국민들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재난방송인데, 전화도 안 되고 인터넷도 안 된다면 재난방송을 청취하기 쉽지 않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지난해 경주의 지진 발생 시 트래픽 폭주로 인해 카카오톡은 2시간 넘게 먹통이었고 경주일대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는 1시간 이상 지연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 송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대형재난 발생 시 국가안전망으로서 데이터 통신망 의존의 불완전성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주목해야 되는 매체가 라디오이다.

현행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제40조에는 전파가 수신되지 않는 지하장소에도 재난 라디오 방송 수신을 위한 여건을 보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의 취지는 지진이나 태풍 시 국민들이 재난 경보를 듣고 신속하게 대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처럼 수신여건을 잘 갖추어도 국민들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단말기를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 스마트폰을 통한 라디오 수신이다.

현재 우리 국민은 대다수가 이동통신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휴대폰을 통해 FM라디오를 직접 수신할 수 있다면, 재난 발생 시에 국민들의 정보제공과 대응방안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8월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스마트폰을 통해 FM 라디오 방송의 수신이 가능해진다는 내용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의 아쉬움이 있다.

첫 번째는 입법화를 통한 강제사항이 아니라 사업자 자율적 의사결정이라는 부분이다. 이럴 경우, 그 결정이 언제 번복될지 모르고, 사회적 이슈화 이후 슬그머니 사라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가 법적으로 강제할 경우, 미국에서도 라디오 지원을 하지 않고 있는 애플 아이폰은 국내 출시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폰이 국내에 진출한다면, 한국형을 따로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는 아이폰의 공급 단가 인상을 의미한다.

또한 국내에 반입하는 외국 제조사에 대하여 라디오 수신기능 제공을 의무화하는 경우, WTO의 TBT협정(Technical Barrier Trade; 기술무역장벽 금지협정)을 위반하는 것으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해외 제조사에 라디오 기능제공 의무화를 적용하지 않거나, 하지 못할 경우에는 국내 휴대전화단말기 제조사에 대한 역차별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결국 강제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이고, 강제력을 갖는다고 해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산적해 있다.

둘째는 이동통신사도 스마트폰을 통한 라디오 수신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가이다. 삼성과 LG 등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가 FM 수신칩 활성화를 공언했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려면 통신사가 협조해야 한다. FM 신호를 수신하는 앱을 관할하는 것은 통신사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학회 등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이통사 역시 이에 대해 노력하고 있다고 언급하였지만, 미온적 태도라는 기존 언론보도나 이통사의 별다른 행동은 없는 것 같아 우려되는 부분이다.

스마트폰을 통한 라디오 수신은 단말기 제조사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도 민간영역에서 수행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의 구현이자 공익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 폰이 국민들에게 익숙한 대표적인 미디어의 하나로 자리한 현 상황에서 미디어의 공공성 실현 측면에서도 바람직할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방송학회의 라디오 세미나에서 발제자는 ‘사회적 소통이 통신의 공공성에 기대 있으며, 개인간, 집단간 커뮤니케이션도 통신의 시스템 하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통신의 공공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매우 공감되는 대목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