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언니는 다소 코믹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온통 상처투성이 인물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다 자란 국민여동생 문근영은 주인공답게 대단히 복잡한 심리적 상처를 갖고 있다. 이미숙의 현란한 작업 기술을 도운 서우의 성장을 멈춘 심리 상태는 심각하게 접근해야 할 장애를 안고 있다. 그리고 도망치려던 문근영을 필살 미소 하나로 주저앉게 만든 천정명 또한 아주 흔한 재벌가의 배다른 천덕꾸러기로서 상처를 숨기고 있다.

아직 초반의 성격은 문근영의 상처가 반항과 공격성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언제 뒤바뀔 지 모르는 일이다. 마냥 천사표인 서우와 천정명 역시 만만치 않은 상처가 있고, 그것은 언제 어떻게 돌변한다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크다. 이 상처 받은 세 사람의 유형을 통해 아직은 멀게 느껴지는 신데렐라 언니의 진행과정을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하다.

가난 그리고 백만 명의 아버지

은조는 아버지를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라 부르지 않아도 되고, 그걸 요구하지 한 적 없는 수 많은 남자들이 자기 엄마의 남자가 됐다가 끝내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냥 아빠 없는 사생아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성장기의 소녀가 갖게 될 심리적 상처는 대단히 큰데,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는 꽃뱀같은 엄마는 전자의 고통을 일단 덮을 만큼 큰 혐오와 연민의 복합감정을 주었다.

그러나 엄마와 딸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달리 조금 다른 감정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술주정뱅이에 상습폭력자인 백만 번째 남자 털보정씨에게서 도망쳤어도 이미숙의 말처럼 "기차를 타도 내릴 곳이 없는" 삶 속에서 딸은 너무 어린 나이에 체념할 줄도 아는 속이 부쩍 커버린 애어른이 됐다. 그런 속에서 은조는 남의 호의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아이가 되버렸다. 다행히 머리 좋고 공부를 좋아하는 은조는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엄마 곁을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러나 엄마를 떠나지는 못한다. 엄마 송강숙이 반지를 찾으러 가서는 엉뚱하게 연애작전을 벌이는 상황을 까맣게 모르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가졌지만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러다 뚱보꼬마 정우 엄마가 털보장씨에게 도망쳤던 경험에 비추어 강숙이 도망갔다고 단정짓자 비로소 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버려졌다는 일반적 감정이 아니라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만세!하고.

은조는 상처받은 어린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 다만 그것이 천사표 국민여동생 문근영이 하는 것이라 특별하다. 이런 성장환경 속에서 그만큼 비뚤어진 케릭터는 수도 없이 봐왔다. 호감이 극중 케릭터조차 미화시켰다.

부잣집 외동딸 그리고 엄마의 부재

효선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라고는 단 하나, 엄마의 정뿐이다. 워낙 이쁘고 착한 효선은 부유한 환경 속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라났다. 거짓이건 진심이건 효선 주변 사람들은 모두 효선의 어리광을 모두 받아주었다. 그렇게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효선은 성장기에 누구나 겪는 갈등의 요소가 결핍되었다. 은조와 정반대의 경우지만 어쩌면 효선이 가진 결핍은 하나에 불과하지만 그로 인한 파급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갑작스레 일곱살 아이가 돼버려 강숙에게서 죽은 엄마를 맹목적으로 찾게 된다. 그로 인해 아빠인 구대성의 마음도 더욱 흔들리게 되고 결국 강숙과 초고속 혼인에 이르게 된다. 그 과정에 다소 만화적 비약이 개입한 것이 분명해 효선의 감정이 폭발하지 않았다면 정말 호된 비판을 받을 것이었다. 효선이 가진 애정결핍은 남을 해치지는 않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

아빠와 오직 세상에 자신 혼자의 절대적 관계 속에서 고이 지켜졌던 효선의 천사적 성격은 이제 계모 강숙과 의붓언니 은조의 등장으로 급속도로 바뀐 환경에 놓이게 된다. 바뀐 환경 속에서 비로소 현실을 인지하게 된 후, 효선의 변화는 앞으로 신데렐라 언니를 끌고나갈 또 다른 원동력이 될 것이다. 효선의 상처는 은조나 기훈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별하다.

그렇지만 해피 투게더에 홍보하러 갔다가 욕만 먹고 온 서우가 캐릭터에 충실한 것조차 귀여운 척이니, 발연기니 하는 비판보다는 험담에 가까운 폄하를 받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문근영과는 반대로 현실 속 비호감으로 인해 연기 자체를 거부당하는 꼴이다.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재벌가의 배 다른 아들 그리고 학대와 저항

명문대생에 출신에다가 젠틀하기까지 한 완벽한 젊은이 홍기훈은 대성술도가의 알바생이다. 효선이 아빠 다음으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효선의 어리광을 다 받아주었다. 그러나 그런 기훈의 젠틀함 뒤에도 은조, 효선 못지 않은 상처가 있다. 재벌가로 성장해가는 기업주의 배 다른 아들로 본실 자식들로부터 배척당한다. 규모를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업체인 대성술도가에 있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는 본실자식들의 부당한 요구를 받고 있다.

앞서의 은조나 효선에 비하면 기훈이 가진 상처는 한국 드라마의 단골이라 할 정도로 흔한 성격이다. 그러나 외유내강이라고 해야 할까. 기훈은 자기 가문에게는 공격적이지만 남인 대성술도가에게는 진짜 가족같은 정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은조와 효선이 결정적으로 갈등하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한 존재가 될 것이다.

군대에서 제대해 컴백한 천정명은 한층 성숙해진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저돌적인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다. 그가 연기해야 하는 기훈의 상처를 감추기에 유효해 보인다.

이렇듯 신데렐라를 끌고 갈 세 주인공의 기반은 상처다. 지금 당장은 은조 혼자서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다른 둘의 상처가 또 어떻게 드라마 속 사건과 갈등을 만들어낼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아무튼 이들의 상처가 서로를 할퀴고 또 때로는 보듬는 과정을 통해 각각의 성장과 좌절을 흥미롭게 지켜보게 될 것 같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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