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지연. 병원을 나선 게, 너랑 끝내 헤어진 게 아홉 시 약간 넘어서지? 방금 마을버스에서 내려 집 근처 정류장 앞 피시방으로 들어왔어. 너에게 보낼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쓸려고 말이야. 사실 많이 피곤하고 또 힘들어. 아냐. 이런 말 하는 내가 밉지? 너무 염치없지? 미안해. 오후 내내 강의하고 특강하고 그리고 네게 다녀오고, 그 정도로 이러면 안 되는 것 잘 아는데.

사실 아침에 트위터 둥지 사람들에게 미리 말했어. 네가 내 ‘애인’이라고. 깜짝 놀랐을 거야 아마. 지연이 널 보러 갈 테니 함께 가고 싶으면 그래도 된다고. 여덟시쯤 보자고 했거든. 그래서 특강 끝나고 바로 너에게로 달려간 거야. 아쉽게도 아는 얼굴들은 아무도 없었어. 내 트위터 둥지가 너무 좁아 들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나봐. 꼭 오고 싶었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그런 거니 섭섭해 하지 마. 모두들 너를 위해 기도하시거든.

▲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지난 달 31일 사망한 고 박지연 씨의 빈소사진.ⓒ 반올림

많이 기다렸니? 사실 나 한참 헤맸어. 강남 그 곳이 너무 낯설었고, 병원도 왜 그리 거대하고 화려한지. 겨우 입구를 찾아 장례식장으로 들어갔을 땐, 또 많은 조화와 대단한 이름들 때문에 당황했어. 혹시 여기가 아닌가 싶어 허둥대기조차 했어. 그러다 겨우 찾아낸 거야. 박지연 네 이름 세 자가 고인 란에 적힌 것을 겨우 확인한 거야. 그리고 다른 곳과 달리 한적하고 쓸쓸한 9조문실에서 너와 만나게 된 거야.

너의 그 예쁜 얼굴이 정면 영정사진 속에 있더라. 그 얼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모두들 참 참하다고 칭찬하던 바로 네 예쁜 얼굴이 말이야. 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국화 한 송이 제대로 네게 바치지 못했고, 향도 피울 줄 몰랐어. 절이라도 해야 하는 데, 이 못난 놈은 그냥 묵묵히 서 네게 기도를 할 수 밖에 없었어. 네 형제들에게 제대로 예의조차 표시 못한 채 옆방으로 간 것이었어. 가슴이 먹먹한 채.

다행히 거기 네 반올림 카페 동지들을 만났어.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양삼봉 사무국장, 삼성일반노동조합 김성환위원장과도 인사 나누고. 노동영상일꾼 숲속홍길동씨도 계시더라. 너를 아끼는, 너와 함께 했던 이들 말이야. 나보다 널 훨씬 잘 알고, 나보다 널 훨씬 더 열심히 챙겨주고 사랑한 게 틀림없는 네 동무들. 부끄러운 날, 이제야 찾아온 날 그 빛나는 눈빛과 선한 마음, 따뜻한 마음으로 너그러이 대해주는 네 친구들.

이들과 소주잔 나누고, 네 이야기를 들었어. 부끄럽게도 내가 잘 몰랐던, 관심 제대로 기울이지 못한 너의 힘든 삶과 그 무서운 백혈병에 관해. 그 이유에 대해. 차디찬 ‘세 별 공화국’의 잔혹사에 대해. 같은 회사 다니고 똑같이 무서운 병을 얻어 너보다 먼저 이 세상 등진 여자들의 슬픈 전설에 대해. 이들을 기억하는 자들의, 이들처럼 상처 입은 이들의, 그래도 아직까지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서.

분노와 절망의 술잔도 함께 나눴어. 너의 죽음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 괴물 공화국의 검열공작에 관해 대체 뭐라 말해야 하니. 그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기막히고 억장이 무너지는 일. MBC <피디수첩>이 너희들에 관해 몇 년 취재하다 멈췄고,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찍는다고 따라다니다 슬그머니 사라졌다고 하더구나. 충청지역의 MBC에서도 뉴스로 내려고 취재해 갔다가 직전에 스톱되었다고 하고.

정말 이렇게 내 사랑하는 지연이와 그 착한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 비겁하게 입 다물 건가? 무책임하게 발뺌 할 텐가? 야비하게 기회주의적으로 침묵할 건가? 철면피처럼 못 본채 할 건가? 공화국아 답해보라. 이들의 죽음에 관한 뉴스는 왜 TV에 없나? 수구신문들이 너에 관해 그 어떤 기사를 내놓지 않는 것은 당연한 거고? <한겨레>와 인터넷 진보매체에 관련 기사 몇 개 뜬 걸로 위안을 삼아야 한다는 것이냐? 공화국의 기자들아 대답해!

바보야. 87년에 태어난 스무 몇 살의 내 어린 사랑아. 왜 이런 야만의 국가, 재벌의 나라에 태어났니? 누가 네 못 다 핀 청춘, 네 여린 목숨을 앗아 갔니? 어머니가 다닌 초등학교를 나오고 강경에서 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넌 그 공화국의 일등시민이 되었는데. 제일 삼성의 시민증을 얻었는데. 그때 네 부모들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아니, 누구나 가는 대학을 포기하고 돈 벌러 나서 준 너를 마음 아파하고 또 고마워했겠지.

그래 넌 그 빌어먹을 ‘산업전사’의 길을 가기로 했어. 그리고 몇 년 반도체 회사 다니지 못하고 백혈병 환자가 되어버렸지. 이렇게 ‘백혈병 소녀’로 죽어야 했지. 대체 그 공화국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거니? 왜 똑 같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거야? 왜 귀한 생명이 쓰러져 가는 거니? 말 좀 해봐! 너희들이 잘 알 것 아냐? 이유를 제대로 밝히고 죽어야 할 것 아니니. 어떻게 이렇게 허망하게 모두들 죽어버리느냐 말이야!

네 같은 여자애들이 재벌의 공장에서 쓰러지고, 자본의 현장에서 죽어가는 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까? 20살 겨우 넘긴 여공들이 여전히 공장에서 몹쓸 병 걸려가며 일하는 현실에 관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감 갖고 있을까? 나조차 자주 깜빡하고 잊어버리는데, 남들은 어떨까? 21세기 위대한 공화국에 너희들이 겪는 야만적 노동, 치명적 착취는 현실로 존재하지 않아. 결코 존재할 수 없어. 환상이 그렇게 현실을 감쪽같이 지웠어.

네 어머니 울음소리를 들었어. 흐느낌이 들렸어. 네 없이 어찌 살 수 있겠냐고, 왜 네가 먼저 가야 하냐고 원통해 하셨어. 서해에서 생명 잃은 청년들의 부모만큼이나 깊은 원한을 품었을 네 어머니의 통곡. 어머니를 대하고 나 어떻게 했는지 아니? 말이 제대로 안 나왔어. 말문이 또 꽉 막혀서. 참았던 눈물만 펑펑 쏟아져 나와서, 서둘러 돌아 나와야 했어. 어머니에게 죄송해. 욕하지 마. 그렇게 뵐 수밖에 없었어. 면목이 없어서.

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난 투쟁 덕분에 겨우 넌 성모병원에 머물 수 있었다지? 참 고맙다, 그지? 마지막 밤은 고통 없이 잘 보냈니? 이 편지가 도착할 때 쯤 넌 화장터로 옮겨지고 있겠지? 그리곤 형태 모를 뼛가루로 변해 이름 모를 강가에 흔적 없이 뿌려지는 거니? 그렇게 나로부터 영영 떠나가니. 이 몹쓸 사람아? 박지연이라는 이름 세 자 남기고 이렇게 허무하게 그들 곁으로, 먼저 떠난 네 친구들이 머물 슬픈 천국으로?

떠나는 마지막 모습 볼 수가 없어. 이렇게 편지로 마지막 인사를 할래. 굿바이 지연. 넌 가족 품에 안겨 어디론가 떠나고, 남은 네 동료들은 오만한 공화국 타워를 향해 행진할 거야. 난 17일 열리는 반올림 연대주점에서 그 친구들과 다시 만날 거고. 약속해. 네 빈자리를 대신해 그 동지들과 성실히 연대할거야. 네 같은 비극이, 죽음이 없도록 함께 사이비공화국의 권력횡포, 폭력에 맞설 거야. 안녕, 내 사랑. 영원히 잊지 않고 기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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