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참사 보도를 접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의문이다. 우리나라 주류 언론은 정상인가?

언론이 대형 참사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대부분의 참사는 구조적 결함에 인재(人災)적 요인이 결합해 발생하기에 언론이 이를 적극적으로 파헤쳐 여론을 환기하는 것은 지당하다. 천안함 침몰 보도도 이 맥락에서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의문은 쉬 가시지 않는다. 신문과 방송이 며칠째 주요 지면과 시간을 이 단일 이슈에 할애하는 게 올바른 편집권과 편성권의 행사일까?

의미 있는 의제를 끄집어냈다면 모르겠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면 으레 등장하는 '~카더라' 식의 추측과 '~라면' 식의 예단이 천안함 침몰 보도에도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 일차적 책임은 사고 원인 등에 대한 정부당국의 석연찮은 설명과 정보 통제에 있다. 그렇다 해도 단편적 정황을 앞세워 억측을 일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다. 더군다나 그것이 현 정부 들어 살얼음판으로 변한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우리 사회는 규명하고 숙고해야 할 굵직한 현안이 너무 많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좌파주지 척결’과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큰 집’ 발언에 대한 진상 규명, 지방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무상급식과 국내외 종교 및 과학계에서 연이어 제기하고 있는 4대강 사업의 문제 등등. 이 와중에 천안함이 침몰되었고 50여명에 달하는 장병들의 생사가 오리무중이 되었다. 다른 모든 현안을 제압할 만한 대형 이슈이기는 하나 이를 구실 삼아 다른 사회적 의제의 공론화를 방기하는 것은 결코 주류 언론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

사실 천안함 침몰 사고 직전에도 주류 언론은 부산 여중생 살해사건 피의자인 김길태를 집요할 정도로 우려먹었다. 김씨가 조사를 받으면서 자장면을 먹고 담배를 여러 개피 피웠다는 일거수일투족에 골몰한 결과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발언은 유야무야 넘어갔다. 이번엔 천안함에 매달리는 바람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을 표기토록 한 일본의 도발행위가 별 탈 없이 기정사실화될 지경이다.

흔히 TV의 영향력을 ‘보슬비’에 비유하곤 한다. TV가 발산하는 메시지는 마치 가랑비에 옷 젖듯이 시청자의 내면을 잠식한다는 의미에서다. 난 TV를 포함한 언론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인지를 각인시키는 의제설정 측면에서 그 효과가 지대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아무리 중차대한 사안이더라도 언론이 한 이슈에 매몰되어 다른 사회적 의제를 뒷전으로 내모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진중함을 우리 언론에 바라는 것이 너무 과도한 걸까? 최소한 억측과 예단만 삼가더라도 다른 사회적 의제도 부각시킬 틈새는 나오지 않을까? 내가 볼 때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우리나라 주류 언론이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참사에 대한 국민적 비애감과 두려움, 호기심에 편승해 사실관계보다 말초적 자극에 소구하는 상업주의을 최대치로 가동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난 대한민국의 주류 언론이 정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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