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송창한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MBC를 담당하며 '국정원 문건'을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에서 승진과 함께 국정원 핵심 요직에 발탁된 사실을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폭로했다. MBC본부는 이명박 정부 당시 MBC를 담당했던 국정원 직원의 일일보고서와 문건 작성에 협력한 내부자 공개를 국정원에 촉구했다.

20일 오전 MBC상암사옥로비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김연국 본부장은 "문건이 작성될 당시 MBC를 사찰하던 국정원 직원 2명 중 1명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서훈 국정원장이 취임한 지금 1급 고위직으로 승진하고 핵심요직에 발탁됐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국정원이 적폐를 청산하겠다며 개혁발전위원회까지 발족했는데, 제대로 청산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며 "적폐청산 의지가 있다면 MBC담당 국정원 요원들이 MBC내부인사를 접촉해 무슨 말을 나눴는지 충실히 기록한 일일보고서 원문을 모두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20일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위원장이 MBC상암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국정원 문건'에 명시된 당시 프로그램 제작진과 노동조합 집행부 등이 참석해 문건의 실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증언했다. 국정원은 프로그램 파괴→노조파괴→민영화로 이어지는 3단계 방송 개입 계획을 구성하고 이를 MBC경영진에 주문했다.

국정원은 'PD수첩', '뉴스 후', '시사매거진 2580', '김혜수의 W' 등 MBC 간판 시사프로그램에 대해 폐지와 제작진 전면교체를 주문했다. 당시 'PD수첩' 제작진이었으며 최근에는 영화 '공범자들'을 연출한 최승호 MBC 해직 PD는 국정원 문건에 대해 "'공범자들'을 만들며 이들이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방송을 장악했는지 찾으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그 내용이 마침내 나왔다"고 강조했다.

최 PD는 "당시 인사발령의 공적 명분은 '1년 이상 된 제작진을 이동시킨다'는 것이었는데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최 PD는 "아무리 무능하고 악랄한 마음을 품고 있더라도 방송밥을 먹어 온 사람의 사고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며 "결국 권력이 강력하게 개입했고 그것을 (경영진이) 그대로 이행하는 수준이었다는 것을 문건을 보고 느꼈다. 국정원이라면 할 수 있는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은 'PD수첩'의 경우 대외적 신뢰도가 높아 당장 폐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전심의를 주문했다. 최승호 PD는 "굉장히 섬세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라며 "문건이 적어도 김재철 사장 및 공범자들과의 의견교환을 통해 작성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최 PD는 "PD수첩에서 4대강 관련 프로를 방송하려 했는데 국토해양부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그래서 법원에 찾아가 OK사인을 받았다"면서 "그런데 그때 김재철 사장이 사전심의를 해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최 PD는 이어 "김재철 사장이 법원 판결마저 뒤엎는 무리한 짓을 한 것은 강력한 권력의 개입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20일 MBC상암 사옥에서 열린 '국정원 MBC장악문건 폭로 기자회견'에서 PD수첩 제작진이었던 최승호 MBC 해직PD가 문건내용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미디어스)

2010년 폐지된 '뉴스 후'의 제작진이었던 이재훈 기자는 "숨겨야할 게 많고 구린 게 많은 저들 입장에서 없어져야 할 프로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 기자는 "'뉴스 후'는 아이템 선정에서 정부비판 아이템은 물론 종교, 재벌, 노동, 언론문제를 다뤘다"며 "일회성 보도를 지양하는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관련이슈를 팔로잉했다"고 설명했다.

MBC본부는 2단계에 해당하는 노조파괴 과정에서도 사측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당시 김재철 사장과 MBC경영진은 노사 단체협약 개정을 얘기하며 '본부장책임제'를 요구했다. 당시 단체협약 교섭을 담당한 안준식 8기 노조 집행부 간사는 "'단체협약과 본부장책임제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질문에 사측은 '인정한다'며 왜 들어가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유 간사는 "이 문건의 시나리오대로 본부장책임제를 들고 나온 것"이라며 "무조건적인 오더였다"고 지적했다. MBC는 이전까지 프로그램에 정권 개입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본부장이 아닌 '국장책임제'를 실시해왔다. MBC본부는 "국정원 문건에 '경영권-인사권 침해 독소조항'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경영진은 '독소조항'이라고 판단한 '국장책임제'를 없애는 데 급급했고, 이 오더의 실행을 지상과제로 여긴 것"이라고 밝혔다.

김연국 본부장은 "철저한 수사가 중요하다"며 "문건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지휘부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김 본부장은 "원세훈 국정원장,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 최시중 방통위원장,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문건의 작성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책임자일 것으로 본다"며 "법적 검토를 거쳐 형사고발하겠다"고 예고했다. 또 김 본부장은 "문건의 작동시기가 7년이므로, 수사 대상도 그만큼 넓혀야 한다"며 "김장겸, 안광한,백종문 등 MBC 경영진. 그리고 방문진 고영주 이사장과 김광동 이사의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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