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라인 내 불협화음 논란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청와대가 사실상의 ‘공개 경고’를 하고 송영무 장관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를 했지만 파장은 확대되고 있는 형국이다.

시작은 문정인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발언이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그간 강조해온 북한 수뇌부 참수부대 창설, 북핵 방어를 위한 4D체제 확충 등의 계획을 강하게 비판했다. 북한에 대해 적대적 태도만을 고집하면서 미국 무기를 구매하는 기존의 해법을 그대로 답습하게 될 뿐이라는 요지였다.

송영무 장관은 18일 국회 국방위에서 문정인 특보 발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의 질문에 “그 분은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안보특보라든가 정책특보가 아닌 것 같아서 개탄스럽다”며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외교안보라인이 ‘자중지란’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19일 청와대는 “국무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송영무 장관에게 주의를 줬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런 상황은 보수언론의 20일자 지면에 그대로 반영됐다.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청와대의 경고에 대해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 뜻과 다른 발언을 해온 송 장관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했고 사설에선 “차라리 문 특보를 국방장관 시키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사설에서 “청와대의 옐로카드는 대상과 방향 모두에 문제가 있다”면서 “청와대가 송 장관에게만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린 것은 안보보다 남북 대화만 중시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다”고 썼다.

문재인 정부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사들이 서로 철학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이 이 사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청와대가 송영무 장관에게 경고를 한 게 문정인 특보의 손을 들어준 것이고 남북 대화만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 것인지는 의문이다.

청와대가 밝힌 경고 이유를 다시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는 송영무 장관에 대한 주의 조치 사실을 공개하면서 그 근거로 “국무위원으로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과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한 점”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란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것 같은 느낌” 등에서 볼 수 있듯 일상어법에서도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표현이 국회에서 나왔다는 점을 지적한 걸로 보인다.

“조율되지 않은 발언으로 정책적 혼선을 야기한 점”은 송영무 장관이 당시 국회에서 “대북 인도 지원 시기는 굉장히 늦추고 조절할 예정이다”라고 발언한 사실을 지적하는 걸로 보인다. 이 발언은 통일부 업무에 관한 것이므로 국방부 장관이 단정해서 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통일부는 청와대의 경고 이후 언론에 “국방장관이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입장이 변함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국방장관이 정부 입장이 바뀐 것처럼 말했다면 사실과 다르다”는 등의 입장을 밝혔다. 주무 부처끼리 서로의 입장을 곡해하고 반박한 셈이 됐는데, 정부가 이런 식의 모습을 보이는 걸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하자면 송영무 장관의 ‘철학’이 아니라 ‘행태’의 문제라는 것이다. 송영무 장관은 문정인 특보의 ‘자유분방함’을 문제 삼았지만, 사실 언행에 있어서의 자유분방함을 따지자면 송영무 장관 본인도 결코 문정인 특보에 뒤지지 않을 것이다. 송영무 장관은 이전부터 군사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언론에 쉽게 얘기하고 국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여 왔다. 여당 일각에서 송영무 장관의 ‘순발력’이 문제라는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문정인 특보에 대한 비판이나 대북 지원 일정 조정 등의 문제도 “내가 답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으면 그만인 것을 굳이 일을 키웠다는 거다. 결국 ‘트러블메이커’에 가까운 두 사람의 충돌이라는 일면을 보지 않으면 이 사건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오히려 ‘철학’을 중심에 놓고 말하자면 문재인 정권에서는 대화론자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문정인 특보는 정권 초기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고려됐다. 여러 개인적 문제가 작용했다는 뒷말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문정인 특보가 국가안보실장직을 맡지 않게 되면서 정권 내 대화론자들의 입지가 좁아진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문그룹의 일원이었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1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로부터 자문 요청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안 찾아온다, 쓴 소리를 많이 하니까”라면서 “정권창출이나 대선 과정에서 외곽에서 도운 사람은 계속 밖에 있고 이미 팀이 짜여 있는데, 경험과 나름대로의 식견, 이론도 있는 사람들이 밖의 사람들에게 코치를 받을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정세현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후보 시절과는 다른 사람 같다”, “아베 같다”며 아주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대화론자들이 소외감을 느끼는 동안 대북강경책과 군비확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정권의 행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이 반복 확인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20일 한국과 미국 양국이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해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실무선에서는 이미 논의가 끝났고 유엔총회 기간 동안 이뤄질 한미정상회담 이후 핵잠수함 도입 사실이 공개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청와대는 이 보도에 대해 양국 간 어떤 합의도 이뤄진 바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상태다.

핵잠수함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하게 주장한 것이고 실제 참여정부가 핵잠수함 도입을 강력히 추진한 바도 있기에 이런 보도가 나오는 조건이 형성되는 것은 예상된 일이다. 동시에 이 건은 해군 출신인 송영무 장관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왔다는 점이 일정을 앞당기는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가능하다. 송영무 장관이 지난달 말 한미국방장관 회담에서 국내 여론을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전술핵 재배치 논의에 불을 붙이고, 이후 며칠간 청와대가 이 문제에 대해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는 국면이 이어졌다는 것도 함께 봐야 한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등은 이전 정부의 졸속 무기 도입 사례 등을 문제삼고 있는데, 이의 실천적 결론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요구하는 첨단무기의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현재 문재인 정권의 외교안보정책은 문정인 특보가 아니라 송영무 장관 쪽에 기울어져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을 주도하는 것은 특정 참모라기보다는 문재인 대통령 자신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의 경고가 문재인 대통령이 출국한 사이에 이뤄졌고 ‘사후보고’ 됐다는 점도 이런 의구심을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즉, 이 문제가 문재인 정권이 대화론자들의 손을 들어주는 결말을 맞았다는 보수언론의 해석은 이런 정황을 외면한 것으로 다소 불성실하거나 악의적이라고 밖에 평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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