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뢰 폭발 가능성’ 집중 조사(3월 29일 조선일보 1면)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고 한 적 없다”(3월 30일 조선일보 1면)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3월 31일 조선일보 1면)

초계함 침몰 사건을 두고 <조선일보>가 북 개입 가능성에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 3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급기야 31일인 오늘 ‘“침몰 전후 북 잠수정이 움직였다”’는 기사를 통해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미 정찰위성 사진 등을 정밀 분석해본 결과, 백령도에서 50여Km 떨어진 사곶기지에서 잠수정(반잠수정)이 지난 26일을 전후해 며칠 간 사라졌다가 다시 기지로 복귀했다”고 전했다. 이 이야기의 진원지는 다름 아닌 ‘정부 소식통’이었다.

그러나 그 ‘정부 소식통’은 곧바로 “북 잠수정이나 반잠수정이 기지에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어서 이번 사고와의 연관성을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의 개입 가능성은 확인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북 개입 가능성이 높아졌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이 ‘정부 소식통’의 말을 그대로 받아 이 같은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조선일보’의 27일 보도는 달랐다

<조선일보>가 북 개입 가능성에 군불 때기 시작한 것은 29일부터라고 분석된다.

27일 <조선일보>는 “군 당국은 일단 북한 대함미사일이나 해안포 공격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전투함이 갑자기 침몰한 것으로 미뤄 북한의 잠수함이나 잠수정의 어뢰나 기뢰에 의한 공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었’다. 주목할 것은 군 당국 역시 26일에는 북한의 개입설을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었다는 점이다.

물론 당일 <조선일보>는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는 가운데 “북한의 소형 잠수정이 소형 어뢰를 장착하고 은밀하게 침투해 천안함의 뒤에서 공격했을 가능성은 제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바로 “이는 추후 조사에 의해서 밝혀야 할 부분”이라고 한 발 물러섰다.

그랬던 <조선일보>가 29일부터는 확실히 보도태도가 달라졌다.

29일자 1면에서 <조선일보>는 “군 역시 사건의 원인을 잠수정의 어뢰 공격 혹은 기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군은 “선박 내부의 실수 또는 암초와의 충돌 등 단순 사고에 의한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며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천안함 사고 후 네 번째 소집된 28일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현 단계에선 기뢰에 의해 배가 침몰됐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추정했다”고 전했다.

또한 30일에는 김태영 국방장관의 “북한 개입 가능성 없다고 한 적 없다”는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이어 <조선일보>는 “북에서 떠내려 온 기뢰보단 의도적으로 설치된 기뢰 쪽에 무게를 두는 듯한 발언”이라고 적극적으로 해석까지 했다. 물론 <조선일보>에서 모든 정보가 모인다는 국가정보원의 해석, 즉 북 개입보다는 내부 폭발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도 없다.

▲ 조선일보 29일자 1면 기사(좌)와 30일자 1면 기사(우)
<조선일보>는 ‘왜’ 북의 개입설을 주장하고 나섰나

이와 관련해 <경향신문>은 31일자 ‘초반 신중하던 여권, 슬슬 ‘북한 끌어들이기’’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정부와 여권이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을 놓고 서서히 북한을 겨누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여권은 천안함 침몰 사고와 북한을 되도록 연관짓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역시 “원인에 대한 섣부른 예단과 그에 따른 혼란이 생겨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왜 초계함의 침몰에 ‘북’의 개입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일까? <경향신문>은 “정부여당이 이처럼 근거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미리 북한을 거론하기 시작하는 것에는 복합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천안함 침몰 사고 이후 실종자 수색작업 등 정부와 군의 미숙한 대응에 대한 비난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며 “특히 천안함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한 규명작업이 늦어지거나 장기화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개입 가능성을 공식화함으로써 정부와 군의 책임론을 차단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초계함 침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40.0%로 떨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개입설은 정부 및 군의 책임론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 31일자 경향신문 6면
또한 <경향신문>은 “북한의 개입설은 또 천안함 침몰 사고가 6월 지방선거에서 여권에 미칠 악영향을 제어해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당장 보수세력의 결집에도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에 없는 정부의 정보통제 문제

물론 현재 상황에서 어뢰나 기뢰 등에 의한 충돌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의혹을 정부에서 키우고 있는 측면이 크다. 군에서는 중요한 정보들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군이 공개를 거부했던 사고 당일 동영상 역시 40분짜리를 1분 15초만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현재 사건의 원인을 찾는데 쟁점으로 떠오른 군의 교신 내용은 공개조차 안 됐다. 군 당국은 당초 사건이 9시 30분에 발생했다고 했지만 실종자 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9시 16분 경 “(실종자가)비상이니까 나중에 통화하자며 끊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도 교신 내용에 대한 공개 여부가 사태 파악의 관건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이기식 합동참모본부 정보작전처장은 31일 브리핑에서 “(교신록이) 공개할 수 있는 범위가 되는지 봐서 공개할 수 있으면 공개할 것”이라면서도 “교신일지는 군사작전과 관련한 모든 사항이 다 들어가 있는 군사비밀이라 어떤 수준과 범위에서 공개할지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해 벌써부터 은폐의혹에 시달리고 있다. 이처럼 어느 때보다도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은 군 당국의 이 같은 ‘비밀주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 31일자 한겨레 3면
물론 <조선일보>에는 이 같은 정부에 대한 비판은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만 ‘정부 소식통’이란 명명으로 북한의 개입설에 군불만 때고 있을 뿐이다.

북 개입설이 미치는 영향을 어디까지?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섣부른 ‘북’의 개입설은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경향신문> 역시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행동 징후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북측의 개입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한반도 상황의 안정관리에 도움이 되지 않고 남남갈등과 남북갈등만 야기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선일보>의 북 개입 가능성 보도는 이미 타 보수언론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9일까지도 조용했던 <중앙일보>가 30일 1면에서는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김태영 국방장관의 “북 개입 가능성 없다 한 적 없다”는 발언을 받아 제목으로 뽑았고 북개입설 군불 때기에 동참하고 나섰다.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이쯤되니 역으로 초계함 침몰 원인을 북한 개입으로 몰아가라는 ‘큰집’의 공문이라도 각 언론사에 뿌려진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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