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점에서 문재인 정권은 참 운이 좋다. 첫째는 국정 의제를 선정하는 데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촛불혁명이 신정부의 제일 과제로 '적폐청산'을 정해주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적확한 국정 의제를 선정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역대 정부를 보면 대통령이 민심과 동떨어진 의제를 고집하다가 국민의 지지를 잃은 경우가 태반이었다. 구체적인 과제를 찾는 일도 어렵지 않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저지른 나쁜 짓을 밝히고 제대로 바로 잡기만 하면 국민들이 지지한다. 물론 두 정권의 배설물이 짐이 되기도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이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공원에서 열린 시민들과 함께하는 개표방송에서 추미애 대표와 함께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는 무능한 야당을 두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두 정권에 대한 책임 때문에 현 정권이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 엔간해선 힘을 쓰기 어렵다. 원내 제3당인 국민의당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은 비단 현 정권의 의제일 뿐 아니라 촛불혁명의 명령이다. 적폐청산에 관한한 조건없이 협력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여당이 적당히 하려는 유혹에 빠지거나 관료와 적폐세력의 저항에 흔들릴 때 국민의 편에서 준엄하게 비판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그런 모습을 당최 보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반대를 위한 반대라는 인상을 주거나, '지지율이 5% 밖에 안 되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심정으로 막나간다'는 말을 들을 지경이다. 이래서는 다음 선거에도 희망이 없다.

그런데, 문 정권에 좋은면 나라에도 좋은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행운이 정부여당의 정국주도권 유지강화에 '당분간'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봐서' 좋을지 의문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분명히 좋지 않다.

적폐청산은 지지자들을 열광하게 하고 속 시원하게 하는 사이다 같은 개혁이지만, 근본 개혁이나 구조 개혁보다 외과 수술에 가깝다. 정부여당은 여러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는 까다로운 구조 개혁에 섣불리 손을 댔다가 자칫 반발에 부딪힐까 두렵고 지지율 관리에 도움이 되는 적폐청산이라는 구호에 계속 매달리기 쉽다. 구조 개혁은 사라지고, 정부여당의 주위에는 강남좌파류의 열성적 지지자만 남지 말란 법이 없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예방한 국민의당 안철수 신임 대표(왼쪽)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무능한 야당은 정부여당의 '오만'이 자라나는 배양기다.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지만 박근혜 정권이 보인 오만의 절반은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무능 덕이다. 무능한 야당 때문에 정부여당의 국정주도는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이런 상태가 이어지면 집권세력 안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날 오만에 결국 잡아먹힐 거라는 사실을 우리는 불과 얼마 전에 우리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는 다시 한 번 절단나고 국민 특히 서민들의 고통은 가중된다.

촛불혁명의 구호가 겉으로는 적폐청산으로 모아졌지만 더 크고 근본적인 과제는 다른 곳에 있다. 불평등 해소와 기득권 타파이다. 물론 한반도 평화도 빼놓을 수 없다. 촛불혁명 전까지 지난 대선의 핵심 의제는 불평등이 될 거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었다. 적폐청산에 밀려 불평등 해소와 기득권 타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 불평등 해소와 기득권 타파는 정의로울 뿐아니라 시장경제의 역동성을 높인다는 미덕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야당 특히 국민의당은 실체 없는 중도놀음을 걷어 치우고, 정부여당의 태도에 투정이나 부리지 말고, 적폐청산에 적극 협력하면서 우리 사회의 근본 의제를 부여잡고 꿋꿋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고 집권세력이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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