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는 너무도 답답하고, 갑갑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낙마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야당의 묻지마 반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보복심리나 다름없다. 정국은 무겁고 불쾌한 늪에 빠져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채이다. 대신 보도 거리가 많아진 언론만 호황을 맞고 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암담한 것만은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대정부 질문에 나선 이낙연 총리가 연일 쏟아낸 우문현답의 말들은 꽉 막힌 시민들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고, 완장 찬 야당 의원들의 말도 안 되는 정치공세를 완벽하게 차단했다. 김이수 후보자의 낙마와 이낙연 총리의 존재감. 잃은 만큼 얻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이낙연 총리의 답변을 포함해 파란만장했던 한 주의 어록을 정리해봤다.

이낙연 “잘 안 봅니다. 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주 가장 핫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이낙연 총리일 것이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역대급 답변을 쏟아내며 네티즌들을 환호케 했으며, ‘여니홀릭’ 현상을 만들었다. 여니홀릭이란,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이 이니인 것처럼 이낙연 총리 역시 이름의 마지막 음절을 이용해 만든 애칭이다.

네티즌들의 속을 뻥 뚫어준 우문현답이었던 이 말은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이 “최근 KBS나 MBC에서 불공정 보도를 한 것 혹시 기억나시거나 본 게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눈 가리고 아웅도 아니고, 온 국민이 공영방송의 문제를 말하는데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 엄숙해야 할 대정부질문에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는 상황에서 곧이곧대로 답변하는 것도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매우 슬픈 코미디. 이 총리의 이 답변으로 대정부 질문은 그나마의 품격이라도 지킬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언론인 출신이라서, 이런 상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촌철살인이 가능하다는 말들을 한다. 그러고 보면 요즘 정가의 언어에서 은유와 뉘앙스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막말을 쏟아 붓기 바쁜 마당에 언어의 절차탁마는 사치일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이낙연 총리의 '고품격' 대정부질문 답변 시리즈는 요즘 국회의원들에게 던지는 의미가 더 많고, 무겁다.

안철수 “김이수 후보 부결될지 몰랐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13일 오전 전북도청을 방문해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주에 일어난 일의 무게를 생각하면 이 말은 도저히 뺄 수가 없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비준이 무산되게 한 캐스팅보터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한 마디를 꼽았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 부결 다음날인 13일 전북을 방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역 정치부 기자들의 부결 책임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 내용이 화제가 됐다. 안 대표는 “그 분이 사법부의 독립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지, 소장으로서 재판관들을 이끌어갈 수 있는 분인지 판단한 것”이라면서도 “부결될지는 몰랐다. 전혀 의도한 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지난 정부 시절 유행했지만 주인공이 교도소에 들어가 다시 볼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유체이탈화법의 부활이라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들끓었다. 김이수 후보자 비준이 무산된 날 본인이 직접 “20대 국회 결정권은 국민의당에 있다”면서 부결을 자랑삼아 말한 장본인이 하기에는 시치미를 떼도 너무하다는 반응인 것이다.

김어준 “군인 하다가 바로 대통령 된 사람을 세 명이나 배출했으면서”

TBS 김어준 뉴스공장

“보수정당에서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경륜이 부족하다고 공격하고 있어요. 경찰서장 하다가 갑자기 총장 될 수 없는 거 아니냐. 이 얘기를 듣고 바로 생각난 게, 아니, 자기들은 군인 하다가 바로 대통령 된 사람을 세 명이나 배출했으면서 평생 법을 한 분한테 할 말이 아니다 싶은데”

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TBS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 김어준이 15일 한 논평이다. 여기에 더 붙이고 뺄 것은 없다. 완벽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색깔이 뚜렷하다는 의미다. 세상에 많은 정치 전문가가 있고, 평론가, 기고가 등등이 존재하지만 이런 식의 논평은 김어준만 가능하다. <나꼼수>의 향기가 그대로, 날것의 힘을 느끼게 하는 날선 논평이다. 그 어둡던 시절 울분을 달래주던 <나꼼수>였던 것처럼 다시 어둠이 몰려오는 상황에도 역시 김어준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