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이후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는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국민의당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는 것보다는 ‘무슨 생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국민의당이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내놓은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는 “사법부 독립에 적합한 분인지, 헌재 소장으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말했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CBS라디오 방송 출연 등을 통해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와 류영진 식약처장 등에 대한 모종의 조치를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한 청와대의 태도가 표결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김동철 원내대표는 12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딜’의 문제라기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이탈표가 사태의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물론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라는 사태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됐든 같은 정견을 가진 정치적 결사체인 국민의당이 자신들이 한 일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보는 사람을 당혹스럽게 한다. 이 상황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의당이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는 못한 것 같다는 점이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이 사태는 ‘설계’라기 보다는 ‘사고’에 가까운 것 같다. 단 2표 차이로 중요 안건을 부결시킨다는 것은 야3당이 긴밀하게 사전에 협의하고 면밀한 표 계산을 토대로 공동행보를 한 결과가 아니라면 쉽게 계획하기 어려운 일이다.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철회 과정에서 의결정족수 변동 가능성이 증대했다는 점도 이런 추측을 뒷받침한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부결 다음 날인 12일 신문 지면은 논조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원인을 설명했다. 비교적 진보적인 논조를 갖고 있는 신문은 이 사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를 보수 기독교 세력이 국민의당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보낸 결과로 해석했다. 반면 보수적인 논조의 신문은 ‘대여투쟁’을 강조하는 안철수 대표의 태도가 의원들의 표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치명적 조건’으로 작용한 것은 애초에 국민의당이 안건에 대해 당론을 정하지 않고 ‘자유튜표’ 방침을 적용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민의당이 이런 방침을 적용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다. 첫 번째는 당론으로 찬성 표결을 정할 만큼 안건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고 두 번째는 그 외의 이유로도 당내 주요 구성원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 국민의당은 이전 국면에서 수차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 문제를 다른 인사에 문제제기를 하는 지렛대로 활용해 왔고 정세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에 대한 동의로 이런 흐름을 끊겠다는 나름의 입장 표명을 한 것이기 때문에 표결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호남 출신인 김이수 헌법재판관 본인에 대해 국민의당도 우호적 태도를 보여 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아무리 자유투표 방침을 정했다 하더라도 이심전심으로 의원 다수가 찬성표결을 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그러면 남는 것은 뭔가 다른 이유가 사태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국민의당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 이후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에는 안철수 대표가 말하는 “국민의당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는 것보다는 ‘무슨 생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 더 크게 작용할 것이다. 국민의당이 김이수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내놓은 메시지가 일관되지 않고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1일 오후 국회 대표실을 방문한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대표의 “사법부 독립에 적합한 분인지, 헌재 소장으로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는 분인지, 두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 결과”라는 말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안철수 대표의 발언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임명동의안 처리 반대를 주장한 근거와 사실상 같은 것이다. 중소기업벤처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인사나 이러저러한 헌법재판소장직을 둘러싼 규정의 문제라기보다는 김이수 헌법재판관 본인의 성향이 문제라는 말이다. 김동철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 애초의 ‘표 계산’이 틀린 것에 당혹스러워 한다는 점을 함께 고려하면 결국 안철수 대표의 이런 입장이 국민의당 개별 의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하다. 추측건대 그 위력은 ‘2표 이상’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의 맥락은 김동철 원내대표나 박지원 의원이 말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국민의당이 직면한 진로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성향이 문제라고 한다면 안철수 대표와 그의 의견을 따르는 의원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 이념적 성향으로 따지면 오히려 김명수 후보자가 더 ‘진보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만일 국민의당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까지 부결시킨다면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이 강력한 대여투쟁이라는 단일 전선에 서는 그림이 훨씬 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 상황은 두 가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여소야대 상황을 뒤집기 위한 여당 중심의 정계개편 시나리오 촉발이다. 일부 언론은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이후 노태우 정권이 3당 합당을 추진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이 시나리오는 현재로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어느 수단을 동원해서든지 실질적으로 국민의당을 분당시켜 20석을 초과하는 의석을 흡수할 때만 가능하다.

두 번째는 안철수 대표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당 일부가 보수정당이 주도하는 정계개편으로 끌려 들어갈 가능성이다. 안철수 대표는 지방선거까지는 현재의 스탠스를 유지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과의 우호적 관계 형성 보다는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 등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수정당 소속 인사들 일부는 이를 염두에 둔 구체적인 야3당 간의 지방선거 대응 계획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상황이다. 만일 이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최악의 경우 호남 여론을 중시하는 일부 의원들이 국민의당을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첫 번째 경우’와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이런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당이 설전 끝에 김명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는데 협조하고 ‘캐스팅보터’로서의 존재감을 높일 가능성이 더 크다. 또 보수정당 중심의 정계개편론 역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사이에서만 작동할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큰 게 사실이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13일 당의 진로를 두고 끝장토론을 벌여 결론을 내지 못할 경우 연말에 당이 깨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경우가 현실이 되더라도 바른정당 출신 일부 의원들이 국민의당에 입당하고 나머지는 자유한국당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 사태가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겪고 있는 ‘진로문제’가 잠복해있는 상황에선 정국의 불안정성은 지속적으로 문재인 정권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권과 여당이 이 ‘리스크’를 제거하려면 수단은 두 가지 뿐이다. 국민의당이 내세우는 명분을 받아들여 문제 인사들은 정리하고 ‘협치’를 잘해보는 것으로 가닥을 잡거나, 국민의당을 강하게 압박해 여당 중심의 정계 개편이라는 난전으로 상황을 끌고 가거나이다.

우원식 원내대표와 추미애 대표의 태도 차이가 여기서 불거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무엇을 선택할지의 기준은 한국 정치에 어떤 선택이 장기적으로 더 긍정적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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