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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베이비 드라이버’, 코너링이 악보처럼 노닐지만 젠더 감수성은 아쉬워[블로그와] 박정환의 유레카
박정환 | 승인 2017.09.12 11:49

은행 털기는 팀워크가 완벽해야 가능한 범죄다. 아무리 은행을 잘 털어도 일행 중 하나가 은행에 범죄의 단서를 떨어뜨리거나 추격해오는 경찰을 따돌리지 못하면 강도 행각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면서 은행 강도 행각에 있어 중요한, 운전사 ‘베이비’가 주인공인 영화다. 

베이비의 진가는 일행이 은행털이를 끝내고 차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발휘된다. 일행이 차에 타기 전까지는 아이팟의 리듬에 몸을 맡기는 흔한 젊은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행이 차에 타는 순간부터 베이비는 신출귀몰하는 코너링으로 추격하는 경찰을 조롱하고 따돌린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통해 신기에 가까운 스크린 속 운전에 익숙한 관객이라 해도 베이비의 운전 실력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사를 지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스틸 이미지

<베이비 드라이버>는 환상적인 운전 실력을 가진 십대 액션 활극으로만 보기에는 아까운 면이 있다. 21세기 은행 강도 영화에서 서부영화의 코드가 보이기에 그렇다. 지금은 고인이 된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서부영화의 숱한 마초들이 여성에 의해 교화하고 있음을 탁월하게 짚어낸 적이 있다. 

제아무리 사나운 마초 혹은 무법자라 할지라도 사랑하는 여성에 의해 기존 삶의 패턴인 범죄라는 삶의 방식이 와해되고 결국에는 어둠의 삶을 청산한다는 코드는 <용서받지 못한 자> 등 다수의 서부영화 가운데서 찾아볼 수 있다. <베이비 드라이버> 역시 서부영화의 이런 코드-사랑하는 사람에 의해 기존의 범죄 행각에서 벗어나는 코드가 보인다. 

베이비가 웨이트리스 데보라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는 것으로부터 베이비의 환상적인 드라이버 커리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청춘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그 여파로 베이비가 몸담고 있던 범죄 조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테마는 로저 에버트에 의하면 서부영화의 코드에 빚지는 거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스틸 이미지

그렇지만 주인공이 범죄에서 발을 떼는 계기, 베이비와 데보라가 서로에게 끌리는 장면에서 젠더 감수성의 결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베이비와 데보라가 눈이 맞는 첫 장소는 데보라가 일하는 식당이다. 

데보라가 처음 보는 손님인 베이비와 대화하는 시간이 2분가량 된다. 고용인과 고용주의 입장으로 볼 때엔 데보라가 근무 중 태만을 보인다는 점을 베이비와 데보라의 첫 데이트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 장면은 엄연히 웨이트리스라는 여성이 남성인 사장에게 민폐를 끼치는 장면으로 인지할 수 있다. 여성이 남성에게 민폐를 끼칠 수 있음을 영화는 웨이트리스의 2분이 넘어가는 남자 손님과의 잡담을 통해 역하지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별 거 아닌 장면을 확대해석할 수도 있겠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갖는 젠더 감수성의 결여는 데보라가 사장에게 끼치는 민폐가 다가 아니다. 베이비는 어릴 적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고아다. 그런데 베이비의 회상 장면을 되돌아보면 어머니가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운전석에서 아버지와 심한 부부싸움을 한다.

영화 <베이비 드라이버> 스틸 이미지

베이비의 어머니가 말싸움을 하는 남편으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에 베이비의 어머니는 앞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일으킨다. 여성이 한눈파는 사이에 남편과 아들에게 큰 사고를 야기하는 베이비의 회상 장면 또한 이 영화가 여성을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은연중에 묘사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여성을 실수를 저지르기 쉬운 존재로 은연중에 묘사하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방식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NASA 프로젝트에 공헌함으로 말미암아 흑인 여성의 지성이 백인과 남성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걸 PC, ‘정치적 올바름’의 관점으로 증명한 <히든 피겨스>와는 정반대의 지점에 자리한다.

여성을 고문하고 벌거벗은 알몸을 묘사하는 것도 모자라 낚싯줄로 피가 튀도록 무참하게 살해하는 <브이아이피>, 여성의 배에 구멍이 나지 않으면 안 되는 줄 아는 <청년경찰>만 젠더 감수성이 아쉬운 게 아니다. 은연중에 여성을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묘사하는 <베이비 드라이버>의 연출 방식 역시 젠더 감수성으로 보면 문제가 있는 영화라는 걸 감지할 수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박정환  js7kei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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