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노 대단원은 아주 많은 것들을 일사천리로 정리했다. 어떻게 보면 한 시간에 담을 수 없는 너무 많은 내용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먼저 업복은 초복과 헤어진 후 남은 총 네 자루를 들고 혈혈단신 광화문 앞으로 가서 궁궐을 테러한다. 그러던 와중에 궁궐 수비직을 얻은 박기웅을 처리하고, 좌의정 이경식마저 사살하고 붙잡힌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활약이었지만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속풀이는 제대로 해주었다.

워낙 커진 시청자 기대치에 대한 팬서비스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업복의 마지막 신은 누굴 죽였다의 의미보다는 저항하다 잡히는 것이고 그때 닫히는 문 사이로 주먹을 불끈 쥐는 반짝이 아비와 말없이 주고받는 눈빛의 의미일 것이다. 반짝이아비는 현실에 저항하기를 거부하고, 문제의식조차 회피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업복의 행동을 보며 주먹을 쥐어 보인 것은 해를 바라보던 초복이와 은실이의 마지막 신과 바꿔도 좋은 아니 더 걸맞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업복보다 대길과 태하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는데, 드라마 두 주연의 결말에 갑자기 중량을 덜어낼 수도 없을 것이다. 멋진 호흡으로 추격대를 따돌리고 갈대밭 사이를 질주하며 두 사내가 마침내 서로를 보며 웃었다. 어떤 이유로도 가까워지기 어렵고, 친구는 더욱 될 수 없었던 대길과 태하는 사선을 함께 넘으며 어느덧 친구가 된 듯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태하가 넌지시 "그대와 벗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했었다“라고 마음을 떠보지만, 대길은 노비와는 친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메여 있는 것들은 모두 노비"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둘이 친구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은 추노 시청자라면 누구나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노비이기 때문이 아니라 운명은 그들을 적도 아니지만 친구도 되지 못할 관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미 친구보다 더 깊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을 드러내고 교분을 나눌 여유를 가질 수 없을 뿐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발 딛고 선 시대가 칼날같이 위험한 탓이다.

그 날선 시대는 대길과 태하에 대한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규모 군사를 대동한 철웅은 마침내 태하와 언년과 맞닥뜨리게 되고, 역시 육감이 발달된 대길은 태하의 위기를 직감하고 부리나케 달려가 싸움에 합류한다. 마지막으로 철웅만 남았을 때에 태하와 언년을 먼저 떠나보내고, 잠시 후 합류한 추격부대로 인해 최후를 맞게 된다. 대길의 죽음은 암시적으로 태하와 철웅에게 큰 변화의 계기가 된다.

대길의 희생으로 위기를 피한 태하는 한참을 걸어가다 언년에게 새로운 결심을 밝힌다. 그들의 피신처인 청으로 가지 않고 그가 빚진 것 많은 이 나라를 위해, 혜원과 언년 두 이름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이 또한 업복과 반짝아비가 주고받은 시선을 말로 표현한 듯하다. 그리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사내 철웅 또한 태하의 추격을 포기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처음으로 장애인 아내의 손을 잡고 목 놓아 울음을 터뜨린다.

여기까지가 간략한 추노 대단원의 요약이다. 대길은 죽었고, 업복도 죽게 될 것이다. 태하는 부상을 입었지만 살았으며 철웅 역시 마찬가지다. 추노의 주인공인 대길이 죽었으니 새드 엔딩이기는 하지만 추노의 결말은 한성별곡의 허무와 비극과는 다른 무엇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섣불리 희망이라고 말하기는 주저된다. 태하가 남긴 말을 희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추노의 결말에 결부된 많은 상황들을 희망 하나로 묶기는 힘들다. 그렇지만 적어도 비극적 결말은 아니라는 것만은 말하고 싶다.

반짝이 아비에게는 업복의 분노가 전해졌고, 태하에게는 대길의 희생이 더해졌다. 자기 삶을 떠나야 했던 두 사내의 동기는 분노와 희생(혹은 사랑)이었고, 그 때문에 떠나지 못한 태하는 언년에 대해 보류했던 인식을 확정하며 '언년으로도, 혜원으로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게 됐다.

누군가의 희생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고 민들레홀씨처럼 그렇게 또 어딘가에 싹을 틔운다. 그것은 희망이라는 말로도 혹은 섭리라는 말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에 빚진 사람은 분명 태하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추노는 막을 내렸지만 아직 우리들 속에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추노가 남긴 것은 그 이야기의 불씨였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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