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기국회에서 제대로 잘 해서 존재감을 드러내겠다. 결정권은 실제로 국민의당이 가졌다는 것을 국민이 아시게 될 것이다" / 9월 10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안철수 대표의 호언장담대로 국민의당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존재감이 안 대표의 말대로 '제대로 잘해서' 드러난 것인지는 의문이다. 국민의당의 존재감 표출 대상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였기 때문이다.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것은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연합뉴스)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찬성 145명 대 반대 145명, 동수로 부결됐다. 기권은 1명, 무효는 2명이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 확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서로 껴안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표결을 앞두고 국무위원까지 모두 동원했고, 의원총회까지 열어 전원 찬성을 독려했다. 이날 표결 결과가 찬성 145명이란 점에서 국민의당 소속 의원의 절반 이상이 반대표를 던져야 가능하다.

민주당 소속 의원은 120명, 진보성향의 정의당 6명, 새민중정당 2명, 무소속 서영교 의원, 정세균 국회의장을 모두 더하면 130명이다. 남은 표는 15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김이수 후보자 헌재소장 임명에 반대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 15표는 국민의당의 찬성표로 판단된다.

국민의당의 의석수는 40석이다. 이 중 김광수 의원을 제외한 39명이 이날 표결에 참가했다. 즉, 적어도 24명의 국민의당 의원이 김이수 후보자 헌재소장 임명을 반대한 셈이다. 사실상 국민의당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안철수 대표는 본회의 직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존재감을 내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면서도 "여러 번 말했듯이 지금 20대 국회에서 국민의당이 결정권을 갖고 있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아니라면서도 내심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뿌듯했던 모양이다.

사실 양당제 구조가 고착화됐던 국회에 캐스팅보트를 쥔 제3당이 출연해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것은 한국정치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 첫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 김이수 헌재 소장 임명동의안 부결이라는 게 문제다.

김이수 후보자는 기존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다른 고위공직자들에 비해 결격사유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가 고위공직자 결격사유로 지목했던 5대 비리에 단 한 건도 걸리지 않았던 공직후보자가 김 후보자다.

보수야당이 통합진보당 해산 반대 소수 의견, 동성애에 대한 인식 등을 이유로 김이수 후보자에 대해 반대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대체로 '깔끔'했다. 문재인 정부 인사 중 서훈 국정원장과 함께 가장 흠결 없는 공직후보자가 바로 김 후보자였다. 그런데 이런 후보자가 국민의당 존재감 과시의 희생양이 됐다.

이번 '김이수 부결 사태'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여러 정책들이 난관에 봉착할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이날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사실상 안철수 체제의 국민의당이 문재인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예고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기 위해 필수적인 법 개정, 예산안 등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이런 식이라면 각 사안마다 여당인 민주당이 열세에 몰릴 가능성이 높다. 향후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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