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불허전이란 말을 아낄 필요는 없었다. 누구나 다 알면서도 충실하기 힘든 시작 5분의 법칙은 동이에서 철저하게 지켜졌다. 같은 붕당의 대사헌을 강변에서 암살하는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동이의 스토리 구조와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 서정성과 긴장감을 고스란히 압축해 담아냈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대장금으로 시작해서 허준, 이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극 명가 이병훈 감독의 명성에 걸 맞는 어쩌면 그 이상의 장면들이 보는 눈을 호사시켰다.

매번 그럴 수야 없겠지만 첫 회에 거의 모든 드라마의 갈 길이 정해진다는 측면에서 동이의 앞길을 무척 밝아 보인다. 특히 동이의 어린 시절을 그릴 전반 4회의 다소 떨어질 수 있는 관심 때문에 대규모 연희 장면을 비롯해서 추노를 연상케 하는 몇 번의 액션, 그리고 아이들의 달리기 경주 등등 상상 이상의 보조출연자들을 동원해 동이의 앵글 화각을 대폭 늘렸다. 많은 가정의 와이드 스크린이 제 빛을 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계(천민들의 비밀결사)를 등장시켜 추노에 익숙해진 천민 분위기가 반가웠으며 정진영, 정동환 등이 검계와는 달리 동이의 주요 배경이 될 권력층의 무거운 색채를 간단하지만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동안 이병훈 감독의 사극들이 대부분 주인공의 성장을 그린 것처럼 이번 동이도 그런 기본 구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린 동이를 맡은 아역은 무엇보도 중요하다.

요즘 아역들이 어지간한 중견을 놀라게 하는 연기력을 보이지만 동이 아역의 김유정은 그중에서도 발군이 아닐까 싶다. 생김새도 한효주와 동글동글한 눈망울까지 닮아 적절한 캐스팅이었고, 어린 동이의 똑똑하고 활기찬 그러면서도 천진무구한 연기로 인해 성장기의 지루함 따위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진작부터 동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온 이유는 이번 사극의 주요 배경이 장악원이라는 점이었듯이 첫 회 장악원 장면들을 눈이 빠져라 기다렸다. 총평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럽진 못했다. 그렇지만 이제 막 시작한 드라마에 재부터 뿌릴 수는 없고 선덕여왕 정도의 길이가 될 앞으로의 일정 동안 얼마든지 말할 수 있기에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그렇지만 적어도 하나만은 칭찬해줄 수 있었다. 바로 무동(舞童)이었다.

극중 명성대비의 연희에 대규모 악사와 무희가 등장하는데, 그 속에 어린 꼬마들이 어린 무용수 사이에 섞여 춤을 추는 장면이 여러 번 보였다. 조금 어설프긴 했지만 어쨌거나 귀엽고 앙증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런 꼬마들이 엄숙해야 할 궁중연희에 진짜로 춤을 췄을까 하는 의문을 가진 시청자가 혹시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첫 회 궁중연희 장면 중에서 이 꼬마들과 기타 인원배치만 고증에 맞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은 예악사상을 근간으로 한 통치를 펼쳤기 때문에 궁중의 행사는 매우 엄격한 음악과 춤이 동반됐다. 아주 큰 행사일 경우 지방 관기들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그들 모두 어린 나이였다. 그러나 엄격한 궁중법도에 어린아이라고 해서 예외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 위해 아주 어릴 때 궁에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통해 각종 행사에 나가 춤을 추게 된다. 실제로 장악원 여령(여자무용수)의 경우는 16살만 되어도 노기(老妓)라고 하여 더 이상 춤을 추지 못하고 다른 업무로 옮겨야 했다.

지금까지 전통무용하면 꼬마는커녕 노인에 가까운 성인들만 봐왔을 일반대중에게는 무척 생소한 일이 되겠지만 사실이다. 사실 기록이 충분치 않은 과거지만 거꾸로 근거할 수 있는 자료들도 분명 존재한다. 현재 궁중무용의 복원․재현에 근거자료가 되는 악학궤범에 의하면 궁중무용 중 독무인 춘앵전과 무산향에는 특별한 소품이 있다. 춘앵전은 돗자리이고, 무산향은 대모반이라 불리는 것으로 여령(여자무용수)는 그 위를 벗어나지 않고 춤을 춰야 한다.

헌데 과거 조선 때 사람들의 체구가 작았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것들의 사이즈가 성인이 움직이기에는 매우 작다. 춘앵전은 그렇다 하더라도 무산향의 경우 대모반 안에서 몸을 비틀며 무대를 돌기까지 해 악학궤범 규격으로 해서는 성인은 도저히 춤을 출 수가 없다. 즉, 아주 어린아이에게 맞춰진 것을 뜻한다. 그러니 동이가 어린꼬마들을 춤추게 한 것은 대견하게도 정확히 사실에 근거한 일이다. 다만 춤의 내용은 앞으로 거론하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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