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한국언론은 '출입처' 위주로 돌아간다. 기자가 자신이 맡고 있는 분야의 기관에 출입해 정보를 얻고 기사를 쓰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다. 바로 '기자단'이다. 당초 매체 수가 급증하면서 기관의 기자 관리를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자단은 이제는 또 하나의 '카르텔'로 변모했다. 각 출입처의 기자단은 출입처로부터 선별적 정보제공과 함께 고정좌석 보장 등의 편의를 제공받고 있다.

한 주간지에 근무하며 법원에 출입하는 A기자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법원이 보도자료 제공을 거부한 것이다. A기자가 왜 기자단에만 자료를 제공하는 거냐고 항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A기자님에게 자료를 주면 기자단에서 반발이 있어 줄 수가 없다" 였다.

A기자는 "기자단 시스템이 지나치게 불합리한 측면이 많다"면서 "왜 같은 기자인데 기자단에 가입돼있는 사람은 자료를 받고 가입하지 못한 사람은 자료를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A기자는 "기자단은 언론의 자유를 위해 편의상 하는 건데, 언제부턴가 특정 언론의 편의를 위한 것이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A기자는 "실제로 기자단에 들어가 있는 사람보다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다"면서 "극소수 몇 사람을 위해 10분, 20분이면 공개될 정보를 차단하는 건 부당하다"고 말했다. A기자는 "기자단 카르텔도 문제지만 결론적으로 기자단을 핑계삼아 정보공개를 꺼리는 당국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른 출입처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외교부의 경우 대변인이 진행하는 정례브리핑 시간이 있다. 정례브리핑에는 모든 출입기자가 참석해 각종 현안에 대한 외교부의 공식 입장을 듣고 질의 응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꺼지면 기자들과 대변인 간의 '백브리핑'이 이뤄진다. 공식적이지 않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백브리핑에는 '기자단'만이 참석할 수 있다. 기자단에 속하지 못한 기자들은 정보를 얻을 기회를 '차단' 당한다.

지난 4월에는 외교부가 30년 전 외교문서 23만 쪽을 공개했는데, '상주기자단' 기자들에만 우선 공개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의 차별에 격분한 모 경제지 소속 B기자가 정례브리핑 시간에 외교부 대변인에게 공개항의하기도 했다.

당시 B기자는 "정보공개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고 사전 인지가 된 상황에서 출입기자가 취재를 하고 거기에 대해 정보공개를 부탁했는데, 정보가 공유되거나 배포되지 않은 것은 언론에 대한 차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B기자는 "언론의 자유가 특정인이나 특정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헌법에 보장된 국민 모두의 자유고,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는 것은 정부, 언론 등 특정 대상이 규제하거나 제한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상주기자단만을 위해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헌법이나 법률에 기반한 국민적 합의의 결과가 아니라고 본다"고 비판했다.

한국은행의 경우 최근 기자실을 이전하면서 '자유석' 제도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기존 고정좌석을 가진 기자단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국은행 측이 기자들의 출석률에 따라 자리를 지정받지 못한 매체가 들어갈 기회를 주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실제로 출석 체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는 미지수다. 고정좌석이 텅 비어있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출입기자들의 증언도 있다.

기자단에 가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기존 기자단의 카르텔이 워낙에 강한 데다, 가입 기준도 자의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자단 가입은 기자단 소속 기자들의 투표에 의해서 이뤄진다. 기자들 간의 친분관계나 매체의 규모, 성향 등은 투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제대로 된 기준 자체가 없이 다분히 자의적으로 운영되고 있단 얘기다.

한 정부부처를 출입하는 인터넷매체 C기자는 "기자단을 가입할 수 있는 기준이 뭔지도 모르겠다"면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실도 이런 걸 본다고 하는데 기준을 충족해도, 기자 간 정치적 요소가 존재해 중소매체들이 이 벽을 허물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C기자는 "괜히 정부부처 기자단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기자단 카르텔과 관련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결국 힘 있고 큰 언론사들을 대우해주고, 작고 약한 언론사를 무시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일반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 사회의 돈 많고, 백 있고, 힘 있는 기득권을 우대하는 것과 다른 게 없다. 이는 또 다른 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는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향해 가는데, 언론사를 차별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윤리적으로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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