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 125회가 종영 한 회를 남겨놓고 봄꽃을 흩날리며 끝냈다. 전에 <지붕 뚫고 하이킥>의 비극적 결말에 대한 논란이 분분할 때 김병욱 PD는 밝은 결말일 수도 있다며, 봄꽃의 이미지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다고 했었다.

그래서 화사하고 따뜻한 봄꽃처럼 행복한 결말의 가능성을 놓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하는 마음. 그런데, 그 봄꽃이 눈물 어린 꽃비일 줄이야. 125회 마지막 장면에 가상의 꽃잎이 흩날리는데 탄식이 절로 나왔다.

물론 마지막 회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 결말의 정서는 125회의 아픈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아직까지 ‘혹시나’가 남아있긴 하지만 흐름이 어둡다.

지훈이 조금 불쌍하게 됐다. 정음과 헤어진 후 사랑의 아픔에 빠졌던 그다. 하지만 극이 세경 위주로 가면서 며칠 동안 툭하면 세경을 마음에 떠올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애인과 헤어져서 충격 속에 있는 사람이 다른 여자 생각을 하고 다닌 것이다. 그러다 125회에선 언제 그랬냐는 듯 정음에게 올인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오락가락 캐릭터가 됐다. 흑기사 캐릭터로 절대 호감형이었는데, 막판 ‘라인 장난’으로 희생자가 된 것이다. 일편단심 순정 캐릭터인 준혁에 밀리는 처지가 됐다.

그러다보니 지훈-정음 라인과 준혁-세경 라인의 이야기가 나란히 전개된 125회에서 준혁-세경의 이야기가 훨씬 강렬하게 느껴졌다.

125회는 준혁의 서운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끝까지 자기 마음을 몰라주고, 결국 외국으로 훌쩍 떠나버리는 세경에 대한 야속함. 그래서 그는 떠나려는 세경을 차갑게 대한다. 세경은 이런 식으로 준혁과 헤어지는 것이 마음 아프다.

그렇게 ‘가시나무’가 되어 세경의 마음을 찌르던 준혁은 세경을 원망하지 않고 보내주기로 결심한다. 그는 세경에게 말한다. ‘오늘 나와 있어주세요.’ 준혁이 처음으로 한 데이트 신청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지막 데이트’를 한다. 그곳은 엉뚱하게도 대학교였다. 세경과 함께 대학교에 다니는 꿈을 꿨던 준혁. 그들은 마치 대학생인 척 교정에서 시간을 보낸다. 캠퍼스 커플 흉내를 내며 함께 뛴 후엔 세경이 처음으로 준혁에게 반말을 하기도 했다. 준혁에게 보다 마음을 열었다는 뜻일까? 그것이 세경이 마지막에 준혁을 허락하며 흘린 눈물의 의미였을까? 아무튼 마지막까지 ‘떡밥’이 난무하는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둘은 벚나무 가로수 길을 함께 걷는다. 하지만 아직은 바람이 차다. 꽃피는 봄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이 둘에게 세상은 여전히 겨울이다. 나중에 봄이 오고 꽃이 핀다지만 그땐 세경이 이미 떠난 후일 것이다. 즉 이들은 함께 봄을 맞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봄을 맞을 수 없는 그들이 봄을 이야기하며 벚꽃이 없는 벚나무 길을 걸었다. 세경은 벚꽃을 상상만 할 뿐이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을 세경과 함께 하고 싶었던 준혁에겐 너무나 아픈 상상이다.

그 자리에서 세경은 준혁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준혁은 애타는 눈빛으로 세경을 바라보고, 세경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간다. 준혁에게 고마웠었다고 말하는 순간 결국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만다. 준혁은 눈물을 흘리며 세경에게 첫 키스를 하고 세경은 눈을 감는다.

이 순간에 상상의 벚꽃이 아름답게 이들 주위로 흘러내린다. 눈물과 함께 내리는 꽃비. 이것이 봄꽃이 흩날리는 <지붕 뚫고 하이킥>의 마지막 이미지였단 말인가.

피디가 나쁜 사람이다. 시트콤인 척하면서 너무나 아름답고 아픈, 미니시리즈보다도 더 처연한 드라마를 선물해줬다. 첫사랑의 아픔을 이렇게 섬세하게 그려준 드라마가 어디 또 있었던가.

최근 <파스타>의 키스신이 화제가 됐었다. <파스타>는 트렌디 드라마로서 대단히 매혹적인 작품이다. 준혁-세경의 키스신은 그랬던 <파스타>의 키스신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물론 <추노>의 태하-언년 민폐 키스신하고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다. 일개 시트콤이 여기까지 감정선을 이끌어온 것이다.

시청률만을 기준으로 국민드라마를 참칭하는 막장드라마가 판을 치는 이때, 정극보다 더 정극 같았던 시트콤을 만들어낸 피디. 사람의 마음에 천착해 끝까지 시청자를 아프게 한 피디. 환상적인 봄꽃까지 눈물로 만들어버린 피디. 김병욱 피디가 정말 나쁜 사람이다.

문화평론가, 블로그 http://ooljiana.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성룡과 퀸을 좋아했었고 영화감독을 잠시 꿈꿨었던 날라리다. 애국심이 과해서 가끔 불끈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아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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