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4일 월요일 0시부터 단 한명의 조합원 예외 없이 강고한 총파업에 돌입한다. 우리는 이 파업을 통해 폐허가 된 MBC를 재건할 것이다”

[미디어스=이준상 기자] MBC에 뜨거운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이 30일 오전 서울 상암 MBC사옥 1층 로비에 모인 450명의 조합원들에게 이 같은 투쟁지침을 내렸다.

지난 29일 마감된 총파업 투표는 전체 조합원 1758명 중 1682명이 투표(투표율 95.68%)에 참여했고, 이들 중 1568명(찬성률 93.2%)이 파업에 찬성했다. 역대 총파업 투표율·찬성률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아울러 보직자 총 159명 중 67명이 ‘김장겸 사장·경영진의 사퇴가 없으면 직을 내려놓겠다’고 선언했고, 2012년 파업 이후 구로, 경인지사(인천 수원 등), 여의도 등 외곽 ‘유배지’로 쫓겨난 조합원 32명은 이날 ‘유배지 폐쇄’를 선언했다.

3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사옥 1층 로비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조합원 450여명이 9월 4일로 예정된 '총파업' 돌입 결의를 다지는 모습.

450명의 조합원들은 전날(29일) ‘유배지’를 폐쇄하고 상암 MBC로 돌아온 동료들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했다. 장준성 언론노조 MBC본부 교섭쟁의국장이 32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자 ‘유배지’로 쫓겨났던 조합원들이 동료들 앞에 걸어 나왔다. 박수와 함성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지속되면서 일부 조합원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2014년 10월 광화문에 위치한 신사옥 개발센터에 발령 받았던 정형일 기자(87년 입사)는 “정확히 2년 10개월 만에 상암동 센터에 돌아왔다”며 “감격스럽고 떨린다”고 말했다. 정 기자는 “동료들과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격려하며 지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적 고문을 하는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저희들은 한 명의 이탈자 없이 갈수록 견고해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면서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방송을 정상화하고 과거처럼 신나게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로 뉴미디어포맷개발선터에 발령됐던 이근행 PD(언론노조 전 MBC본부장)는 조합원들 앞에서 미리 준비해온 글을 낭독했다.

“누구에게나 물욕과 명예욕이 있다. 이익과 손해를 분간할 줄 안다. 지난 9년간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싸우다 상처 입은 동지들에게 피붙이 이상의 연민을 느낀다. 오로지 스스로 자존을 지켜낸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익을 쫓는 이들은 늘 이익만을 쫓는다. 악은 더 큰 악으로 자기 자신을 증명하려 한다. 김재철 전 사장의 농간으로 ‘특별채용’이란 이름으로 회사에 돌아왔다. 호봉과 근속을 날려버린 치욕의 귀환이었다.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싸워서 이길 수 있다면 돌아가자는 생각이었다”

“촛불과 탄핵, 정권 교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고 생각한다. 수구 세력의 집권연장 가능성이 절반이라도 있었다면 유배지에 있던 조합원들은 변방을 떠돌았을 것이고 김민식 PD는 해고됐을 것이다. 김장겸 사장이 ‘낭만적 파업’이라고 했다. 잠을 못자 약을 먹고 동료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상처 입은 모습들이 낭만처럼 보였단 말인가. 독해지고 처절해지자. 싸움은 지고도 승리하기도 하고 승리하고도 지기도 한다. 지난 파업은 졌지만 이긴 파업이라고 생각한다. 끝내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절하지 않으면 지는 거다. 우리 안에 적폐를 없애지 않으면 지는 거다. MBC의 영광을 땀 흘려 복원하자. 국민의 명령이다”

MBC 해직언론인들도 조합원 파업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집회에는 MBC 해직자 6명 중 3명(최승호·박성제·성호)이 참석했다. 박성호 기자는 “시민들이 무도한 시대를 끝장내고 정의의 시대로 바로 잡으라고 주문하고 있다. 우리는 그 시대에 부흥하기 위해 일어섰다”며 “우리는 시민에게 돌아가겠다는 것이고 우리가 시민들에게 지고 있던 빚을 갚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죽어야 살릴 수 있고 멈춰 세워야 다시 달릴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MBC 총파업은 바로 그 부활을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박성제 기자는 최근 노사간 협상으로 복직된 YTN 해직자들을 언급하며 “부러워하지 말아야지 했는데 부러웠다”고 밝혔다. 박 기자는 “영화<공범자들>에 개정증보판이 나와야 한다”면서 “그때 제가 마지막 5분에 출연하겠다. 방송법·노동법 위반으로 감옥 가는 김장겸 사장과 안광한 전 사장에게 가서 ‘징역 10년형 받은 기분이 어떠냐’고 묻겠다”고 말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여러분들이 싸움에 우리 해직자들이 함께할 것”이라며 “죽을 각오로 좌고우면 하지 않고 싸우면 ‘공범자들’을 감옥에 보낼 수 있다. 이기는 게 끝이 아니라 사법처리를 받아 실형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승호 PD는 “<공범자들>이 누적관객수 17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주말까지 20만명이 넘어가고 다음 주 지나면 30만까지 갈 것 같다”며 “김민식 PD는 <공범자들> 관객수 100만이 넘으면 ‘김장겸은 감옥간다’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최 PD는 “영화를 본 관객들이 ‘한국 언론이 이렇게 굴러가는지 몰랐다’고 얘기한다”면서 “우리의 실상이 많이 알려질수록 국민들은 우리에게 눈길을 주고 MBC의 재건을 기대하고 성원하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공범자들을 끌어내고 MBC를 다시 시작한다면 금방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 내리라 생각한다”며 “지난 9년간의 성찰을 바탕으로 해서 새 언론 MBC가 탄생하리라 믿어으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김연국 MBC본부장은 “압도적인 투표율·찬성률로 파업을 결정해주신 조합원들에게 감사하고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9년간 저항하지 않아야 될 이유가 수백 가지였지만 저항해야 할 이유는 방송사 종사자로서 기본적 자긍심과 윤리·정의 등 두세 가지 뿐이었다”면서 “우리는 정의, 공정방송, 양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이 자리에 앉아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MBC는 폐허가 됐고, 우리는 그 폐허 위에 새로운 방송을 건설할 것”이라며 “과거의 영광이 무너졌던 그 약점까지 철저하게 점검하고 드러내서, 제대로 된 방송으로 국민들에게 돌려드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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