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스타플레이어의 현역 시절 후일담을 듣는 일은 몇 번을 들어도 재미있는 일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후일담만으로 언론의 이슈를 모두 삼켜버릴 수 있는 은퇴한 스포츠 스타는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박찬호(야구), 김연아(피겨 스케이팅), 박세리(골프), 박지성(축구) 정도가 아닐까?

박지성이 이달 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 털어 놓은 이야기를 다소 늦게 들을 수 있었다.

한 가지 이야기는 최근 일어난 일이고, 다른 한 가지 이야기는 약 10년이 지난 일에 관한 이야기다.

박지성은 지난 5일 방송된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에 출연, 최근 열렸던 두 차례의 레전드 매치에 출전한 이후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고 털어놨다.

박지성은 지난 6월 '마이클 캐릭 테스티모니얼 매치'에 선발 출전해 현역 시절 못지않은 움직임을 보여줬고, 지난 1일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캄프 누에서 열린 바르셀로나 레전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레전드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며 풀타임을 소화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박지성(오른쪽)이 지난 5일(한국시간) 잉글랜드 맨체스터 올드 프래퍼드에서 열린 마이클 캐릭의 자선 경기에 출전해 드리블하고 있다. [맨유 SNS 캡처] 연합뉴스

당시 경기를 지켜본 많은 국내 축구팬들은 박지성이 다시 현역에 복귀 월드컵 본선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표팀을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와 SNS에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국내 팬들이나 퍼거슨 감독의 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나 보다.

박지성에게 전화를 건 퍼거슨 감독은 현역에 복귀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고 박지성은 전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이 현재 특정 팀의 사령탑은 아니지만 퍼거슨 감독을 통해 그의 애제자인 박지성의 현역 복귀 의사를 타진하는 지도자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박지성은 이와 같은 일을 털어 놓은 뒤 퍼거슨 감독에게 현역 복귀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배성재 아나운서가 과거 은퇴를 선언했다가 다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로 복귀한 폴 스콜스를 예로 들며 다시 현역으로 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물어봤으나, 박지성은 당시 스콜스기 은퇴 이후 복귀까지 6개월의 공백이 있었지만 자신은 무려 3년의 공백이 있었음을 언급하며 현역 복귀 가능성이 없음을 재차 확인했다.

이날 박지성의 두 번째 고백은 2008년 5월 첼시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엔트리에서 빠졌던 당시 상황에 대한 것이었는데 당시 관중석에서 담담해 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무척 당황했고, 화가 났음을 털어 놓은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 시절의 박지성[EPA=연합뉴스]

자신의 유니폼이 걸려 있지 않은 경기장 라커룸에서 시원하게 욕 한 사발을 날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박지성은 4강전에서 FC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끝내 팀을 결승으로 견인했다. 박지성 특유의 활동량과 영리한 움직임은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때문에 박지성이 결승전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결승전 출전 선수명단에서 박지성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선발은 물론이고 리저브 명단에도 박지성의 이름은 없었다.

박지성에 따르면, 결승 당일 아침 미팅을 마친 뒤 퍼거슨 감독의 호출을 받은 박지성은 좋지 않은 예감을 가지고 퍼거슨 감독과 면담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당일 경기에 뛸 수 없음을 통보 받으면서 그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지성은 교체선수 명단에는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 세면도구를 챙겨서 경기장 라커룸을 찾았다. 그런데 라커룸에 자신의 유니폼이 걸려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벤치에도 앉을 수 없는 상황임을 그제야 확실하게 알게 된 박지성은 한 바탕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물론 방송에서는 ‘퍼거슨 감독에게’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 욕이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퍼거슨 감독 역시 훗날 박지성을 결승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을 그의 인생 중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음을 털어놓기도 했다.

어쨌든 그날 경기에서 맨유는 첼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박지성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박 전 선수가 밝게 웃으며 소감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박지성이 결승에 불참했기 때문에 우승 메달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지만 박지성은 우승 메달을 나중에 전달 받았고, 그 메달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 전시가 됐다.

이후 박지성은 두 차례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 경기를 치를 기회를 얻었지만 모두 패하고 말았다. 그라운드에서 유럽 챔피언이 되는 경험은 끝내 하지 못한 셈이다.

이밖에도 박지성은 이날 방송에서 지도자의 길 대신 축구 행정가의 길을 선택한 이유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소년 축구대회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유소년 선수들의 성장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여전히 피치 위에 선 박지성의 모습이 그립지만 이렇게나마 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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