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개봉 전 리뷰를 통해 황정민의 뇌물이 왜 꼭 ‘춘화’였나를 언급한 바 있다. 대개의 영화에서라면 술이나 담배, 군인이 필요한 물품으로 뇌물을 묘사했겠지만 왜 하필 <군함도>에선 조선인 노역자가 손수 그린 춘화가 뇌물로 작용했을까.

그냥 스쳐 지나갈 법한 시퀀스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이는 <군함도>의 각본을 집필한 두 사람 중 한 명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여성의 나신이 남성과 결합할 때의 성적 판타지가 술 담배 이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고약한 관점으로서의 뇌물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하지만 이러한 경향-여성을 눈요깃거리로 전락시키는 전략이 <군함도> 하나였다면 다행이겠지만, 최근 개봉한 <브이아이피>는 여성 비하적인 시각이 노골화된 작품이라 우려의 눈길을 또 한 번 돌릴 수밖에 없다.

먼저 이 영화의 가학적인 연출에 있어서의 문제점이다. 여성 육체에 대한 사디즘적 가학이 최근 한국영화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사례에 속하기에 지적하는 것. 이 영화에서 이종석이 연기한 광일은 기획 납북자이면서 동시에 연쇄살인마다. 광일은 그가 손발처럼 부리는 하수인들과 함께 북한에서 ‘아가씨 사냥’을 즐긴다.

길을 걷는 아가씨를 차로 납치해 몹쓸 짓을 한 것도 모자라 광일은 여성 피해자를 내버려두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된 채 상반신을 고스란히 노출한 피해자는 광일의 손에 감긴 낚싯줄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브이아이피>를 보다가 자연스럽게 <악마를 보았다> 속 최민식이 이병헌의 약혼녀에게 저지른 사지 절단을 떠올리게 되는 건 <악마를 보았다>와 <브이아이피>의 각본가가 모두 박훈정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 <브이아이피> 스틸 이미지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과연 누구를 위한 잔혹 스펙터클일까? 남성 우월주의의 시각적인 현시를 위한 여성 신체의 과다 노출과 사디즘? 여성 육체 훼손에 대한 강도의 수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종석이 연기하는 광일의 악마성이 극대화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걸까?

여성의 신체를 알몸으로 전시하는 것도 모자라 낚싯줄에 목이 감겨 죽어가는 사디즘적 현시가 <브이아이피> 연출상의 난맥이라면, 우리나라의 대표 포털사이트에서 벌어진 이 영화 출연자 명기 문제에 있어서는 영화제작사와 포털 양 측 모두의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개봉 전 대형 포털사이트 영화정보란에 소개된, 브이아이피 출연진 정보를 유심히 살펴본 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이다. 아무리 비중 없는 엑스트라 배우라 해도 ‘여자시체 역’이라는 몰상식한 표현을 배우 정보란에 쓰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개봉 전 여성 엑스트라 배우 정보에 ‘여자시체 역’이라는 표현을 버젓이 사용했다가 이후 논란이 되자 ‘여자 역’으로 수정했다.

네이버 ‘브이아이피‘ 영화 정보 갈무리

무려 신인 배우 아홉 명에게 ‘여성시체 역’이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을 노골적으로 해댄 영화제작사와,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고스란히 영화 출연진 정보에 올린 우리나라 최대의 포털사이트 사건을 볼 때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올바름’에서 벗어났는가를 알 수 있다.

박훈정 감독은 개봉 후에 벌어진 여성신체 훼손 문제에 대해 ‘"젠더적 감수성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유감을 밝힌 바 있다. 영화에서 여성을 시각적으로 비하하는 영화는 그간 <악마를 보았다> 등 사례를 꼽으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들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하지만 <브이아이피>는 여성을 대하는 사디즘적 시각의 연출도 모자라, 배우를 대하는 시각이 얼마나 상식 이하였나를 대형 포털의 영화 출연진 란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젠더 감수성조차 결여된 ‘여성 비하 종합세트’가 <브이아이피>에서 드러난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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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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