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위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정당발전위원회’라는 느슨한 명칭을 얻었다. 24일 국회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식 출범하게 된 민주당 정발위 이야기다. 최재성 위원장은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발위는 “당원권 강화와 당의 체력 강화, 체질 개선, 문화 개선 그리고 100만 당원 확보와 인프라 구축'으로 한정하기로 합의”했음을 전했다. 애초에 혁신위가 가져가야 할 2대 과제는 여전하다. 다만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대해서는 별도로 지방선거기획당(가칭)을 구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정발위가 내년 지선 공천을 포기한 것은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당내 분위기가 악화된 것은 분명 경계해야 할 문제이다. 당내 중진인 설훈 의원의 경우 추미애 대표를 향해 ‘탄핵’을 운운할 정도였고, 이를 바라보는 민주당 권리당원 및 지지자들의 심기도 대단히 예민해지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새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인 '대한민국, 대한국민' 2부 행사인 '국민이 묻고 대통령이 답하다'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 가운데 20일 청와대 새 정부 100일 대국민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혁신위와 추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정치가 잘못할 때는 촛불을 들고, 댓글을 통해서 항의하고, 정당의 권리당원으로 참여하고, 정부의 정책에도 직접 제안하고 그것을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이런 직접민주주의를 국민들께서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8월 20일 대국민보고회에서 문재인 대통령)

그럼에도 결국엔 정발위가 한 발 물러서게 된 것은 그만큼 민주당 내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민주당에 혁신이 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혁신위가 아닌 정발위라고 해서 이 조직이 해내야 할 소임까지 변질되지는 않을 것이다. 백만당원이라는 단어에 함축된 추 대표와 최 위원장이 구상하는 민주당의 미래상은 당원에 의해서 모든 결정이 상향되는 직접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그것을 달리 ‘시민정당’ 혹은 ‘뉴미디어정당’ 등으로 부를 수 있다. 시민정당의 준비는 미래 정치에서 정당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전략이다.

더불어민주당 최재성 정당발전위원장이 23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정당발전위 위원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로 흔들리지 않는 현상이 있다. 여당과 야당 지지율의 형세 고정이다. 물론 민주당 인기의 배경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지만 그 외에 결정적인 요인으로는 SNS 정치의 유무로 볼 수 있다. SNS는 이제 언론을 대신하는 수준으로 광범위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시민들이 언론과 정치인들에 의해서 끌려 다니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시대 정치의 종말을 의미한다. 또한 촛불혁명이 무엇이었던가? 결국엔 SNS를 통해 모여진 여론과 민심이 결집된 결과였다. 시민이 직접 정치를 한 것이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그 광장의 힘은 소멸되지 않고 SNS라는 공간을 개척해 선거를 지배했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는 심지어 언론 대 SNS의 힘겨루기였다고 할 수 있고, SNS가 이긴 결과였지 않는가. 촛불혁명은 박근혜 탄핵만 한 것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일들을 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후에도 이 현상은 지속되고 있다. 정치에 적극적인 3,40대 대부분이 과거와 달리 포털을 통해서 기사를 접하는 것이 아니라 SNS나 각자가 자주 찾는 커뮤니티를 통해서 걸러진 뉴스들을 정독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최재성 위원장과 위원들이 24일 국회 정론관에서 ‘정당발전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민주당 혁신은 지난해 촛불정국부터 새 정부 출범과 그 이후까지 실상은 시민행동이 모든 정치행위를 이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이다. 엄격히 말하자면 민주당이 이 시민행동의 덕을 본 것은 문재인 덕분이고, 박근혜-최순실 때문이다. 따라서 ‘승리한 정당’ 운운하는 것은 다소 자격 없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다.

때문에 민주당에는 승리했다는 도취보다는 바뀐 정치 지형도에 빨리 적응하고, 공략 가능한 전력을 갖출 연구와 실천이 필요할 뿐이다. 때문에 누구든 더 이상 정발위에 개인과 계파의 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만 권리당원을 확충한다는 것은 곧 촛불과 SNS에 산재한 시민행동을 민주당 안으로 들이는 실험이자 도전이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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