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013년 9월 2일 발간 작년에 내가 발행, 편집하는 잡지가 라고 말했을 때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이 왕왕 있었다. 장난치지 말라며, 그런 잡지가 정말 있냐며 정색하는 사람도 있었다. '잉여'라는 말에서 어딘지 장난기가 느껴졌나 보다? 하지만 올해 들어 '잉여'라는 언어의 위상은 변한 것 같다. 진지 빨고 잉여를 논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출판계도 잉여잉여하고 있다. 올 4월 발간된 한윤형의 의 부제는 '청년 논객 한윤형의 잉여 탐구 생활'이었다. 9월에는 라는 책이, 10월에는 라는 책이 나왔다 . 이 중 는 일종의 '잉여학' 개론서로 보인다 . 의 저자 최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시야는 사적인 영역으로 축소된 것 같다. 큰 이야기들은 어딘가 허황되고, 정밀성을 결여하거나 의도에 의해 왜곡된 것처럼 느껴진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를 꾸밈없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일이며,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일상’은 우리가 지켜야할 궁극의 가치로 보인다. 정치는 스쳐 지나가는 것이며 가능한 범위 내에서 참여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올바르다고 여겨진다.나 역시 그러한 삶의 방식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혹은 그러한 시야가 허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런 회의를 가지고 펼쳐보게 된 것이 (데틀레프 포이케르트, , 김학이 역, 개마고원, 2003)다.
글쓰기는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지만, 누구에게나 문제인 건 아니다. 일상에서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거나 회사 동료와 메신저로 간단한 업무를 진행하는 걸 글쓰기라 부르지는 않기 때문이다. 보통 원고료가 있는 경우나 공개 지면에 올리는 경우, 나아가 출간을 염두에 둔 경우를 글쓰기라 따로 부르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지친 삶을 하소연 할 때는 내가 힘들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위로를 얻고자 하는 목적이 깔려 있다. 회사 동료와 메신저로 농반진반 나눈 대화는 언제고 되돌아와 직장 내 여론이나 자기 위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겪어봤다면, 당신도 비즈니스 글쓰기 세계에 입장해야만 한다. 이 세계에서는 글쓰기가 누구나 마주하는 문제인 동시에 누구에게나 문
에서 필립 K. 딕이 그리는 것은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된 부부생활이다. 물론 그것은 전쟁이고, (따라서) 우주는 전쟁 중이다. 에릭은 캐시와의 결혼생활에서 달아나기 위해 전장을 택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관계에서 달아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것이 딕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이다. 그러니 SF에 대한 성실한 서평을 기대했던 분들은 이쯤에서 이 페이지를 닫아도 좋겠다. (BGM : ‘이혼한 신사가 결혼을 고민하는 그의 미혼 친구에게 들려주는 교훈(Advice From A Divorced Gentleman To His Bachelor Friend Considering Marriage)’ By Of Montreal) 이야
자기계발서라 불리는 책들이 있다. 요즘 출판 시장에서는 자기계발서가 이전처럼 인기가 없어서 경제경영서로 포장해 자기계발서를 내는 경우도 많다. 작년까지 힐링 열풍을 주도한 책들도 넓은 의미의 자기계발서 도서들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에세이 분야에 있다고 해도, 에세이로 읽히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가 흔히 아는 중국 고전들이나 《명상록》도 자기계발서다. 유독 자기계발서 만큼은 출판 시장의 대표적인 스캔들인 선인세 문제가 드물다. 왜냐하면 자기계발서는 외서보다 국내서가 많기 때문이다. 외국 저자 중 스티븐 코비나 데일 카네기는 이 분야의 고전 작가다. 예를 들어 데일 카네기의 도서는 온라인 서점에서 540건이나 검색이 된다. 저자의 저작권은 사후 50년까지만 보장되기 때문에 1955년에 사망한 저자의
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아버지는 2001년 5월 4일에 자살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 나이에, 더군다나 그 상태의 노인이 아무도 모르게 5층 창문까지 기어올라 몸을 던질 수 있었는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자인 “나”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격동의 이십세기 스페인을 꽉 채운 “아버지” 안토니오 알타리바의 삶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쓴 노트를 바탕으로 작가인 아들은 아버지의 인생을 정리한 뒤 작화가를 구해 만화로 재구성했다. 이렇게 아들은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버지의 “자살”을 “승리”로 그려낸다. 자살이 어떻게 승리가 된단 말인가. 스페인 내전(1936~1939) 책을 덮고 구십 평생 크고 작은 패배를 거듭해
부모는 학령기 자녀가 공부를 잘하기를 바란다. 일찍부터 거액을 들여 입시공부를 시키느냐, 아니면 적당한 학령기에 상대적 우등생이 되기를 바라느냐를 두고 극성이냐 아니냐를 구분할 뿐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사실은 학생도 그렇다. 어느 학생이고 간에 처음에는 대개 공부를 잘 하고 싶어 한다. 학생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은 양이 지나치게 많거나, 수준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공부가 잘 되지 않고 결과도 좋지 않아 의욕이 꺾인 후부터이다. 혹여 부모가 ‘공부 못 해도 괜찮다!’ 라고 말한다면 ‘넌 왜 그리 공부를 못하니!’ 보다는 위로가 되겠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을 위로해주지는 못한다. 공부가지고 타박하지 않고 놀게 해주는 관대한 부모들도 의외로 많지만, 그 역시 잘하고 싶은 마음을 돕지는 못한다.
얼마 전 (막스 베버, 박상훈 역, 후마니타스, 2013)를 다시 읽었다. 새로 구한 책을 다시 읽는다고 표현 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에 대한 인연이 길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김진욱 번역본(범우사)을 읽었고, 졸업하고 나서는 이상율 번역본(문예출판사)으로 읽었으며, 몇 년 전에는 전성우 번역본(나남)을 구해 다시 읽었다. 그리고 이번에 박상훈 번역본으로 읽었으니 횟수로만 치면 네 번째가 된다.왜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할 말은 없다. 굳이 한 가지 이유를 대자면 어떤 구절에 공명했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 구절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독일의 모든 정당이 보여주고 있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지도자에 대한 적대감은 향후 정당을 어떤 형태로 만들어
나는 온라인 서점에서 인문 분야를 맡는다. 인문학 연구자도 아니고 최신 이론에 해박한 ‘인문 덕후’도 아니지만, 책으로 소통되고 유통되는 인문학에 대해서는 꽤 밀접한 관계를 맺는 관련자라 하겠다. 하루에 수십 권의 인문 도서가 세상에 나오고, 그 가운데 몇 권은 출판사 마케터를 통해 가까이서 마주하게 된다. 더불어 그 책을 구매하는 독자, 저자의 목소리를 들으러 강연회에 참석하는 독자, 자기에게 맞춤한 인문서를 찾는 독자를 수시로 만나니 '인문학 현장'의 어디쯤에 서 있다고도 하겠다. 물론 이런 의미 찾기 놀이를 하지 않더라도 인문 분야 도서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자리에서 일을 하니, (오창은 지음, 이매진 펴냄)이 (얼 쇼리스 지음, 이매진 펴냄
포털 사이트 국어사전에서 ‘꼰대’를 찾아봤다.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 선생님을 꼰대라는 은어로 부르는 학생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선생을 선생으로 존경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 같다. 먼저(先: 선) 태어나(生:생) 나중에 태어난 사람을 위해 앎을 전수해주는 이가 선생이다. 문제는 앎을 전수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자신이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앞세우고 억압하며 통제하는 사람을 존경하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좋은 선생은 ‘아 저 사람이 진정 나를 위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 생각할 여지를 주고 의견을 펼쳐나가는 것을 들은 후 그것에 대해 첨언을 하며 스스로 깨닫는 것을 돕는 사람, 말과 행동을 통해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국만이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운영하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비참할 때를 꼽으라면? 구여친의 미니홈피를 들락거릴 때? 그보다 더 스스로가 찌질하다 못해 바닥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연락이 끊긴 동기와 친구들의 미니홈피를 타고 타고 넘어가 ‘뭐 하고’ 사는지를 구경할 때다. 기어이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결혼은 했는지, 얼굴은 고쳤는지, 남편은 수입이 좋은지, 어떤 고상하고 우아한 취미를 즐기는지 확인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파도를 타고 또 탄다. 그 안에는 내 저열한 욕망이 있다. 나보다 잘 사는지? 나보다 얼마나 행복하게 잘 사는지? 이런 걸 궁금해 하는 욕망 말이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트위터에서 남의 계정을 검색해보는 것. 대부분 팔로잉이 적지 않
의 '세상의 모든 책들' 첫 서평에서 나는 루이 말 감독의 영화 의 주인공 역할을 맡았던 제레미 아이언스에 대한 찬탄으로 운을 뗐다. 이번 서평 역시 본의 아니게 제레미 아이언스로 시작하고 있는데, 영화 의 원작소설인 조세핀 하트의 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평소 어떤 취향으로 어떤 책들을 읽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 민망할 따름이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고 싶어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양해를 바란다.) 단 한 번도 열정 혹은 욕망에 휘둘린 적 없이 살아온 성공한 상류층 중년 남성인 ‘나’. 자신이 50살에 죽었다면 주변 모든 사람에게 아주 좋은 아버지이자 남편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라는 독백으로 이 소설은 시작된다. 그러나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험’에서 시작하자. 의외로 간단한 실험이다. 준비물은 코 흘리는 4세 아이들 몇 명과 싸구려 마시멜로 과자 몇 개. 적막이 감도는 실험실에 아이와 과자를 함께 가두고 지켜보는 거다. 자신과 마시멜로밖에 없는 작은 세계에서 아이는 무엇과 대면하는지. 그건 하나의 물음, 차라리 실존적인 물음이다. 눈앞에 놓인 한 개의 마시멜로를 입에 넣고 달콤함을 만끽할 것인가?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홀로 마시멜로를 노려보며 영원과도 같은 15분을 보낸 후 (고작!) 두 개의 마시멜로를 얻을 것인가? 너는 마시멜로고 나는 아이야, 너는 마시멜로고 나는 아이라고… 아이는 갈등하고, 갈등하고, 갈등한다. 정말이지 끔찍한 실험이고, 빌어먹을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사르트르가 생각한 ‘자
어린 시절 나를 가장 휘어잡았던 SF 프랜차이즈는 도 나 도 아니었다. 이제는 공중파에서 찾아볼 수 없지만 한때는 한국인들에게 미국 문화를 엿보는 하나의 창구 역할을 했던 AFKN에서 아주 우연히 보았던 영화 (1984)이었다.을 감독한 데이비드 린치가 역시 감독한 티비 시리즈이자 영화 의 주인공 데일 쿠퍼를 연기한 카일 맥라클란과 가수 스팅이 주연한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약 만년 후의 미래다. 항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한 미래지만 중세 유럽처럼 유력 가문들이 전쟁과 외교를 통해 세력다툼을 벌인다. 영화의 대미는 정의로운 아트레이드 가문의 후계자 폴 아트레이디스(카일 맥라클란)와 사악한 하코넨 가문의 후계자 페이드 라우서 하코넨(스팅)의 결투로 마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TED를 추천받고 검색해보았다. 세계의 석학들이 자신이 가진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과 더욱 쉽게 공유하기 위해서 길고 짧은 강연을 제공하고, 그것을 모아둔 사이트이다. 우연히 그 때 내 모니터 첫 화면에 뜬 영상 중에 댄 애리얼리가 있었다. ‘버그 투성이인 우리의 도덕관념 Our Buggy Moral Code’이라는 제목이 내 눈을 확 끌었고, 그렇게 본 첫 TED 영상은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나는 바로 즉시 그의 팬이 되어, 그 18분 짜리 영상을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보여주고, 시간이 없으면 요약본을 적어서 건네주거나 말로 설명해주곤 했다. 도덕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은 대개 가치판단 아니면 비난이었다. 무엇이 도덕적인가, 무엇이 비도덕적인가, 너는 도덕적인가, 우리는 도덕적인가,
8월 10일. 독서를 포기했다. 대낮의 온도가 33도에 육박하고, 서재는 그보다 5도쯤 더 높았으며, 책을 펼쳐드는 순간 이마에서 땀이 굴러 떨어지는 환경에서 책읽기는 불가능했다. 당시 내 손에는 막 출간된 바우만의 책이 들려 있었고, 난해한(최소한 난삽한) 그의 서술은 책장을 넘기는 것을 고역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읽어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땀이 책을 지저분하게 만들고 눈에 흘러들어가는 지경에 이르자 그렇잖아도 빈약한 인내심이 바닥나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 서재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서점은 피해야 할 장소가 되었다. 책과 멀어지는 것으로 반강제적인 피서를 보냈다고 해야 할까.그럼에도 퇴근길의 읽을거리로 고른 책은 (에릭 호퍼, 정지호 역, 동녘, 2012)였다. 이 책을
“이젠 재미없는 이분 농담” 내가 저번에 쓴 서평(링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심장이 쿵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글을 쓰기 전날 처음 보는 남자와의 술자리에서 “님 좀 재미없는 듯” 이라고 ‘디스(DISS)’ 당했고, 이보다 며칠 앞선 날에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과의 단체 채팅방에서 “예전에는 너가 좀 특이하게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엔 그냥 생각 없는 초딩 같은 개그로 변했어” “맞아 요새 개그감 죽었어”라는 ‘몰이’를 당한 터였다. 삼연타다. 충격이 컸다.스스로를 웃기려고 항상 농담을 생각하며 기회만 생기면 강박적으로 농담을 던져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온라인 신조어를 좀 많이 쓸 뿐…. 그런데 왜 요즘 부쩍 내 유머감각과 농담에 대해 비판을 받은 것일까. 내가 가지고 있는 유머에 대
출판이란 무엇인가. 정말이지 대책 없는 질문이다. 이렇듯 궁극의 질문을 제목으로 붙인 책은 대개 독자에게 실망을 안기고 만다. 모든 것을 알려줄 듯 사탕발림을 하고서는 막상 열어보면 내가 여기까지는 생각을 해봤는데 여전히 풀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 함께 고민해보자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나오자마자 “신입도, 3년 차 경력자도, 10년 차 편집장도, 수십억 매출의 출판사 사장도 모두 입을 모아 말합니다. 출판, 도대체 모르겠다고. 드디어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라며 호들갑스레 출간 소식을 알린 까닭은 출판을 다룬 책이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라딘 인문 분야의 소분류 ‘출판/편집’에는 226종의 책이 들어가 있다. 생각보다 많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1984년부터 지금까지 30년에 걸쳐 나
문화인류학은 이름은 딱딱해 보일지는 몰라도 무척 재밌는 학문 분야다. 특히 관련 저술은 더욱 흥미로운 편이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는 매력적인 제목에 끌려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부담스럽던 책 두께가 나중에는 고마워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저자가 직접 그린 원주민의 문신 그림은 감탄을 자아냈으며, 그가 종종 얻어마시던 마테차는 꼭 한 번 마셔보고 싶을 정도였다. (나에게는 낭만이었던 이 '라틴의 마테차'가 요즘은 제로칼로리를 표방하며 다이어트 음료로 둔갑해 마트에서 팔리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문화인류학자들은 자신이 속해 있지 않은 미지의 세계를 조사하기 위해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란 것을 알게 됐다. 넓은 시야로 다른 세계를 바라보려는, 연구 대상이 '누구'인지를 정말 궁금해 하
이 책은 미국 출간 직후 아마존에서 1위를 했다. 미국 내에서도 새로운 페미니즘적 관점이라는 호평과 잘 나가는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한국은 세계 출판계의 '호구'이므로 당연히 비싼 선인세로 국내에 판권이 팔렸다. 이 과정에서도 원고보다는 저자가 내한할 수 있다는 등의 홍보 포인트만 강조가 되었다. 이런 기대 속에 출간되었는데도, 출간 직후 잠깐 베스트셀러 순위를 올랐다가 이후 꾸준히 순위가 내려간 책, 바로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가 쓴 《린 인》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난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려왔다. 셰릴 샌드버그를 알게 된 건 포탈 업체에서 일하던 선배와의 대화에서였다.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서비스를 찾고 있다며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이것저것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