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학우들이 경찰에 쫓기고 있습니다.”대학 졸업을 앞두고 언론사에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이 시위현장에서 선배에게 보고할 때 실제로 저지르는 드문 실수다. 무엇이 실수일까? ‘학우’라는 표현이다. 그는 ‘객관적 관찰자’로서 쓰지 말아야 할 주관적 표현을 썼다. 공정성이 내용과 관련된 규범이라면 객관성은 형식과 관련된 규범이다. 설령 경찰에 쫓기는 학우들이 안쓰럽더라도 꼭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 이것이 객관성 규범이다. 객관성은 한마디로 ‘티 내지 않기’다.물론 규범이 영구불변인 것은 아니다. 다분히 문화적이고, 상대적이며, 시대를 반영해 변해가기도 한다. 더욱이 저널리즘 규범은 실무적·마케팅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들도 많다. ‘문장을 짧게 써라’가 대표적이다. 객관성 규범은 주관적 보도가 넘쳐나는
구본홍 YTN 사장이 지난해 7월17일 주총에서 선임된 이후 3억4천만원이 넘는 돈을 부당·과다 지출했다고 전국언론노조 YTN지부(지부장 노종면)가 13일 밝혔다.YTN지부는 “이 돈은 낙하산 사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구본홍씨 한 명으로 인해 지출된 불필요한 비용”이라며 “회사의 공식 자료에 근거에 소극적으로 합산한 것으로, 구본홍 사장 급여, 소송 비용, 개인 비서·변호사 고용 비용 등은 제외했다”고 설명했다.YTN지부가 밝힌 주요 지출항목을 보면, 7월17일 주총장 대여비용과 주총장 봉쇄를 위한 용역 200명 가량의 용역비(추정) 등 구 사장 선임에 8636만원이 들었다. YTN지부는 “40초가 걸린 날치기 주총을 한 번 치르기 위해 1억원 가까운 돈을 쓴 셈”이라고 지적했다.구 사장
가 연일 독자들에게 신문 디자인 공부를 시켜주고 있다. ‘판을 바꿨다’ 시리즈다. 지난 9일 1면과 14~15면에 이어, 10일과 11일에도 2개 면에 걸쳐 시원한 브리지 편집(2개 면을 털어서 하나의 면처럼 편집하는 기법)까지 선보이며 신문 판형과 관련한 자세한 ‘정보’를 다뤘다. 관찰력이 떨어지는 독자들이라면 신문 크기가 다 같은 줄 알았을 테지만, 크게는 세 종류(대판/베를리너판/콤팩트판)로 나뉘고, (중앙일보 말로는) 잘게 보면 세계적으로 60가지나 된단다. 내가 그동안 주워들은 사금파리 지식들을 보태서 신문 판형에 대해 설명하자면 대략 이렇다.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낯익은 판은 대판이다. 종합일간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신문들이 대판이다. 콤팩트판은 지하철역 앞에서
여기 두 장면이 있다.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민주당 당직자들에게 목이 졸리고 팔이 부러진다. 민주당 서갑원 원내수석부대표는 조원진 한나라당 의원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친다. 두 사건 모두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다. 한나라당이 쟁점법안 강행처리를 위해 국회 본회의장 앞을 점거하고 있고, 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이 들이닥쳐 벌어진 일이다.당신은 기자다. 두 사건을 나란히 보여주겠는가.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고, 다른 누가 누구를 폭행해 어떻게 다쳤다…. 그것으로 족한가. 아니다. 이 사건은 별개의 사건도, 단순 폭행사건도 아니다. 두 사건은 하나의 사건이며, 정치적 사건이다. 개별적 가해와 피해보다 선행하는 건 집단 몸싸움이며, 이보다 선행하는 건 쟁점법안 강행처리 시도다.쟁점법안 강행처
언론의 관점이 항상 일관하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하나의 언론이 특정한 사안은 물론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도 관점을 뒤집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물론 관점의 변경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관점이 잘못됐으면 바로잡는 게 마땅하다. 그러나 심각한 건, 언론이 무지하거나 아니면 뻔뻔한 탓에 관점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지난해 10월11일치 스포츠 면에는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삼성-롯데 2차전에서 일부 롯데팬들이 삼성 투수 눈을 향해 레이저 포인터를 쏘며 투구를 방해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관중들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었다. ‘대다수 롯데 팬들은 레이저 발사 용의자를 향해 “집에 가”를 외치며 성숙한 관전 문화를 보였다.’이보다 몇 달 앞서, 조선일보는 6월9일치 1
한국사회에서 ‘문신’(tattoo)은 오랫동안 조폭의 상징이었다. 덕분에 문신의 이미지는 매우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신 문신을 하면 국가가 군대를 면제해줬다. 특혜를 준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으로서 정상성을 박탈한 것이다. 쉽게 말해 군대조차 갈 수 없는 막장 인생 취급을 당했다.문신이 표현의 자유와 신체에 대한 자기 결정권 같은 인권 인지적 범주 안으로 들어온 건 불과 최근의 일이다. 어떤 문신남이 ‘군대 가게 해달라’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지배적 편견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선수들의 요즘 문신 유행은 참으로 상전벽해다. 문신은 더는 차별의 대상이 아니다. ‘간지’나는 영구화장이다. 그렇다고 터부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용산참사가 터진 지 한 달이 넘도록 책임 공방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철거민 세입자들의 방화냐, 경찰특공대의 진압작전이냐가 쟁점이지만, 이것은 처음부터 같은 차원에 놓고 선택을 요구할 수 있는 물음의 구조가 아니었다. 설령 철거민 세입자들이 화염병을 던져 불이 났다고 해도 경찰의 무리한 강경진압과 인명구조 외면의 책임이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는다.언론은 흔히 선택형 물음을 통해 의제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물음의 구조가 잘못된 경우가 적지 않고, 그런 물음일수록 주관적 의도가 내포돼 있기 십상이다. ‘박대박’ 코너를 떠올려 보라. “무분별한 성형과 장기 매매를 일삼는 이 인어,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1번을, 아니다, 지금은 칠판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2번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건 거대하고 획일적인 집단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걸 뜻한다. 미국에 살든 유럽에 살든, 금융가든 날품팔이든, 유대인이면 누구나 하나의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하고 사는 것처럼, 이 나라 학부모들은 극심한 빈부격차와 도농격차를 뛰어넘는 또하나의 ‘디아스포라’다. 유대인이 수천년 동안 차별의 상징이었듯이, 이 나라 학부모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대체로 ‘을’인 것도 닮았다면 닮았다. 속된 말로 학부모인 나는,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나라에서 까라면 군말 없이 까야 한다.내 아이들도 그 말 많고 탈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 일명 일제고사를 봐야 했다. 나 또한 ‘본의 아니게’ 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와 새로 진학해야 하는 학교,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의 집단적 학업성취도를 알 수밖
경찰이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피의자 강○○의 얼굴 등 개인신상을 공개한 것은 사실상 현행법을 위반한 것이며, 정부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흉악범 얼굴과 신상공개에 관한 법률안 제정도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법적 검토의견이 나왔다.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의뢰한 ‘피의자 및 용의자 신상공개에 관한 법적 검토’ 회신에서 경찰이 강○○의 얼굴을 공개한 것은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경찰청 훈령 461호)’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17일 밝혔다.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85조(초상권 침해 금지)는 “경찰관은 경찰관서 안에서 피의자, 피해자 등 사건관계인의 신원을 추정할 수 있거나 신분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 장면이 촬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너의 중학교 졸업식이 열린 13일, 전국에 걸쳐 2월의 폭우가 쏟아졌다. 2월의 폭우는 난감하였다. 그 난감함으로 너의 중학교 졸업식은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기록적인 올 겨울가뭄도 덕분에 한풀 수굿해졌다. 고마운 일이다. 2월의 비도, 겨울 청보리 싹처럼 잘 자라고 있는 너도. 비좁은 졸업식장 앞을 우산의 물결이 한가득 부딪치고 쓸렸다. 아빠는 그 북새통 한복판에서, 십수 년 전 네가 태어나던 때를 떠올렸다. 2월의 폭우는, 묵음으로 내리기 시작했다.네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경찰서에서 먹고 자는 신문사 수습기자였다.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가지 못했다. 한나절이 지나서야 조막만한 네 쭈글탱이 얼굴을 보고, 비로소 아빠라는 존재감으로 명치끝이 뻐근한 걸 느꼈다. 그 비장함 위로, 꿀럭꿀럭 넘치는
지금 대한민국의 광고업계와 미디어업계를 먹여살리는 광고주는 단연 전자와 이동통신 업종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지난해 방송광고 10대 광고주를 집계한 결과를 보면, 삼성전자가 814억원으로 1위에 올랐고, SKT가 789억원으로 바짝 뒤를 쫓았다. LG전자(504억원), KTF(503억원)는 3, 4위를 차지했다. 이 순서대로라면 당신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광고는 삼성전자 광고인가?그렇지 않을 것이다. 2위 SKT나 4위 KTF일 확률이 오히려 높다. 삼성전자나 LG전자 광고가 SKT나 KTF 광고만큼 ‘반사적’으로 떠오르지 않는 건 이들의 광고가 여러 종류의 제품 광고로 골고루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SKT와 KTF는 거의 대부분 브랜드 이미지 광고여서 그만큼 집중도가 높다.
기원전 2000년께 이집트 피라미드에 문자를 새겨 세태를 개탄한 이나, 지금 시내버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무례한 소음에 속으로 분을 삭이는 나 자신이나, 한때는 나이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지청구의 대상인 ‘젊은것’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지금 바라보는 젊은것들만 역사 속에서 매우 특수한 품성을 지닌 찰나적 세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레토릭’일 뿐이다. “요즘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에는 평가적 가치가 부여될 수 없다. 인류역사만큼 유구한 이 레토릭과 함께, 젊은이를 지시대상으로 삼는 또다른 레토릭이 있으니, 바로 “너도 나이 들어봐라”(“나도 한때는…”)다. 이들 레토릭은 모두 젊음을 대상화하고 있지만, 전자는 (젊은 시절에 대한) 망각 속에서, 후자는 (젊음에 대한) 질투를 업고서 각각 작동한다.그
고려대가 고교등급제를 실시했다는 보도는 ‘진부한 새소식’이다. 지난 2004년, 고려대는 2005학년도 수시전형에서 ‘음성적인 노골성’을 드러내다 긴꼬리가 잡힌 ‘전과’가 있다. 그때는 비슷한 죄질의 대학들이 몇 군데 더 있었다. 모두 서울 소재의 내로라하는 사립대학들이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건 고려대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그래서 물음의 맥락이 변했다는 것 정도다. “왜 고교등급제인가”에서 “왜 고려대인가”로.왜 고교등급제인가, 그리고 왜 고려대인가?‘학문’은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다. 서로에 의존해 각자를 완성한다. 양심 없는 학문은 곡학이며, 학문 없는 양심은 오류 가능성에 대한 무방비다. 대학이 ‘진리의 전당’이라는 권위를 얻을 수 있는 건 그 사회가 대학의 양심에 대
2004년 여름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체포됐을 때, 나는 한겨레신문사 사회부 사건팀장을 맡고 있었다. 그가 검거된 직후부터 모든 신문·방송이 그를 ‘연쇄 살인범 유영철’이라고 부를 때, 한겨레는 끝까지 ‘연쇄 살인 피의자 유아무개씨’로 표기했다. 덕분에 독자들로부터 항의도 많이 받았다. “살인마를 비호하는 거냐” “한겨레만 익명 보도해봐야 아무 소용없는데, 혼자 옳은 체하려는 거냐” 따위였다. (당시 1심에서 유영철을 변론했던 변호사는 ‘사무실을 폭파하겠다’는 등 온갖 협박전화에 시달리다 못해 전화번호까지 바꿔야 했다.) 한겨레는 이번 경기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얼굴을 공개하기는커녕 저 홀로 익명 보도를 하고 있다. 신문사로서도 고민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4년 여 전 나도 그랬다. 하지만 난 그때
권력의 재생산은 회귀성 어류의 번식과도 같다. 거칠 것 없이 원양을 헤엄치다가도 깊은 산속 얕은 고향 계곡으로 돌아가야 세대를 이어갈 수 있는 연어처럼, 제아무리 중앙무대에서 날고뛰던 정치인도 포항이든 어디든 고향 지역구로 돌아가 심판을 받아야 다음 4년 금배지를 내다볼 수 있다. 연어가 원양에서 고향의 기억을 잃고 정력을 탕진하면 대가 끊길 것이고, 정치인이 중앙무대에서 힘자랑만 하다가는 고향에 돌아와도 반겨줄 이가 드물 것이다.힘은 아껴서 잘 써야 한다. 제도화된 권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가 최대 마력과 토크로만 주행할 수 없듯이, 권력도 제도가 허용하는 극한까지 힘을 쓰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합법-불법은 적절성의 경계가 되지 않는다. 제도의 정교함이 끝내 가닿을 수 없는 지점에서 적절
‘폭력배’라는 이름은 통제되지 않는 남성성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다. 그래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깡마른 몸에 가해진 인두질은 지극히 키치적으로 다가온다. 김두한이 1966년 국회의사당 안에서 인분을 투척하는 장면 정도는 돼야 ‘연출’도 살고 ‘편집’도 산다. 김두한은 삼성의 사카린 밀수와 정부의 비호에 비분강개해 ‘거사’를 벌임으로써 국회의원에서 제명되는 비운을 맛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국회가 대통령에게 예속돼 있던 박정희 1인 독재 치하 시절의 얘기다. 다시 그런 시대가 돌아왔는지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는 현실이 비감하지만,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뭇매를 가하는 2009년 정초의 풍경은, 협객의 시대는 오래 전 가고 지금 우리는 확실한 다구리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귀띔한다.왜 (하필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최상재)이 총파업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언론노조는 6일 한나라당이 미디어 관련 5개 쟁점 법안을 강행처리하지 않고 시한을 두지 않고 합의처리에 노력하기로 야당과 합의함에 따라, 오는 8일 0시를 기해 파업 참가자 전원이 업무에 복귀하기로 결정했다.그러나 업무 복귀는 파업 철회가 아닌 잠정 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하며,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다시 법안 처리를 시도할 경우 총파업을 재개하기로 했다. 여야는 6일 △방송법 △신문법 △인터넷 멀티미디어법 △지상파 텔레비전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방송의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법 등 5개 미디어관련법은 빠른 시일 안에 합의처리하도록 노력하고, 헌법재
이 글은 제1523호(2009-01-05) ‘미디어 바로보기’에 발표한 글임을 밝힙니다.방송 기자가 리포트를 하면서 “나는”으로 시작하는 주어를 쓸 수 있는 상황은 개그 설정(‘개콘’ 안상태 기자의 “나안~ 뿐이고”) 때뿐이다. 저널리즘 문법에서는 1인칭 또는 2인칭 주어가 금지돼 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저널리즘의 ‘객관주의’가 규범화된 결과다. 지난해 12월26일 SBS 에는 이와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단신이 보도됐다. “SBS는 ‘현재 일부 노조원이 파업에 가담하고 있지만 대다수가 정상적으로 방송에 임하고 있어서 모든 방송이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SBS는 특히 ‘이번 파업이 불법인 만큼 가담자는 사규에 따라
애국가 하면 경건함과 장중함을 떠올린다. 그러나 같은 애국가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1987년 6·10민주화항쟁 때 시민들이 거리에서 불렀던 애국가와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윤도현이 무대 위에서 불렀던 애국가의 차이를 떠올려보면 쉽다. 둘의 차이는 때와 장소의 차이, 그리고 그 선율을 타고 흐르는 맥락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그뿐 아니라 윤도현의 애국가는 ‘리메이크’라는 공정을 거치기도 했다.2004년 3월 국회의 대통령 탄핵 결의안 가결 당시 사지가 들려 본회의장 밖으로 끌려나온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불렀던 애국가를 기억하는가. 그리고 1년(정확히 355일) 뒤 같은 국회 안에서 또다시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행정도시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처리됐을 때, 서울과 수도권 한나라당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한나라당이 이른바 ‘MB악법’을 강행처리하면 만주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총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과 관련해 “(법안 처리 결과에 따라) 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밝혔다.원 원내대표는 31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의원직 총사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많은 의원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고, 공감하는 의원들도 많다”며 이렇게 답했다.그러나 원 원내대표는 “강행 처리는 국회의 권능을 전면 부정하는 폭거이기 때문에 본회의장을 지켜내는 게 절체절명의 과제”라며 “모든 걸 여기에 집중하고, 그 결과에 따라 더 생각할 일”이라고 단서를 달았다.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언론관련법과 한미FTA비준안 처리 시한을 내년 2월로 늦추는 양보안을 제시한 것에 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