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 감사원 그리고 검찰, 아니 현 정권이 총동원되어 정연주 KBS 전 사장(?)에게 씌운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지난 8월18일 법원의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상식 있는 시민 언론 단체나 정치인들은 일제히 '환영' 논평이나 성명을 발표했음은 물론이다. '사필귀정'이 역사의 박물관으로 처박히지 않았음을 보여준 판결에 대한 반응들이다.이번 판결의 핵심은 두 가지를 둘러싼 것이다. 하나는, KBS가 내야 할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산정하는 방법과 관련해 국세청과 기한을 알 수 없는 조세소송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서을고등법원이 마련한 'KBS의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환급 조정권고안'을 정 전 사장이 수용함으로써 KBS에 심각한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정 전 사장이 자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할까. 물론 제도권의 교육도 그 성장의 한 몫을 담당하지만 나는 행동하는 양심과 독서라고 생각한다. 물론 동서고금의 지식을 채득하는 독서가 가장 기본적인 사람을 키우는 것이지만, 결국 그 지식을 정말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 배움에 맞춰서 행하는 실천이다. 그런데 그 실천은 대부분 제도권의 거센 도전을 받기 마련이고, 유배나 감옥이라는 고립된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는다. 하지만 이 유배나 감옥은 순간적으로 몸을 가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때로는 그 갇힌 자에게 더 큰 성장을 주기도 한다. 나에게 그런 이들을 본 추억을 말하라면 나는 몇 사람을 떠올릴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도 그런 이들이고, 돌아가신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문익환 선생, 신영복 선생도 그런 분이다. 또
결국, 예정과 예측에서 한 치도 이탈하지 않았다. 고 장자연씨에게 술 접대 등을 강요하고 이를 방조 혹은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아 온 언론사 대표, 금융관계자, 드라마 감독 등 유력인사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경찰은 장씨에게 술 접대를 강요하며 폭행과 협박을 일삼았다는 소속사 전 대표 김모씨마저 불구속 기소했다. 이로써 전격적인 수사착수 이후 수사보류와 재수사를 거듭하며 전국을 연예인 사생활 관음으로 몰아넣었던 4개월간의 장정은 한 바탕 꿈, 허무개그로 끝나고 말았다. 고 장자연 사건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그리고 무엇을 남겼나? 흔한 말로 '사회적 공기' 또는 '사회의 목탁'이라 불리는 언론에게 장자연은 누구였냐 말이다.처음에는 어느 무명 연예인의 있을법한 자살이었다. 평소
비정상적이고 몰상식한 시대이명박 정권으로 인하여 감각이 무뎌지고 더 냉소적으로 변해만 간다. 송곳의 날카로움과 비수의 예리함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남은 것은 내 어깨를 짓누르면서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섬뜩한 두려움과 공포뿐이다. 이제는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현 정권 출범 이후 비정상적이고 몰상식적인 별별 해괴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다 보니 앞으로 죽을 때까지는 별로 놀랄 일도 없을 듯싶다. 그런데 이러한 비정상성의 정상성과 비상식의 상식화가 개인들로 하여금 내재화되어 비겁하고 무관심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다.그러다 보니 이제는 사소한(?) 일들이 화제가 되곤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인하여 잠시 묻혔지만 진중권 교수의 재임용 탈락
이명박 정부는 모든 규제를 경제적 해악으로 보는 모양이다. 다시 말해 규제는 경쟁을 제약함으로써 경제발전을 저해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 때문이지 취임초부터 규제철폐를 강행하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균형 있는 경제발전을 위해 존속할 가치가 있는 규제까지 철폐함으로써 경제적 약자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점이다. 맹목적적인 규제완화는 독과점을 심화시킴으로써 빈부격차가 더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반면에 거대자본의 입장에서 규제완화는 곧 돈이다.모든 규제는 완화 이전에 존속할 가치가 있는지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경제적-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는 완화대상이 아니다. 경제질서에 관한 규제 역시 완화대상이 될 수 없다.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 공공복리를 위한 규제, 환경보존을 위한 규제 등등은 완화대상
‘Fox 효과’를 아십니까? 루퍼트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 그룹의 방송사인 Fox는 9.11 폭탄 사건이 터지자 미국 저널리즘을 주도했다. 연일 국수적 국가주의, 애국심, 강력한 미국, 성조기를 앞세워 응징을 주장했다. 네오콘의 든든한 친구를 자임했다. 덕분에 미국은 제조된 애국심이 넘쳤고, 중동에서의 전쟁에 기꺼이 참여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타 방송사는 Fox의 선정성을 외면했지만 정작 시청자들은 Fox의 뉴스에 열광했다. 경쟁 네트웍들은 Fox식의 뉴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Fox 효과’다. 머독, 비즈니스를 위한 정치, 정치를 통한 미디어 비즈니스 만들기Fox의 힘은 곧 거대 복합 미디어기업의 힘이었다. Fox 방송의 실질적 소유주인 루퍼트 머독은 52개국에서 800여종의 미
이제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그냥 DJ라는 말을 계속 쓰도록 한다.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그래서 격식 차리고 싶지는 않다. DJ를 단순히 MB과 같은 이니셜로 볼 수 없다. 설혹 그렇더라도 투여된 사회적 정서와 역사적 의식, 정치적 의미의 질감 및 크기는 완전히 차이난다. DJ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그에 대한 각별한 애칭이다. 인간 김대중에게 덧붙여진 역사적 호명이고 정치적 인명이자 문화적 아호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DJ는 개인 김대중의 죽음과 상관없이 현재로서 생생히 살아있고 또 앞으로도 상당 기간 살아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씨’라는 표현보다는 DJ라는 단어가 훨씬 더 친숙하고 편하다. DJ로서 가깝게, 대중적으로 다가온다.사실
충격의 출산율 ‘1’의 붕괴가 눈앞에 닥쳤다. 출산율은 15∼49세의 가임여성이 평생 동안 낳는 평균 자녀수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출산율 1이 무너지면 자녀를 1명도 낳지 않는 여성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만혼, 독신, 이혼, 피임 등의 이유로 출산율이 꾸준히 낮아지다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1.19로 떨어졌다. 그런데 경제위기로 주력출산층인 25∼34세 여성들이 결혼과 임신을 미루는 바람에 내년에는 마의 벽인 출산율 1이 무너질 듯하다.15∼49세의 가임여성 자체가 줄고 있다. 올해 가임여성 인구추계는 1,303만5,000명으로서 작년보다 47만2,000명이나 감소해 2000년 이후 감소폭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가임여성 중에서 출산의 80%를 차지하는 25∼34세 인구는 올해 372만7,0
늦깎이로 대학을 다닌 내 때만 해도 민중문학이라는 단어가 살아있었다. 창비(창작과 비평)나 실천문학에서 나온 문학서도 그랬지만, 문지(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글들에도 참여에 대한 의지들이 녹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내가 중국에 있었던 10년(99년~08년) 사이에 거의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이런 느낌은 이제 더 이상 독재나 인권유린 같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예단 때문이라는 판단이 든다. 용산참사나 어처구니가 없는 정치 상황을 보면서 이제 그런 느낌이 얼마나 허상이었는가를 절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힘을 쓰기 시작한 이들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는 것은 ‘창비’(창작과 비평사)가 전투모드를 찾은 것이다. 사실 과거 창비가 주는 의미
오늘 동아일보에 '민노총 가입 석 달 만에 깨진 32년 노사평화'라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가 던진 충격이 채 하루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시대와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슬픔에 젖은 날, 동아일보의 태도는 여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역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라고 규정하는 동아일보의 사설을 그들의 논리적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여 살짝 뒤집기만 했다. 너무나 속보이는 그들의 편성과 논리를 단어 몇개만 살짝 바꿔, 문장의 주어들만 약간 고쳐 그들에게 그대로 돌려준다. 의 재활용은 계속된다. 사설을 뒤집으면 '설사'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코드, ‘평범함’이별은 손끝에 있고 /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 아침 산그늘 속에 /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 누가 알랴 사람마다 /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 아픈 데서 피지 않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 저문 산 아래 /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김용택, ‘사람들은 왜 모를까’) 오늘날 우리는 이
1916년 ‘승리 없는 평화(peace without victory)’를 슬로건으로 반전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은 그때까지 반전 국가였던 미국을 전쟁에 참가시키기로 한다. 그러자 무엇보다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연방 선전 기관 ‘연방공보위원회(United States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이 탄생했다. 조지 크릴(George Creel)이라는 인물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국민을 선동해 호전적 애국주의에 광분하게 만드는 갖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위원회의 선전 전략은 적중했다. 반독일 정서가 하늘을 찔렀고, 반전 여론은 삽시간에 돌아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 제안, 이명박 대통령의 개헌과 중대선거구제 및 7개 광역체제 재편 제안은 둘 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위기의 한 처방으로서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같은 선거제도의 재편 카드를 던졌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의 형식적 재편이 곧 위기의 해소로 이어질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역.이념의 대립과 갈등의 정치문화’를 추진 명분으로 들었는데,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는 지역주의나 이념의 갈등, 고비용의 제도 탓만은 아니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구적 경제위기의 지속과 부의 분배 몫의 격차가 커지면서 이에 따른 계급, 계층간 충돌이 격화되고, 이를 수습하고 해결할 정치적 지도력과 방책이 부재한 데
광복절을 앞두고 11일 법무부가 특별사면을 발표했다. 이번에도 152만여 명의 대규모 사면이 이뤄질 예정이라고 한다. 정부는 이번 사면을 ‘생계형 사면’, ‘친서민 정책’이라며 적극 의미를 부여하고 나섰다. 정부의 이번 특별사면으로 구제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사면’이 꼭 필요한 ‘서민’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권이 불과 집권 2년 만에 이전 정권들이 집권기간 동안 시행한 것과 비슷한 규모의 사면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더욱이 사면의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두 번 이상의 음주운전자는 제외됐다고 하지만, 음주운전 등으로 면허가 취소 또는 정지된 사람들을 사면한 것은 자칫 준법의식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생계형 사면’이라면서
새로운 밤손님이 등장하였다. 이 새로운 밤손님은 공개적으로 훔치지만 누구도 도둑맞진 않는데, 왜냐하면 그가 ‘공통의 것’을 훔치기 때문이다. 우선, 라는 영화를 훔쳤다. 아니, 영화 제목이 “이 영화를 훔쳐라”인데 훔친 게 맞냐고? 영화 제목이야 어쨌든, 이 영화는 엄연히 ‘Copyright ⓒ’ 달고 있는 ‘소유된’ 영화이다. 진보넷이 훔친 영화는 8/18(화) 늦은 8시 인디스페이스에서 공개적으로 상영, 복사, 재 배포될 예정이다. ‘도둑질’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저작권자의 어떠한 허락도 받지 않았다. 브라보!이 영화는 저작권에 대한 영화이다. 저작권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역사에서부터 오늘날 우리가 처하고 있는 문화적 재생산의 환경까지를 아우르는! 역사에는 하나의 반복이 등장한
햇빛에 땅 마를 틈도 없이 비가 자주 내립니다. 올 여름엔 더위 때문에 고생하지 않습니다. 한참 더위를 이어갈만 하더니 태풍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비가 잠시 그친 틈에 옥수수밭에 나가보았습니다. 햇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채로 꽃이 피었는데 옥수수가 잘 익을지 걱정되었습니다. 생각보다 옥수수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며칠 지나면 잘 익은 옥수수를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옥수수 밭 오가는 길에 상사화와 참나리도 빗속에서 예쁜 꽃을 피웠습니다. 참나리는 나리 중에서 진짜 나리라 해서 참나리가 되었습니다. 땅나리 애기나리 하늘말나리 등 여러 나리가 있습니다.풀은 아니지만 나무 중에도 꽃이 나리를 닮았다 해 이름붙은 개나리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본격적인 종합편성채널 짝짓기 움직임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10여개 가량의 컨소시움이 움직이고 있다는 데 걱정스럽다. 아직까지 헌법재판소의 평결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방송법 시행령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이견 없이, 토론 없이, 실무자 몇몇이 일방적으로 초안을 작성 8월 7일 언론에 공개해 버렸다. 그리고 일반국민들이나 시민사회단체 또는 이해관계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주지 않다가 무려 5일 후인 12일에 방통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법을 개정하거나 시행령을 개정할 때 기초적인 작업 중 하나인 ‘영향분석’도 신문방송겸영 종합편성채널 허가, 그것도 1개일 때 또는 다수 일 때 각각이 미치는 영향, 대기업이 참여했을 때 영향, 일간신문이 참여했을 때 영향 등에 대한 분석자료 조차 없이 그냥 밀어붙이고
12일 저녁 8시 상암구장. 감기몸살로 몇 일째 골골하고 있으나 오랜만에 A매치. 두툼한 파카를 입고 운동장을 본다. 언제나 그렇듯이 푸른 잔디를 본다는 것은 항상 즐거운 일. 하지만 야간 조명에 밝혀진 푸른 잔디는 태양 빛으로 보는 잔디와 또 다르다. 확 맑아지는 시야와 환호가 엉켜 뒹구는 운동장은 일상을 일탈한 전혀 새로운 행복을 가져다 준다. 경기까지 좋다면 금상첨화.2년 만에 이동국 선수가 대표팀에 발탁, 선발출장. 당연히 두 눈은 이동국 선수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고 이동국 선수와 투톱으로 선발출장한 이근호 선수를 함께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경기.이동국 선수에게 옛날과 다른 플레이를 기대한 것도 사실. 최근 K리그에서 보여줬던, 직접 관전은 하지 못했지만, 거의 매 경기 골을 넣었다는 보도와 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병세가 악화된 채 오랜 시간이 지속되자, 그의 영원한 라이벌이자 숙적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 또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을 찾았다.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고 보도된 그의 말은 여러 사람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조깅을 열심히 한 덕분에 아직까지 건강한 김 전 대통령의 발언 중 한 문장만큼은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었다. YS는 ‘우리가 함께 잘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뤘다. 아니었다면 버마처럼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역시 사람은 평소에 이미지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 내용을 기사로 읽으면서도 의미 있는 내용으로 인지하지 못했으리라 추정된다. YS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 말을 DJ가 했다면 큰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실로 버마의 상황
당신들의 무지와 무관심, 무책임을 고발한다. 당신들의 눈을 가린 지독한 오리엔탈리즘에 경악한다. 조중동은 두말할 것도 없고, 나 도 마찬가지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 9시뉴스도 하등 차이가 없다. 당신들은 청년 예술가의 불행에 눈 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유럽이나 아시아 어느 도시에서 이리 많은 사람이 죽어도 과연 그랬을까? 미국에서 최근 통근기차가 탈선해 10여명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절대 이러지 않았다. 신문과 방송이 일제히 주목했다. 상황이 다르다고 항변할 것이다. 오케이, 인정한다. 혹시 한국인 동포나 관광객들이 탑승했을지 모르니까, 해당 뉴스에 대한 국내 독자와 시청자들의 관심이 많으니까 그랬다는 설명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그래도 이건 아니다. 절대 이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