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흐가 남긴 건 다섯 권짜리 . 희망함만이 인간생존, 생명보존, 사회변혁의 원리라는 메시지를 불안한 현대사에 경고문처럼 박아두고 싶었던 것일까? 2011년 다시 꺼내 읽을 고전이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여전히 폭력이 난무하고, 평화의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진보집권”의 시나리오가 저 높은 단상에서는 이야기 되는 모양이나, 노동의 생활과 잉여/청년의 일상에 변화의 조짐은 아직 크게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희망이 문제다. 절망은 오직 희망함을 포기할 때 들이닥치는 죽음의 질병. 왜 희망을 어둠 속 한줄기 빛이라 하겠는가? 희망은 지금 아닌 시간 즉 유토피아의 갈망이며, 바로 그런 자격으로서 현재의 디스토피아를 공격하는 선한 생명의 바이러스다. 권력은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도록
남진의 ‘둥지’라는 노래가 있다. “더 이상 방황하지 마. 한눈팔지 마. 여기 둥지를 틀어. 지난날의 아픔은 잊어버려.” 좋다. “그 동안 몰랐지. 내 품에 둥지를 틀어 봐.” 죽인다. 노래처럼 이제야 당신 품에 둥지를 틀어 죄송하다고 했더라면 이 글은 없었다. 한나라당에 둥지 틀기로 최종적으로 마음먹어 행복하다거나, 든든한 둥지를 찾아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보수여당 프리미엄이 붙은 둥지의 선택. 누구나 다 아는 일, 이미 선택한 행보다. 내가 왈가왈부하고 짜증낼 일이 아니다. 기회주의적으로 여기 둥지를 찾고, 변절해서 저기 둥지로 잽싸게 옮기며, 정체불명의 상태로 또 다른 둥지를 찾아 방황하는 모습에 놀랄 것은 하나도 없다. 이게 이 나라 정치 풍속도고 그게 정치가 집단의 속
안녕하신가, 이 땅의 배부른 방송과 신문 기자들이여. 오늘도 여의도 안에서 희희낙락대는 잘난 방송인들, 광화문 근처에 모여 웅성거리는 멋진 신문쟁이들이여. 언론인이라 자칭하며 분주히 자판을 두들기고, 저널리스트를 빙자해서 카메라 앞에 떡하니 서는 그대들이여. 어제 하루도 늘 그렇듯 행복하게 혹은 권태 속에서 마감하셨는가? 오늘은 그래 어떤 기사거리를 고민하시느라 골머리를 앓나? 물어보자. 당신들은 그녀의 죽음을 접하고 느낌이 어땠었나? 무슨 이야기하는지 어리둥절하시오? 방금 누굴 말하느냐고 물었소? 에끼, 양반. 그녀 말이오, 그녀! 이름? 그걸 인제 알아서 무엇 하겠소. 뭐하는 사람인지가 대체 왜 중요한 거요? 사람이 죽었소. 설 연휴 내내 홀로 아파했을 게 틀림없는 한 젊은 처자가, 이 추운 겨울날 골방
최문순 의원과 엄기영 MBC 전 사장의 강원 도지사 타이틀 매치는 과연 성사될 것인가? 이 대박의 흥행은 세간의 기대처럼 보궐 선거에서 이루어질 것인가? 엄기영씨가 도계를 넘나들면서 열심히 뛰는 것은 이미 오래된 주지의 사실이다. 엄씨가 공백이 된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나오고 싶어 하는 것도 거의 확실해 보인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에도 그 잘난 얼굴을 내비췄다. 카메라 바깥에서는 또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엄씨에 대해 많은 이들이 놀라워한다. 현 정권이 들어 MBC를 중심으로 벌어진 사태에 조금이라도 익숙한 사람들은 그가 보인 최근의 변신에 기막혀하기도 한다. 헛된 환상을 품은 탓이다. 나 또한 살짝 그랬지만. 그럼 지금부터라도 일은 잘 될까?
김인규 사장이 심각한 구설수에 올랐다. 내부에서 벌써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요구가 터져 나온다. 외부의 여론도 만만찮다. 좀 더 지켜볼 일이지만, 사실로 밝혀진다면 당장 자리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장의 교체에 그치지 않는다. 낙하산 방식의 사장 선임 방식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적인 구태이자 기득권 덩어리인 노조는? 무력한 이사회와 무능한 시청자위원회는? 자율성과 거리 먼 프로그램 제작과 편성의 규칙은? 공영방송 서비스에 대한 가치, 정신의 문제는? 이런 문제 전반을 완전하게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 되고, 이제 우리는 이런 문제의 총체적 해결을 위해 지혜를 짜내야 할 것이다. KBS 레짐의 민주적 교체 작업이다.수 십 년간 정치적 쟁투를 통해 획득한 역사적 산물인 공영방
국회에서 오늘 또 유혈 낭자한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시간에 쫒긴 여당이 예산안을 단독 처리하고 야당이 몸을 던져 강력히 저지하면서 빚어진 결과인데요. 국회 이곳저곳에서는 오늘 여야 의원들과 보좌관들 사이에 언성을 높이고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하루 종일 반복되었습니다. 삿대질하고 욕설을 마다않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요. 일부 의원들은 서로 옷을 찢거나 주먹질을 날리는 게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민생을 도외시하는 폭력 국회,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습니다. 여의도에는 당분간 경색국면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치고 박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해져 가기만 합니다.대충 이때쯤 되면 자주 듣게 되는 국회 소식이다. 한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이경자, 양문석 위원의 반대 및 퇴장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소위 ‘사업자 허가 세부심사기준조건’이라는 걸 발표했다. 종합편성채널을 둘러싼 현장에 마침내 총성이 울린 셈이다. 비상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민사회와 운동진영, 진보학계, 그리고 시민대중들은 한국 미래 진보/정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종편 전선으로 서둘러 옮겨가야 한다. 수신료 싸움에 매진했던 전력을 종편 싸움에 총집중시켜야 하다. 방통위 두 야당위원들이 ‘싸움닭’처럼 제대로 못 싸웠다며 투덜대는 자가 혹 있는가? 그러기에 앞서, KBS 앞에 과잉 집중된 공력의 철거와 방통위 앞 분산배치작업부터 서두르라. 운동력을 집중시키라. 일방적 종편허가 저지의 외부 바리게이트를 튼실하게 설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
편집자 주 = ‘미디어스가 발걸음을 뗀 지 3년 됐다. 미디어스는 지난 2007년 10월 10일 창간됐다.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된다. 3주년을 맞아 ‘미디어스에 바란다’라는 주제의 글을 부탁해 싣는다. 지면 사유화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미디어스가 가야할 길을 공유했으면 한다. 창간 3년을 맞은 미디어스의 다짐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 동안 관심과 애정을 보내준 독자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비판 부탁드린다. 우리 모두가 미디어’라
같은 ‘선수’들끼리 왜 이러냐고 할런지 모르겠다. ‘에이, 우리 편 아닌가?’라고 섭섭해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하는 수 없다. 제발 정신 차리시라! 제대로 좀 싸워라. 눈을 뜨고, 팔을 내리지 마라. 우리 편’이라고 해서 눈감아 주거나, ‘선수’들이니 어려니 알아서 잘 하겠지 봐주는 대중들이 더 이상 아니다. 수도 없이 많은 챔피언 타이틀이나 싸구려 벨트가 아닌, 공영방송의 미래와 대중생활의 가계가 달린 결정적인 시합이지 않은가? ‘KBS 수신료 정상화’가 아닌, 공영방송 수신료 인상의 역사적 매치가 종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은밀히 전략을 짜고, 두 선수가 코피 터지게 기량을 발휘하는 초·중반전을 한참 지났다. 피 말리는 최종 라운드로 접어들었다. 선수들은 이제 기진맥진. 체력이 고갈되고, 감독의 작
지난여름 에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커밍아웃 한 적이 있다. 맞다. 나는 확실하게 자연과 환경, 생태의 문제에 관한 한 아주 보수적이다. 자연환경 보수를 21세기 진보주의의 핵심적 가치로 여기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자연생태 보수의 중대성을 주창하는 일종의 변증론자라고나 할까? 대구가 고향인 내가 바로 그 보수반동의 도시를 에둘러 흐르는 낙동강 강정보를 찾아 거닐며 새삼 절감한 바다. 어머니 지구의 미세 혈관을 감히 함부로 막고 뜯고 틀어막는 자가 누군가? 그러다간 진짜 우리 어머니 말씀대로 ‘벌 받는다’. ‘어른들 말씀 하나 틀리는 게 없다’고 하지 않던가? ‘버르장머리 없이!’지역 문제에 관해서도 나는 지극히 보수적이다. 문화의 지역성을 생태적으로 중시하고, 지역의 차이나는 감수성을 문화적
내가 에 ‘엄기영 사장을 둘러싼 구설을 접고’를 쓴 것은 작년 12월쯤이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에 의한 방송 장악의 음모가 MBC에 이르러 최 정점에 치닫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갑자기 당시 사장으로 있던 엄기영씨가 다른 임원들과 함께 일괄 사임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그 배경과 의도를 둘러싸고 해석이 분분했다. 왜 갑자기 사표를 내는지, 추측이 난무했다. 물론 대체 그 이유가 뭔지, 물론 아무도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식이든 분석과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야 무슨 개입의 대책, 변경의 대안을 마련할 것 아닌가? 전략을 정하고 전술을 바꿀 것 아닌가, 필요하다면. 해서 나는 엄사장 혹은 사건 주변의 누군가 흘린 말에 귀를 곤두세워 보
지난 학기 기말 발표 때 어떤 학생이 감히(?) 내게 정면으로 도발을 해 왔다. 학교가 그런지라 나이가 좀 들긴 했지만, 그래도 신입생치고 매우 발칙한 행동이다. 아무튼 요지는 간단하게 이렇다. 전규찬 교수 당신은 반동이다. 댁이 주장하는 이른바 ‘동정론’은 한 마디로 말해 싸구려 센티멘털리즘에 불과하오. 좌파적 관점에서 개념을 급진화시킨다, 전유해 내자 어쩌고 떠들지만, 당신은 결국 사회적·구조적인 모순의 문제를 개인화·낭만화하는 오류만 저지르고 있을 뿐이오. 진보주의자에게 무슨 동정심? 하하, 그 거지 발싸개 같은 개념은 주류 우파, 보수주의자들에게나 던져 버리시오!이런 비판, 비아냥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동정론’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차가운 이성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믿기 때
KBS의 현 사태에 관해서다. 결론부터 말한다. 사측은 임금단체협약 체결, 공정방송위원회 설치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측의 요구조건을 즉각 수용하라. 그래서 파업하는 노동자들이 공영방송 강화의 일정 성과를 갖고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하고, 사측의 입장에서도 타협과 화해라는 상식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이라. 그럼으로써 영점으로 치달은 KBS의 신뢰성, 정당성 회복의 기회를 놓치지 마라. 일석이조, 일석삼조다. 수신료를 포함해 KBS의 모든 문제를 풀 열쇠는 아니지만, 그래도 실마리가 될 끈임에는 틀림없다. 그러하니 또 다른 우를 저지르지 마라. 특히 김인규 사장에게 말하고 싶다. 변화하는 안팎의 동정을 명확하게 읽어, 노사합의의 결론을 서둘러 도출하라는 것이다. 그게 정답이다. 이렇게 말
맞다. 당신은 우리 모두의 짱이지만, 누구보다도 그날 이후로는 바로 나의 짱이시다. 미안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책 잘 읽었다는, 지금도 우리말 공부에 열심이라는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무척 죄송스러운 말투다. 그래도 그때 내가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전하기에 이 표현이 가장 맞다.텔레비전에서 자주 보던 그녀다. 그렇지만 KBS 주말 9시뉴스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그녀를 짱이라고 느낀 건 아니다. 솔직히 이름도 지금까지는 잘 몰랐다. 미안해요~^ 물론 머리 나쁘고 기억력 역한 내 탓이다. 라디오 진행 프로그램도 했을 텐데, 들어보지 못했다. 아나운서와 나 사이의 당연한 거리감. 인터넷을 좀 뒤져보니, 부모님 고향이 대구 쪽이란다. 동향이라 많이 반갑다. 진보의 도시기도 했지만, 지금은 수구의 거점으로
엄경철 위원장 빨리 오시오! 뜨거운 태양아래 힘차게 투쟁하는 동지들 서둘러 모이시라! 공부에 바빴던 당신들, 활동으로 분주했던 그대들도 이 기회에 모두 함께 자리하면 어떻겠나? 술이다. 시원한 술이다. 열심히 일하고 나서라서 좋고, 함께 싸우고 난 후라 더욱 시원하며, 무엇보다 생각 같고 마음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라 어느 때보다 맛있을 그런 맥주가 있다. 우리들만의 유쾌한 맥주파티다. 원용진의 아이디어다. 공부를 같이 하고 운동도 함께 하는, 그래서 오랫동안 늘 같이 붙어 다니다시피 한 원 선배가 뜬금없이 제안한 거다. 자기도 꽤 목이 말랐었나? 하기야, 요즘 날이 어떤데. 원용진 : “전 선생, 파업하는 KBS 친구들 위해 하루 날 잡고 일일 호프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 않아요?”전
프로그램에 대한 판단과 평가는 텔레비전 시청 대중들의 눈높이와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 주체의 정치적 색깔에 따라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특히 보도나 교양 장르의 경우, 취향의 차이에 덧붙인 이념의 구분이 선호도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의 경우 더욱 그렇다. 이제 20년을 맞이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보기 좋다’, ‘보기 싫다’라는 공감 즉 공통감각(common sense)이라는 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매우 혐오스럽고 불편하겠지만, 또 다른 시청자들에게는 빠트리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 혹은 반드시 존재해야 할 프로그램이다. 는 한국사회의 변별점이다.한 쪽에게는 뽑아냈으면 속 시원할 ‘적출’의 표적이고, 반대편 진영에게는 사회적 안녕의 바리게이트로서
드디어 아르헨티나와 한판 붙는다. 재미있지 않겠나? ‘16강 신화’ 어쩌고 하는 말에 신경 쓰지 않지만, 그래도 좀 기대된다. 나름대로 응원할 것이다. 이기면 기분 좋겠지만, 져도 상관없다. ‘치맥’을 곁들인, 낯선 이들과 함께 할 집단시청의 즐거움에 설렌다. 오해마시라. 그렇다고 내가 월드컵에 미친 건 아니다. 한국팀 경기이니 보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흥미로운 시합이니 시청하며, 역시 월드컵 게임이라 볼만해 하고 즐겁게 떠드는 것이다.내가 이러한 데 남들은 어떨까?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훨씬 더 축구를 좋아하고 대표팀을 사랑하며 월드컵을 즐기는 이가 있다. 기분 좋게 환상적인 플레이에 푹 빠진다. 그래도 월드컵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은 주변에서 별로 찾지 못한다. 월드컵을 유쾌히 즐기면서 현실을
엠비씨 사태와 관련해 누구보다 많은 칼럼을 썼다. 그러면서 솔직히 핀잔도 많이 들었다. 당신 ‘엠빠’냐고 대 놓고 비아냥대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올 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다른 신경 쓸 일도 많은 데 엠비씨 문제에만 그리 집중하면 되느냐는 지적, 감정적으로 너무 많이 관여되어 있는 것 같으니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좋겠다는 조언 등은 꽤 많이 들었다. 그래서 좀 차분해지려는 사이에 파업은 끝나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 이근행 위원장과 오행운 피디에 대한 해고 징계가 내렸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징계를 받았고, 지역 엠비씨 노조원들에 대한 징계도 아직 남아 있다.그래서 또 이렇게 쓰게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행운 피디를 잘 모른다. 신세진 것이 전혀 없다. 왔다 갔다 하며 봤을지는 모르지
KBS가 다시 수신료 인상을 시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정에 대해, 구체적인 안에 관해서도 이런 저런 소문이 들린다. 미국에 있는 최진봉 교수조차 이달 중순쯤 ‘수신료 현실화’를 위한 2차 공청회가 추진 중이라고 쓸 정도니, 뭐 공공연한 사실인 모양이다. 칼럼에서 최 교수는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수신료를 올리겠다는 KBS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고 비판한다. “수신료 인상을 논하기 전에 공영방송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 먼저라는 것”이다. KBS가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지 않아도 국민들이 자진해서 수신료를 올려주고 싶을 정도의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는 제안
세시 반에 신촌 출발, 북아현동 긴 골목 지나 충정로 근처 참 드문 서울 도심의 철길에 잠시 머물고, 시청 프레스센터 13층 남쪽 화장실에서 용무보고, 그러고 인사동으로 걸음 서두르니 정확하게 다섯시. 1시간 30분에 서울 도심을 걸음으로 질러보았습니다. 땡 빛에 열심히 걸으며 이런 고민, 이런 생각했습니다. 이근행은 단식 풀고 대신에 우리 트위터 둥지 동지들이 돌아가며 한 끼 씩만 금식하자면? 어떠세요? 오월 그렇게 한 인간의 피나는 고통을 조금씩 부담하면서, 서로 손잡고 더욱 힘들 시간을 함께 버팀이? 이렇게 어제 저녁에 트위터에 몇 자 썼습니다. “저항의 표식으로서의 단식을 당장 접으시라.” 단식중지를 요청하는 이야기를 다른 분들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냥 멈추면 당신의 맘이 어찌 편하시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