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정말 좋겠네~♪♬”라고 부르는 유명한 동요가 있다. ‘텔레비전’은 그 자체로 꿈이다. 텔레비전을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호명한 문화비평서는 텔레비전에 말을 걸 것을 호소하고 있다지만, 글쎄. 원천적으로 텔레비전은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아니, 아무하고나 대화하지 않는다는 설명이 정확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텔레비전이 가족이라면, 무뚝뚝한 아버지이고 뿔난 엄마이고 과묵한 형이고 심통 난 동생이다. 가능한 것은 대화가 아니라 텔레비전이 하는 말을 듣는 것뿐이다.물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디어 환경도 변해가고, 텔레비전의 지향적 목표도 변해간다. 텔레비전도 이제 ‘개방’과 ‘참여’를 외쳐야 센스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텔레비전에
완승이다. 미라클 두산을 이토록 쉽게 제압하다니 말그대로 어메이징 SK다. 뭐 한 경기쯤이야 KBO 관중수입을 위해서 기꺼이 헌납할 수 있다는 듯이, 혹은 약자의 반란을 꿈꾸는 무리들에게 일말의 기대라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는 듯이, 1차전을 가볍게 몸풀고 내리 4게임을 가져갔다. SK는 작년보다 강했지만 두산 또한 작년보다 훨씬 강했다. 리오스는 없어졌지만 두산의 1, 2, 3, 4번은 모두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다. 타격 2위 홍성흔과 11승에 17홀드를 기록한 이재우는 국가대표에 뽑히지도 못했었다. SK는 어쩌면 저 현해탄을 건너가 일본에서 야구를 해야할지도 모를 정도로 리그의 다른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1년 내내 선보였다. SK의 한국시리즈 2연패는 누구나 쉽게 점칠 수 있었고, 2009년 가장
얼마 전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논현동 고시원 살인사건에 대해 방송3사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들은 앞다투어 ‘묻지마 살인’으로 보도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던데 이유 없는 살인은 존재하는 것일까? ‘묻지마 살인’의 작명은 기묘한 연막(煙幕) 효과를 지닌다. 모든 죽음에는 이유가 있듯, 모든 살인에도 이유가 있다. 무차별적 살인이기 때문에 ‘묻지마 살인’으로 이름 붙였으리라는 짐작을 해보지만 왜 무차별적 살인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특히나 심층의 원인과 진실을 파헤치는 저널리스트라면 응당 이를 물어야 할 것이다. 현상에 치우쳐 살인의 심층 원인을 짚지 못하는 것은 저널리스트의 책임 방기이다. ‘묻지마 살인’의 작명은 심층의 원인을 가려 저널리스트의 책임을 면피하게 만들고 더 나쁘
기자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기사가 과 에 연달아 떴다. 강원랜드의 도를 넘어선 기자접대 사실과 등 6개 신문사 기자들이 대한항공의 협찬을 받아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온 후 홍보성 기사를 써줬다는 의혹에 관한 기사가 그것이다.미디어오늘의 그 기사에는 '기자들아, 너네들이 거지냐?'라는 댓글이 붙어 있고, 미디어스의 기사에는 '왜 그러실까? 그럼 세상에 공짜가 어디있나요?'라며 비야냥거리는 댓글이 달려 있다. 나는 이 기사와 댓글을 보면서 기자로서 심한 모멸감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러면서 문득 '기사 속의 당사자인 기자들은 이 기사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하는 궁금증이 들었다.그런 걸 아무 죄의식 없이 받아먹거나 즐기는 기자라면 모멸감이나 부끄러움은커녕 오
황석영,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 문단의 거목이다. 어떤 상징이다. 작가 황석영이 mbc 에 출연했다. 바야흐로 오늘의 문화는 절대 예능과 그 밖의 나머지들로 구성되고 있다. 황석영은 어제의 작가가 아니다. 현재도 책을 가장 많이 팔고 있는 현역이다. 그런 그가 에 출연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출판과 인문학이 맞고 있는 위기가 간단치 않은 것임을 시사한다. 뉴스에 어울릴 법한 황석영은 왜 에 나온 것일까? 을 네이버에 연재하며 동시대 익명의 ‘집단지성’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의 고백대로 출판사 마케팅 팀장의 권유 때문이었을까? 연유가 무엇이든 성공적이다. 나도 낚여서 끝까지 보게 됐으니.스스로 거리낌 없이 한국 현대사의
빅뱅의 힘인가? 포털 검색 사이트 검색창에 ‘빅뱅’을 입력한 후 검색 버튼을 클릭하면 기사들이 쏟아진다. 30일 포털 검색 사이트는 빅뱅이 상위를 차지했다. 이유는 빅뱅의 티저영상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빅뱅의 의 베일이 벗겨진 것이다.빅뱅 티저 영상 사회적 이슈 반영…서해바다 기름유출 빅뱅은 오는 11월 5일 정규 2집 앨범을 발매를 앞두고 30일 오전 11시 YG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종 온라인 음원 사이트를 통해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이번 앨범의 타이틀곡은 가수 이문세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로 YG엔터테인먼트 측은 “이문세의 은 이미 여러 차례 다른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됐지만 빅뱅은 기존의 곡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곡을
어머니와 마흔 해를 살았으니 이만 하면 아쉬울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욕심인가? 13년 전 어머니는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갑상선에 악성종양이 생겨 수술이 불가능하고 길어야 2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서. 친할머니도 외할머니도 기억 못하는 나는 내 아이들이 할머니를 기억할 나이가 될 때까지만 살아계시게 해달라고 그날 화장지를 반통이나 쓰면서 울고 또 울면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빌고 또 빌었다. 그 후로 큰아이가 열세 살이 될 때까지 사셨으니 분명 누군가는 내 기도를 현실로 이뤄준 셈이다. 부모가 된 지금 자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생기는 기쁨이 많음을 아는데도 왜 그렇게 아프게 해 드린 기억들만 떠오르는지…. 지금이야 아이들이 필수코스로 다니지만 그때만 해도 선택받은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는 멈춰섰다. 안 그래도 좁은 비상계단은 전투경찰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다. 지나가다 얼핏 보면 마치 쿠데타라도 일어나서 누군가 점령한 국가기관을 공권력이 보호하고 있는 듯하다. 혼자만의 지나친 느낌인 걸까? 아마도 건물 외부에 새겨진 ‘국가인권위’라는 간판 때문에 그런 착시 현상이 일어난 듯하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찬밥 신세였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이 아니다. 그 시절에는 ‘국가’는 ‘인권’이라는 단어보다는 ‘침해’라는 단어가 퍽이나 잘 어울렸다. 물론 지금도 국가가 침해하는 인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국가’와 ‘인권’이 같은 단어 안에 함께 쓰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세상은 된 것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세상사지만, 인권위 또
요즘은 신문을 펼치든, TV를 켜든 간에 온통 세계 경제위기에 관한 기사들로 대홍수를 이룹니다. 예전 같았으면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언론이 가장 비중 있게 다뤘을 미국 대선 관련 보도도 한쪽 구석으로 밀려날 정도니까요. 미 대선을 바라보는 일반 사람들의 시선도 “미국 너네가 불을 질렀으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빨리 어떻게 좀 해봐”하는 원망 섞인 반응 정도인 듯 합니다. 정말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이 말이 아니게 됐습니다. 물론 미국에 대한 전 세계인들의 신뢰가 바닥을 친 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요.아무튼,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들에서는 위기와 대혼란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갖가지 분석들을 쏟아냅니다. 어떤 이는, 부실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탐욕에 눈이 멀어 무분별한 대출과 파생상품을 남발한 미국 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국정감사장 욕설 파문이 본인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오히려 사과의 진정성 등을 놓고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양상이다. 한 네티즌은 “언제부터 18(7+4+7=18)이 욕설이 아닌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수사로 쓰이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격한 감정을 표출해 낼 국민들에게 ‘사이버 모욕’이니 ‘악플’이니 하는 소리부터 하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MB정권의 대선공약인 747정책이 국민들 앞에서 욕설을 지껄이는 바로 이런 것이었느냐”며 조소하기도 했다. 급기야 한 네티즌은 “국회에서 욕설을 하고 방송기자들에게 촬영을 중단하게 하는 유 장관의 발언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국민
이애리수가 포털 실시간 뉴스 검색순위 1위를 차지했다. 낯선 이름이지만 그녀가 부른 곡은 낯설지가 않다. 28일 포털은 사이트는 일제 강점기 시절에 애달픈 노래로 민중들의 가슴을 달랬던 의 가수 이애리수가 살아있다는 소식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가 어떤 곡인지 언뜻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아래의 가사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아~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어 왔노라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라아~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서 잠못 이루어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가수 배호도 이 노래를 불렀고, 윤복희, 나훈아, 한영애, 김정
실시간 이슈 검색어에 개그맨 전유성이 올랐다. 실로 친숙한 이름이 눈에 띄자 곧바로 마우스를 클릭한다. 실시간 뉴스에는 전유성의 어록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누가 그 어록을 전파했나 했더니 개그맨 이홍렬 이란다. 이야기를 한번 살펴보면 이렇다. 이홍렬은 25일 방송된 KBS2 에서 전유성에 관한 재미난 일화를 소개했다. 전유성이 이홍렬에게 “너희들 상갓집 갈 때 뭐라고 쓰니”라고 묻자 이홍렬은 당연히 “근조 또는 조의라고 쓴다”고 답했다. 전유성은 ‘근조 또는 조의’는 너무 어렵다며 “이렇게 쓰는 것은 어떠니? ‘쯔쯔’”라고 말했다. 물론 출연자들은 폭소로 뒤집어졌고, 월요일 오전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관심있게 본 이들은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클린턴 집권기에 미국이 구가한 사상 유래 없는 번영을 입 밖에 꺼내는 일조차 배가 아파 견딜 수 없었던 미국의 보수우익이 가까스로 정권을 되찾은 이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 사회는 몰라보게 변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신자유주의의 심장부라는 월가(Wall Street)마저 스스로가 몰고 온 전 세계적 금융위기와 더불어 맥없이 허물어졌고, 급기야 미국 정부는 ‘관치금융’이라는 가장 반자본주의적 금융체제 도입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오죽했으면 정부의 적절한 시장 통제 기능을 강조한 케인즈 이론을 다시 불러내야 했을까. 저자가 조지 W. 부시에 대한 ‘고발장’이라고 명명한 이 책이 다루는 시기는 아들 부시 집권 초기 2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올해 노벨 경제학상으로 평가받은 저자의 선견지명은 그 2년에 대한 평
프랑스어 라포, 또는 라포르(rapport)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감적인 인간관계, 또는 그 친밀도를 말한다. 라포는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신뢰, 존중감이 동반될 때 형성된다. 심리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단어이지만 인터뷰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지금이야 매체도 많아지고 매스미디어 종사자들의 유형도 다양해졌지만 나의 대학시절만 되돌아보아도 신문사나 방송국 문턱은 한없이 높고 막연히 우러러보이는 곳이었다. 교수님 심부름으로 방송사에 갈 때 가슴이 덜덜 떨리고 복도에서 마주치는 낯익은 아나운서 얼굴만 보여도 그렇게 경이로울 수가 없었다. 거기다 TV 화면에서 익숙한 그가 살짝 눈인사라도 보내준다면 그야말로 기분 ‘찢어지게 좋은’ 경험이었던 것이다. 방송 일을 시작하기 전, 결혼 후 잠깐 주부 리포터 비슷한
작년 봄 세계금융시장에 엄습한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기어코 대폭발을 일으켰다. 신자유주의의 본산지인 월 스트리트를 초토화시킨데 이어 세계경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것은 미국의 레이건과 영국의 대처가 발진해 20년 이상 세계경제 질서를 재편해온 시장주의와 규제완화를 골격으로 하는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사태 진전에 따라서는 21세기의 제국 미국의 종언을 알리는 조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판국이다. 만성적인 쌍둥이 적자에 시달려온 미국은 1980년대 중반에 들어 해외시장 개방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통상정책을 전환했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열어제치면서 그 전면에 내건 기치는 시장주의와 규제완화이다. 1989년 공산주의의 붕괴로 세계유일의 초강
월 스트리트에서 촉발된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가는 기세로 세계경제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카지노 자본주의의 탐욕이 빚은 비극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담보대출)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다단계 판매처럼 복잡한 파생상품을 만들고 또 만들어서 떼돈을 벌다 덫에 걸려 파국을 맞은 것이다. 야수의 모습으로 세계금융시장을 사냥하던 거대투자은행들이 연쇄도산하며 헤지펀드가 그 뒤를 따를 양상이다.무릇 은행은 의 사일록 같은 얼굴을 하고 보증과 담보를 요구한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돈을 맡길 때는 은행이 있어도 돈을 빌릴 때는 은행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업이란 일본계 고리대금업자한테 코가 꿰어 헤어나질 못한다. 이자제한율이 49%라고 하지만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만큼 엄중한 철학적 질문도 드물다. 아무리 고민을 해도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다. 세상은 이처럼 동전의 양면처럼 도저히 진실을 가릴 수 없고, 자장면이냐 짬봉이냐를 선택하는 일과 같이 실존의 전부를 더듬어야 겨우 선택할 수 있는 난제로 가득하다. 누구도 피해가지 않는 운명의 얄궂음이랄까.‘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가,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이다. 이 질문에는 한국인의 가장 핵심적인 행동적 문법이 뒤엉켜 있다. 이 질문은 결국, ‘하면 된다’와 ‘할 수 있다’의 충돌이다. ‘하면 된다’와 ‘할 수 있다’는 압축적 근대화와 왜곡된 현대사를 통과한 우리 모두의 상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게 그거 아니냐고
세상에 무슨 무슨 날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물의 날, 문화의 날, 교정의 날…. 세상에 납세자의 날도 있다. 나처럼 세금 한 번 제대로 안내본 사람은 어쩌라구. 게다가 크리스마스니 석가탄신일이니 이런 종교적인 기운 충만한 날부터 해서 밸런타인데이니 빼빼로데이니 이런 소비지상주의 가득한 날까지. 온갖가지 ‘날’들이 판을 치는데 어지간하면 명함하나 내밀기도 힘들고 혹 들어는 봤어도 지나고 나면 언제인지 금방 까먹을 ‘날’들.하지만 아주 일상적인 것도 특별한 경험을 통해서 오래가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30년을 모르고 살아왔던, 하지만 앞으로 절대 잊을 것 같지 않은 ‘경찰의 날’처럼 말이다. 어쩌면 보통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10월21일이 무슨 날인지 몰랐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좋은
살다보면 세상 돌아가는 일에 짜증나고 한마디 쏘아붙여 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때 우연히 그 상황에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나 누군가 써놓은 글을 만나면 통쾌하기 이를 데 없다. 대운하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명박스럽다”는 표현을 만났을 때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 와중에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때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는 패러디 만화를 만났을 때가 꼭 그랬다. 내가 하고픈 이야기를 어쩜 이리도 기가 막히게 대변해줄 수 있을까. 감동 먹은 적도 있다. 요즘 광주에서 열리고 있는 제7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 있다. 비엔날레 본전시관 제2전시실(5전시실까지 있다)에 가면 이번 전시 중 가장 황당하면서도 묵직한 작품이 있다. 독일 출신으로 미국에서 작업하고 있는 한스 하케(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