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을 중심으로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여러 가지 방안을 보면 다분히 사법권 길들이기 성격이 짙어 보인다. 시대가 변화하는 것을 거스르고, 민주화 시대의 사법을 자신의 퇴행적인 이념적 잣대에 옭아매기 위한 어처구니없는 방안도 논의 대고 있다. 특히 법원 내의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공격이 그렇다. 사법부 구성원이 국회 내에 존재하는 의원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연구모임을 해체하라고 하면 국회의원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니네들이 무슨 참견이냐고 냉소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대한 공격은 사법개혁이라는 미명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필자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사법개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하는 것은 검찰권의 남용에 대한 통제와 검찰권의 공정한 행사를 위한 제도적 기
대상에 대한 호명에는 대상에 대해 '객관적'이라고 믿어지는 신화가 담긴다. '명품'으로 호명되는 각종 고가 브랜드 제품들이 한 예다. 명품 소비자들은 제품의 실질적 사용가치보다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타자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대중의 신화를 소비하는 데 기꺼이 막대한 돈을 지불한다. 그런 신화의 단면이 '짝퉁'이다. 짝퉁을 산다는 건 명품의 '정당한' 가치라고 믿어지는 만큼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 브랜드의 '객관적 신화'만 툭 떼어내 소유하고자 하는 행위다. 하지만 짝퉁을 산 사람 가운데 자랑스레 "나 짝퉁 샀어"라고 말하는 이가 드물 듯 짝퉁 소비자들은 명품의 가치가 '신화적'이라는 걸 역설적으로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대상에 대한 호명에는 권력의지도 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말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모든 국민의 기본생활을 보장한다는 뜻으로 곧잘 인용된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출생에서 사망까지 교육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뜻으로 통용될 만하다. 갓난아이 때부터 음악듣기, 영어듣기를 쫓아다녀야 하고 대학졸업 후에는 취업을 준비하느라 늙어서는 일자리를 얻기 위한 자격증을 따려고 학원을 떠나지 못한다. 과도한 교육비로 인한 가계부담 증가가 출산율을 저하시키고 계층간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킨다. 또 비생산적인 분야에 대한 과도한 지출로 인해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잠식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4분기∼2009년 1/4분기 가계의 교육비 지출액이 40조5,248억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의 39조1,557
모태범 선수가 500m 금메달에 이어, 1000m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하였다. 메달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이 청년의 나이는 이제 21살이다. 적어도 다음 올림픽까지 어쩌면 그 이후로도 이 청년의 이름은 세계 빙상계의 주요 명사로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위더스푼'이나 '데이비스'의 이름을 기억해왔던 것처럼.신기한 일이다. 적어도 나는, 주변에서 취미로 '빙상'을 즐긴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빙상장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선뜻 생각나질 않는다. 스포츠를 어지간히 즐긴다는 사람일지라도 대체로 비슷할 테다. 빙상의 선전이 허구연 해설위원이 CF 모델이 되어서까지 강조하는 '인프라'의 문제는 아니란 말이다. 외신들이 정신줄을 놓는 경이로움을 표하는 상황은 그래서 이해할 만하다. 서너 살 때 동네 빙상장에서
학업을 잠시 중단한 채 머리 깎고 입대하는 주변의 많은 학우들과 친구들을 보아왔다. 한창 젊음을 즐기고 청춘을 만끽할 시기에 군대라는 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선배, 동기, 후배들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늠름하게 여겨왔다. 그리고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여자인 나로서는 약간의 미안함도 있어왔다. 그런데 요즘 나는 대한민국 보통의 남자라면 꼭 치러야 할 군 복무가 과연 신성한 것이라 할 수 있는지 깊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아니, 병역의무가 나라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이기 이전에 우리 학생들에게는 '빚더미 멍에'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기꺼이 군대를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국방의 의무, 병역의 의무라는 국민의 4대 의무를 성실히 지키기 위해서 군으로 향
‘지랄탄’이라는 게 있었다. ‘빠바바방’ 소리와 함께 경찰의 페퍼포그 차량이 쏟아낸 지랄탄은 일정한 방향 없이 사방으로 튀며 최루가스를 쏟아냈다. 어디로 튈지 모르니 일단 지랄탄이 떨어지면 최대한 멀찌감치 물러나는 것이 상책이었다. 권위주의 정권이 사랑한 지랄탄은 대규모 시위대를 해산시킬 때 효과적이었다.지랄탄을 포함한 다양한 종류의 최루탄은 과잉진압의 상징이었다. 최루탄으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난 여론도 높아졌다. 민주화 이후 지랄탄은 거의 자취를 감췄다.민주노동당과 전교조, 전공노를 겨냥한 검경의 수사 행태가 바로 이 지랄탄을 떠올리게 한다. 정확한 수사 대상과 수사 범위, 수사의 목적을 파악하기 힘들다. 여기저기 쑤셔대다가 걸리면 걸리는대로 걸겠다는 건지, 크게 걸
(우선 늦게나마 임수혁 선수의 명복을 빕니다. 2루에서 홈까지 그렇게 멀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것에만 환호하느라 당신을 잊었던 것에 대해 사죄합니다.)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걸 이야기 하면 극소수의 분들이 프로야구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 하며 비판을 한다. 그 후의 내 반응? 그냥 대답하기 싫어 대응하지 않는다. 물론 그 말을 하신 분들이 내게 강요를 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아 무시하는 게 첫째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전두환 정권의 3S 정책으로 탄생한 건 부정할 수 없기에 답변을 안 하는 이유도 있다.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놓치는 게 하나 있다. 야구는 바로 서민의 스포츠라는 것이다. 야구가 탄생한 초기에는 미국의 부유층 계급의 오락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야구를 즐기는
2001년부터 시작된 국내 지상파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형 국책사업은 그 동안 정부가 제대로 된 정책을 펴지 않고 방치한 바람에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2008년에 디지털 전환을 활성화하기 위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이에 따른 후속조치들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시행해야하는 행정부와 예산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입법부의 협조가 잘 되지 않아 금년에도 별 진척 없이 끝날 공산이 크다. 그 동안 방송통신위원회는 특별법에 따라 장기적인 전환계획뿐만 아니라 2010년에 실행해야 할 세부계획을 확정해서 국회에 예산안을 넘겼지만, 국회는 당초 신청금액인 140억원의 18%에 불과한 25억원을 배정해 금년도 사업의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그 동안 방송통신위원회는 2012년 연말까지 아날로그 TV 종료와 디지
동계올림픽의 어느 쇼트트랙 경기에서 스스로 반칙을 저질러 실격하고 동료까지 넘어뜨려 한국 대표팀의 금, 은, 동 싹쓸이를 무산시킨 어느 선수에 대한 웹상의 비난 여론이 거세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WBC 결승전 마지막 순간에 이치로에게 얻어맞은 임창용에 대한 분개처럼 과잉된 '스포츠 민족주의'의 발현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는 '한국의 메달 획득을 방해했다'고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네티즌들이 이 사건에서 읽어내는 것은 실력을 견주는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는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파벌주의다. 과거의 기사들과 경기동영상을 토대로 네티즌들은 문제의 선수가 어떤 파벌에 속해 있으며, 국가대표 선발전과 세계대회 등에서 그 파벌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어떤 반칙을 범해
우울한 명절민족의 큰 명절 설 연휴가 끝났다. 명절 때만 되면 더욱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찌 보면 마음 편한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남편만큼 많이 벌지만 시댁에만 가면 죽어라 일해야 할 며느리들, 아내들의 고통의 시간에 어정쩡하게 마음 졸이는 남편들, 시집 안 간 노처녀들, 장가 못간 노총각들, 이름 있는 학교를 못간 학생들. 집안사람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 “얘야, 옆 집 거시기는 좋은 회사 취직했다더라.” “얘야 올 해는 꼭 결혼해라.” 말 하는 사람은 덕담으로 한번 말하지만 여러 사람들로부터 듣는 당사자에게는 악담으로 들리게 된다. 저마다의 삶을 이렇게도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은 조심스럽게 말해야 한다는 윤리적인 문제 속에서만 찾아져서는 안 된다. 한 집안 내에서 오고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한국 사회의 다이내믹함은 바로 이런 곳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현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올림픽을 단독 중계하기야 하겠어?’란 의구심이 정말 현실이 되었지만 세상은 무탈하고, ‘과연, 단독 중계되는 올림픽은 어찌 시청해야 하는 것일까’하는 당황스러움도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있다. 바야흐로, SBS의 독주를 목격하고 있다. 전 국민의 관심사인 금메달 획득 레이스를 SBS가 홀로 뛰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올림픽임에도 불구하고 채널과 뉴스의 다양성이 보장되니 산뜻하기도 하고, 뭐 하여간 생경하다. KBS와 MBC는 중계는 물론 보도조차 아예 포기한 모양새다. 쇼트트랙의 첫 금메달 소식이 단신 혹은 스포츠뉴스에서만 다뤄졌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어쩌면, 올림픽이란 단일
방송제작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다. 시사교양 관련 프로그램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요즘처럼 촬영장비가 저렴하고 효율적인 넌리니어 편집장비를 사용하는 환경에선 인건비 비중은 크다.방송사엔 표준제작비란 게 있다. 방송사마다 프로그램마다 다르지만,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기준으로 표준제작비는 대략 4천5백만 원 정도다. 이라든가 , , 같은 특별한 경우엔 표준제작비의 몇 십 배 정도다. 그런데 방송사 내부 정규직이 받는 인건비와 같은 월급 그리고 자체 장비 사용료는 표준 제작비 산정에 들어가지 않는다.독립PD는 50분짜리 한편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하는데 평균적으로 2천만 원을 받는다. 물론 필자와 같은 특권층(?)은 4천
보스니아 출신 작가 이보 안드리치(Ivo Andric)의 소설 의 첫 머리를 보면, 이 지역이 터키의 지배를 받던 시절 라디사브라는 이름의 세르비아인이 다리 공사를 방해한 죄로 끔찍한 사형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발칸의 이 피비린내 나는 ‘말뚝형(刑)’은 실로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다. 밧줄로 묶은 두 다리를 잡아당겨 벌린 뒤 하얗고 긴 창살 막대기를 항문에다 박아 넣고 망치로 천천히 치며 복부 쪽으로 찔러 넣는다. 사형수가 금방 숨을 거두지 않도록 주요 내장기관을 피해가며 막대기를 천천히 망치로 두들겨 막대기 끝이 복부를 뚫고 어깨 밖으로 나오게 한다. 그러면 마치 막대기에 꿰인 짐승의 고깃덩어리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 다음엔 막대를 세워 사형수가 숨을 거둘 때까지 주변 사람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다. 주말 내내 이어진 폭설로 올 겨울 내내 빙판길에서 살았다. 시내버스를 비롯 중장비 등 운전기사가 많은 우리 방송 애청자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것이 없을 터이고, 문자 참여조차 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의 애청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휴대번호 뒷자리 7×××을 쓰는 버스기사님은 국립공원 내장산을 운행하는 정읍의 애청자이다. 내장산 종점에 도착해서 자동판매기 커피 한잔을 마시며 문자로 내장산의 풍경을 전해주는데, 특히 눈이 내릴 때면 눈길 운전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어김없이 “쨍하고 해 뜰 날”을 신청하곤 한다. 눈길 운전의 어려움, 쨍하고 해 뜰 날의 간절함, 그 절박한 심정을 아는 사람은 안다. “시내버스와 쨍하고 해 뜰 날”을 떠올리니 몇 년 전 눈 오는 날 밤 풍경
학벌없는사회 광주모임(준)이 KBS 광주총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이 "MB식 교육에 가까운 함량미달의 드라마"라는 것이었다. 이 기자회견을 기사로 작성한 미디어스 홈페이지를 보니 댓글이 장난 아니다. 기자회견의 내용과 관계없이 이 단체들을 응원하는 입장에서 이런 공격을 받는 게 마음이 아프다. 물론 이 기자회견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항의 할 거였다면 서울 원정을 가야하는 거 아니었을까? 두 곳 다 광주에만 있는 단체가 아니고 전국적인 시민단체의 광주지부다. 전국의 지부 모두가 모여서 이에 대해 항의하고 제작진을 만나는 시도를 하는 게 더 생산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댓글을 단 사람들 말처럼 시청자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비록, 상황이 언젠가 갔더라도 언제나 비슷한 말을 하진 말자. 그 누구도 엄기영 사장이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질 거라 믿진 않았더랬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장이 '인사'를 못하게 하는 수준이 참 너무 저열하긴 하지만, 미는 힘이 강할수록 버티는 힘이 비례하여 늘어난 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물리학에서만 통용되는 법칙일 뿐 사회는 다르다. 미는 힘은 사방이고 버티는 힘은 언제나 일방, 개인뿐인데 개인에게 너무 기대할 것도 나무랄 것도 없다. 고립은 피할 수 없었고, 이 권력은 하고 싶은 일은 뭐든 되게 하려는 나쁜 습성을 갖고 있잖은가. 괜한 말이 아니라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엄기영 사장, 그 자체는 분명 아니다. 그가 더 버텼어야 했네, 아니네 따위의 논쟁은 누적된 울분을 토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는 없다
세계최대 경제대국 중국과 세계최대 검색엔진 구글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한 두 거인의 힘겨루기는 단순한 정보유통의 통제를 넘어 21세기 세계정치-경제질서 재편과 맞물려 긴 파장을 낳을 듯하다. 서방의 자본과 기술을 디딤돌로 G-2로 부상한 중국이 바로 그 서방의 가치인 정치적-사상적 자유에 도전하고 나섰다. 일정 수준 정보통제를 감수하며 세계최대의 시장을 고수하던 구글이 검열불가로 응수한 것이다.구글은 2006년 4월 중국에 상륙한 이래 부분적인 정보통제를 수용하며 사업을 영위해왔다. 그 까닭에 더러 검색 페이지 말미에 당국의 방침에 따라 검색결과가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천안문 광장’이나 ‘달라이 라마’ 따위가 나오지 않는 것
사람이 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수동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건 세월이 입증해 준다. 마음엔 아직 파릇파릇한 구석이 남아 있는 성싶은데, 몸은 이제 중년의 고개를 확실히 넘어섰다. 몸과 마음의 불균형, 이 때문에 더 나이 든 기분이 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언젠가 아버지 앞에서 아직 전 마음은 젊다는 둥 시답지 않은 얘길 했다가 한 소리 들은 적이 있다. 여든이 다 되신 아버지께서 잠시 뚱하니 날 쳐다보시더니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그건 나도 그래, 이 녀석아.”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건 아무래도 나보다 더 나이 든 분들을 대했을 때보다는 젊은 사람을 대했을 때 같다. 나처럼 젊게(?) 사는 사람도 가끔씩 세대 차이를 느끼거나 당황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크다 보니 이제 자식들을 대하
너의 이름을 뇌 깊숙한 곳에 봉인하던 그때도 지금처럼 온몸이 시린 2월의 겨울이었다. 요한아. 무엇이 그 봉인을 풀었는지 지금 이순간 나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 문득 나는, 너와 달리 나는 졸업까지 했던 우리의 학교와 너의 이름을 검색창에 쓰고 돋보기 버튼을 눌렀다. 다행일까. 포털 한 곳은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사이트는 너의 이름과 죽음의 방법을 적고 '경쟁적 입시교육을 계속 고집하는 시교육청의 무책임함'을 경고하고 있었다. 그랬다. 너는 1995년 2월27일 오전 8시10분, 대구 대륜고등학교 본관 2층 화장실에서 온몸에 석유를 끼얹고 불을 질러 스스로 숨을 끊었다. 너의 죽음은 한 신문에 묵묵히 기록돼 있었다. 신문은 경찰의 입을 빌려 "네 성적으로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겠느
모처럼 포근한 일요일이었다. 매섭다 못해 살벌하던 추위의 끝자락에서 오랜만에 야구를 하러 나섰다. 이제 갓 시작한 사회인 야구팀이건, 구력이 꽤 되는 팀이건 야구를 하는 이들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뭐니 하더라도 운동장의 섭외이다. 그나마 오늘 야구는 행복한 편이었다. 서울엔 도저히 구장이 없어 송추까지 가긴 했지만, 펜스는 고사하고 운동장 전체에 걸려있던 쓰임 모를 만국기를 걷어내야 하긴 했지만, 미니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선 운동장 밖으로 공을 보내면 -1점의 룰을 적용하며 땅볼만 쳐대야 하긴 했지만, 그나마 야구를 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많지 않은데 호젓했고, 시간에 구애가 없어 여유롭기까지 했다. 올림픽을 제패하고, WBC의 강호로 군림하며 프로야구 500만 관중 시대를 이어가고 있지만 국내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