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하루하루 마음을 졸여가며 살아가는 것도 이제 지쳤다. 핵발전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탈핵뿐이다. 하지만 질기디 질긴 생명력이다. 후쿠시마의 재앙이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탈핵운동이 곳곳에서 확산되고 있지만, 핵발전과의 위험한 동거를 유지시키는 힘은 여전히 강하다. 무엇을,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핵발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책, "위험한 동거: 강요된 핵발전과 위험경관의 탄생"은 핵발전이 일상의 시공간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된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우회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지역사회의 포섭과 분할, 그리고 불안의 일상화·내면화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 인근 지역주민들의 인식은 어떻게 변했을까? 이 책
대학 시절 친구의 꿈은 만화가였다. “만화가가 꿈이면, 포탈 웹툰 사이트로 데뷔해야 하는 거야?”라고 묻자, 친구는 자신의 꿈은 ‘출판 만화’이며, ‘단행본 작업’을 하고 싶지, 웹툰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는 이후 꾸준히 자신의 작업을 해나갔지만, 이제는 웹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하기도 한다. 더는 채널과 방식이 개인에게 선택 불가능한 시대, 콘텐츠 제작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던져진 큰 고민이다. 디지털 환경이 변함에 따라 많은 것이 변한다. 기술은 매우 직접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자면 미디어스처럼 심층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매체의 경우, 독자들로부터 “뭐 이리 길게 썼냐”는 이야기를 듣는 일도 생긴다. 실제로 단행본 포맷에 맞춘 콘텐츠들이 웹 환경에서
“Troubled times lead to healing times, I was sad now i’m feeling fine.It’s the taking and the giving that makes this life worth living, Makes this life worth living.I wanna be rich, i wanna be happy, and live inside a love that shines bright enough to last a lifetime.I wanna be rich, more than a fantasy. Ride the winds and fly, Spread your wings and fly. Because, its all a state of mind.
저자 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 이세진 옮김 출판 더퀘스트 펴냄 | 2014.05.23 발간 거절을 못해서 생긴 일이었다. 1년 넘게 만난 적 없고 페이스북으로만 소식을 접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사회적 의미가 있는 소셜 페스티벌을 하는데 재밌을 것 같으니 함께해보자는 것이었다. 설명을 듣고 “재밌을 것 같네요” 한 마디 했다가 회의에 나가게 됐고, 그러다 행사 당일 사회를 보라는 제의를 받았으며, 소셜 페스티벌을 홍보하면서 밝힌 참여하는 사람들 명단에 나까지 올라가 있었다…. 뭔가 발 빼기엔 애매한 상황이 돼있었다. 난 내가 거절을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거절 잘하고 잘 받아들이기 위원회(거잘잘받, www.facebook.com/geojeol)’도 만들고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지 한 달이 더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나는 SNS에 인문사회 신간서적을 스크랩해 두곤 해서 종종 책에 대한 질문이나 의견을 받을 때가 있는데, 회의적인 어투로 쓰인 장문의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 질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저도 한때는 공부하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공허할 뿐입니다. 역사, 철학, 인문학, 민주주의에 대한 몇 권의 책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엇을 기여했나요? 박제되고 삭막한 원칙 몇 개와 개념정의 따위로 어떻게 참사를 막고 우리 삶을 바꾸나요? 그런 것에 탐닉하느니 차라리 수구세력을 제압할 수 있는 기술이 이 사회에는 더 도움이 될 거 같군요.” 사실 이 질문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책을 읽는 것이 항상 세상을 바
제 목: 세계문학단편선 07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저 자: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출판사: 현대문학 1. '일베충' 요즘 시대의 화두 중 하나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부는 극우적인 움직임이다. 일본의 ‘넷토우요(ネットウヨ, 인터넷 우익)’나 우리나라의 ‘일베충’은 물론이고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 등지에도 극우적인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오해를 감수하고 극론을 말하자면, 나 개인적인 좁은 시야에서는 극우적인 움직임의 추종자에게서 공통적인 인상을 발견하곤 한다. 극단적 주장, 히스테리, 절대성과 순수성에 대한 숭배와 과몰입, 자신을 향한 강한 열등감, 그리고 그 반동으로 나타나는 나르시시즘이나 거대하고 절대적인 존재에 귀의하고자 하는 성향, 등등. 그러나 이는
친애하는 당신에게제가 글쓰기를 끔찍하게도 싫어한다는 사실을 말씀드린 적이 있던가요? 그렇습니다. 책을 만들고 있으니 따지고 보면 글밥을 먹고 산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도, 비교적 최근에야 느낀 것이지만, 글 쓰는 것이 싫습니다(글을 쓰기 싫어하는 자의 편지를 당신께선 기꺼이 읽어주고 계시니 저의 무례를 용서하세요).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보지요. 초등학생 때 밀린 방학일기 쓰는 것이 귀찮아서 간단하게 써버릴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무엇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는 어느 날의 일기를 (아마 하릴없이 티브이나 봤을 것이 분명한 무수한 나날 중 하나) 시를 써서 채워버렸습니다. 거실에서 배를 깔고 누워 베란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오늘 하늘 색깔이 어쩌고 구름 어쩌고 ‘개똥’에 가깝게
시국이 이런 때에 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부끄럽게도 일중독 강남좌파라서, 강남좌파 워커홀릭이 아니라. 그리고 이 지면이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야심을 숨기는 것은 너무 중요한 문제였고 힘든 일이었다. ‘야심’이나 ‘경쟁’은 그 자체로 가치가 내재된 단어로 들리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사전에 있는 야심(野心)의 뜻 중 두 번째는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욕망이나 소망’이다. 이 단어가 풍기는 냄새가 싫다면 비전이나 사명으로 바꾸어도 좋다. ‘의미’를 찾아야 일할 수 있는 인간, 그 의미를 ‘일’ 안에서 발견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며, 마침내 그 ‘의미’를 가장 잘 구체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의 일을 설계하면서 쌓여있는 문제를 아주 창의적으로 해결할
하비의 (데이비드 하비, 한상연 옮김, , 에이도스, 2014)를 읽었다. 이 책은 사유화와 소유권 너머로 실종된 ‘도시권’을 복원하고, 이를 급진적으로 주장하기 위한 시도이자 제안이다. 도시권은 우리에게 낯선 단어다. 하지만 도시를 공간과 기능적 배치로 한정시키는 사고에서 벗어나,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과 행위를 포괄하는 총체로 이해하여 구성원들에게 권리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그리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이를테면 ‘탑골공원’은 공원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그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노인들 그리고 그들의 행위와 분리하여 생각하기 어렵다. 같은 이유에서 홍대거리는 홍대거리의 사람들과 행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발현된 독특한 분위기와 분리하여 사고하기 어렵다. 공간은 단순히 지역으로
작가 주: 이 책을 소개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몸을 배배 꼬게 될 것 같다. 내 소개로 이 책을 읽은 이들이 혹시라도 있다면, 내가 쓴 보고서를 읽고 얼마나 비웃을 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남에게 소개하기 전에 너부터 읽지 그러냐는 비아냥거림이 벌써부터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그러나 이전 보고서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한 사람으로서, 나 자신과 타인을 이롭게 할 만한 좋은 정보가 있는데 어찌 나누지 않겠는가? 이전 보고서를 통해 번뇌의 봉인에서 해방되길 기원했던 나는 이번에는 당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봉인에서 해방되기를 기원하며 이 보고서를 쓴다.‘아리스토텔레스의 봉인’이라는 말은 일본의 유명한 인지과학자이자 경기 디베이터(Debater)로도 활동한 토마베치 히데토(苫米地英人)가 쓴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은 늘 뜨거운 화두였다. 한일관계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식민지배와 과거사 문제사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양국간의 감정은 늘 갈등의 불씨가 되어왔다. 그러한 점에서 일본은 분노와 경계 그리고 우려의 대상이었고 일본의 우경화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한 주제는 한국 언론의 단골 주제였다. 특히 아베 정권 출범과 더불어 이러한 성향이 보다 본격화됨에 따라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그 바탕이 되고 있는 일본 내부의 내셔널리즘의 활성화는 더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현상을 일본 사회 내부의 동학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현재의 우경화와 내셔널리즘의 흐름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누적된 원인이 표면화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에 정말 재미있게 본 미국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으니 제목은 밝히지 않겠다. 다만 총총히 빛나는 별들이 가득한 밤하늘로 끝을 맺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게오르그 루카치가 쓴 의 첫 대목이 떠올랐다.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는 이 도입부를 통해 별이 빛나는 창공에서 별자리가 엮어낸 이야기인 그리스 영웅 신화와 서사시를 소설의 기원으로, "신에게서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 별이 총총 가득한 하늘을 우리시대에 가장 많은 자본과 노력, 시간이 투여된 매체인 미국 드라마에서 보게 되니 기분이
한겨레 주말판의 고경태 에디터와 식샤할 기회가 있었다. 고경태 에디터는 내게 “의 에디터로서 가장 신뢰하고 글을 기다리게 되는 필자”에 대해 물었다. 나는 ‘가장(best)’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것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대충 얼버무린 뒤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저도 ‘가장’에 대한 대답은 어렵긴 한데, 개인적으로 정희진님의 글을 기다리게 됩니다”라고 답했다. 정희진님이 누구신지 생각하며 잠깐 멍 때리고 있자, 그는 약간 의아한 기색을 띄며 “ 쓴 정희진님이요.”라고 재차 확인해주었다. 괜한 자격지심이 들었다. 그 말이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책을 읽지도, 심지어 들어보지도 않았냐’는 비판처럼 느껴져 괜히 혼자 찔렸다. 그래서 읽었다, !
여행을 계획하는 일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의 감정 상태와 비슷하다. 그가 자꾸 생각난다. 마구 보고 싶다. 그가 보내준 문자를 하릴없이 들여다보듯이, 휴가를 낼 날짜를 가늠해보기 위해 달력을 이리저리 넘겨본다. 일하다가 멍하니 그 사람 생각을 하듯이, 업무 내용이 펼쳐진 파일을 뒤로하고 여행사 사이트에 방문한다. 어쩔 수가 없다. 무척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은 설레게 하는 대상에게 더 깊이 빠져버리는 것뿐이니까. ‘그가 날 좋아하는 걸까’ 하고 헷갈려 하는 마음은 ‘그때 휴가를 낼 수 있을까’ ‘비행기 편은 있을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과 어쩜 이리 똑같은지. 그러다 구체적인 계획이 서서 비행기 티켓팅이라도 하는 날엔 그 사람이 내게 사귀자고 고백한 것처럼 미친 듯이 심장이 뛴다. ‘그 사람이
잡담은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쓸데없는 게 어디 있으랴. 출근길 지하철에서 상사를 만나 영혼 없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별로 친하지 않는 동료를 만나 공기의 무게를 실감할 때면, 잡담이 세상에서 가장 절실한 말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지 않는가. 소개팅은 어떤가. 말주변이 모자라거나 숫기가 없어도, 상대가 마음에 든다면 무슨 말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야 할 터, 진심을 바로 꺼내면 상대에게 부담을 줄지도 모르니 분위기를 무르익게 만들 잡담이 인생을 바꿀 기회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과 으로 잘 알려진 일본 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에서 잡담이 의미 없는 이야기, 실없는 이야기인 건 맞
작가 주: 당신에게 불교는 어떤 이미지인가? 스님? 향냄새? 통통한 금색 아저씨 불상? 기분 좋게 울리는 목탁소리? 뭐라고 말하는 지 알 수 없는 스님들의 염불소리? 무서운 표정으로 포즈를 잡고 절간 입구를 지키는 사천왕상? 산 속에 숨은 욕심과 번뇌와는 무연한 청정한 진리의 세계? 얼마 전 사람들이 사재기했던 故 법정 스님의 속의 탐진치(耽嗔痴)를 버리고 몸을 가볍게 하라는 가르침? 아니면 성철 스님? 숭산 스님? 현각 스님? 혜민 스님? 혹시 혜밑 스님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이미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답은 ‘무소유’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난 방하착(放下着, Let go)을 실천하면 모든 것을 집착 없이 받아들이게 되고, 설령 떠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아 큰 지복과 환희를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러니까 지난 1월 17일에 올라온 “픽업 아트의 모든 것 : (1) 이론 편”(링크)으로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각은 3월 7일 오후 10시 58분이고, 결혼식까지는 14시간 하고도 2분이 남았다. 14시간 1분. 14시간 0분.13시간 59분. 13시간 5… 아니, 그만두자. 그건 나의 결혼식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내 아내의 결혼식이라고 해야겠지만, 나는 지금 식권에 도장 찍는 일도 미룬 채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결혼식을 하루 앞둔 밤에 쓰는 원고라. (나는 잠시 그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이건 미디어스가 악덕 매체라는 뜻일까 아니면 내가 한심하고 게으른 필자(어쩌면 팔자)라는 뜻일
사교육이나 입시교육열풍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내가 제일 먼저 부탁하는 것은 아무도 악마화하지 말고 접근하자는 것이다. 다수 보통의 사람들에게 나쁜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면, 그들을 비난해 봐야 해결되지 않는다. 그 다음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은 현실이 시궁창인데 바로 이상향을 이식하자는 식으로 건너뛰지 말자는 것이다. 이상은 그대로 현실에 발을 디딜 수 없다. 현재에서 한 단계씩 이루어지는 개선이어야 효과도 있고 지속력도 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다수가 배울 내용으로서의 교육과 선발되는 소수가 되기 위한 교육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내용으로서의 교육은 어떤 형태로든 선발에 지장을 주고, 선발에 치중하면 내용 자체를 위한 교육은 축소된다. 위 세 가지 부탁을 역전하면, 지금 벌어
‘대항해 시대’라는 게임을 아시는가? 여자인 내가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게임들은 고전 게임이었다. 나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로 게임에 입문(?)한 ‘포가튼 사가’와 같은 PC용 턴제 RPG의 열광적인 플레이어였다. PC 게임 잡지가 넘쳐나던 시절이라 부록으로 증정 받은 ‘매타녀’와 ‘파랜드 택티스’와 같은 게임도 좋아했다. 쉬운 인터페이스 때문에 육성시뮬레이션도 좋아했는데 국민 게임인 ‘프린세스 메이커’시리즈, 쉽다는 이유로 남성용 연애 육성 시뮬레이션(?)인 ‘포토제닉’이나 ‘에베루즈’나 ‘두근두근 메모리얼’ 류의 게임도 열심히 했다. ‘마법사가 되는 방법’ 등의 아케이드 게임을 거쳐, ‘삼국지5’를 밤 새워 플레이한 후 동 터오는 새벽에 본 엔딩은 눈물 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이후 ‘롤러 코
‘주말판 서평 지면 두 개’를 처음 기획할 때 기자는 필진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가끔씩 스스로도 서평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진들이 대체로 마감을 잘 지켰고, 기자는 바빴으며, 다소의 게으름까지 겹쳐 2013년 7월부터 72건의 서평이 쌓이는 8개월의 시간 동안 스스로 서평을 쓰는 일이 없었다. 오늘의 서평 역시 ‘지면이 빵구나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직접 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책이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기자는 윤여준 새정치추진위 공동위원장과 제법 인연이 있다. 이 책은 ‘메디치미디어’ 출판사가 직접 책을 내기 위해 기획한 윤여준의 열 개의 강연 및 질의응답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그 열 번의 강의의 사회자가 바로 기자였다. 강연이 실행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