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의 도입부에서, 화림과 봉길을 차에 태워 가는 의뢰인 박지용의 회계사는 박지용 가족을 이렇게 형용한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들, 그러니까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차후 박지용 가족이 친일파 후손임이 밝혀지는 극 중 사실에 비추면 저 말은 의뢰인의 출신에 관한 궁금증을 차단하려는 의도라고 해석될 수 있다.한편, 태어날 때부터 부자란 표현은 부의 대물림이 마치 유전적 형질의 계승처럼 자연화된 현상으로 여겨지는 이데올로기에 부합한다. 어떠한 사회경제적 원인과 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밑도 끝도 없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2010년대 이후 사회에 새롭게 정착한 단어를 꼽자면 '팩트'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물론 팩트(Fact)는 신조어가 아니다. 사실을 뜻하는 영어 단어지만, 언젠가부터 인터넷에선 한국말을 놔두고 굳이 팩트란 말을 쓰는 경향이 우세해졌다. '팩트체크'는 공론장에서 관용어가 됐다. '팩트 폭력', 줄여서 ‘팩폭’ 같은 말이 파생되며 유행어가 된 것도 물론이다.팩트의 용례에서 주목할 점은 팩트의 반대말이 ‘선동’이나 ‘날조’로 통한다는 점이다. ‘선날승’ (“비겁하게 팩트 가져오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선동과 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국 언론 BBC가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의 열애설에 관해 기사를 발행했다. ‘케이팝 스타 카리나 연애 공개 후 사과하다’(K-pop star Karina apologises after relationship goes public)이다. 아이돌이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사과를 하는, 케이팝 산업의 반인권적이고 억압적인 속성을 꼬집었다. 틀린 지적이 아니다. 케이팝은 팬덤 세일즈에 매출을 의존하는 산업이며, 그 팬덤은 아이돌을 향한 애착감정 및 관계성의 환상과 집착을 통해 구성된다. 케이팝은 원래 그런 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케이팝의 뜨거운 감자는 음악방송 앵콜 무대 라이브다.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1위 트로피를 수상하는 자리가 왜 논란에 오르는 걸까. 이어지는 앵콜 무대를 통해 가창력이 시험에 들기 때문이다. 제대로 부르지 못하면 놀림거리가 되고 영상이 퍼져나가 ‘흑역사’로 남는다. 그런 사례가 이미 여럿 기록돼 있다. 앵콜 무대는 케이팝 가수들의 가창력을 평가하는 공식적 이벤트로 정착해 버린 것 같다. 많은 이들이 심사위원이 돼 합격인지 낙제인지 '패스 앤 패일' 증명서를 발급한다. 이번 주에는 르세라핌이란 그룹이 낙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내달 3월 25일엔 하이브 새 걸그룹 아일릿이 데뷔한다. 아일릿은 하이브와 JTBC가 제작한 오디션 방송 ‘알유넥스트’를 통해 데뷔조가 가려졌다. 하이브가 선보인 르세라핌, 뉴진스의 뒤를 잇는 그룹으로서 “하이브 막내딸”이란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관계도를 그려보면 아일릿은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 소속이다. 역시 오디션 방송을 통해 데뷔한 엔하이픈과 한솥밥을 먹는 ‘남매 그룹’이라고 봐야 한다.아일릿은 성공할 수 있을까? 대형 기획사의 새 그룹을 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이다. 신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난파된 클린스만 호의 잔해가 불타오르고 있다. 이번 주 영국 언론 ‘The Sun’의 보도로 부상한 축구 대표팀 손흥민과 이강인의 다툼 설은 국내 언론들의 후속 보도로 기정사실화되었다. 급기야 ‘디스패치’는 이강인이 손흥민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전했다. 소문의 진위는 아직 다 가려지지 않았고, 이강인 측은 이 보도를 반박하는 입장을 냈다. 불화설의 세세한 진위를 따지는 것보다는 이 소식이 아시안컵 실패 이후 대표팀에 대한 여론 위에 얹히고 있는 맥락을 살피는 것이 생산적일 것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컴백은 여러모로 기념비적이다. 아이들은 지난달 29일 두 번째 정규 앨범 ‘2’를 발표했다. 앨범의 면모는 파격적이고 웅장하다. 선 공개곡 ‘Wife’는 가사에 담긴 성애적 표현이 화제와 논란이 됐다. 타이틀 곡 ‘Super Lady’의 MV는 초거대 스테이지를 무대로 백여 명에 이르는 댄서가 동원됐는데, 지난 타이틀곡들의 네 배가 넘는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아이들은 데뷔 칠 년 차를 맞았다. 일반적인 아이돌 계약 기간을 채운 숫자다. 이 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에서 그에 걸맞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포티’는 신조어라기보다 일상어가 됐다. 이 단어는 뉴스 창에서 꾸준히 떠돈다. 인터넷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나이가 많다고 생각되는 유저나 노숙해 보이는 커뮤니티 성향을 “영포티 아무개 유저” 혹은 “영포티 아무개 사이트”라고 부르곤 한다. 이때의 영포티는 “자기가 젊다고 착각하는 아저씨”라는 뜻의 빈정거림이겠다. 40대 미만 젊은 세대와 40대 이상 늙은 세대가 동거하고 있거나 후자가 주류가 된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의 세대 갈등이 엿보이는 현상이다.내가 이 단어를 처음 본 건 2010년대 중반이었다. 당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Love wins”라는 노래 제목이 논란에 오른 후 공개된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는 역시 많은 말을 부르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구호를 가져다 썼다는 비판 이후 “Love wins all”로 제목이 바뀌었는데, 뮤직비디오에선 이성애자 장애인 배역이 등장한다. 아이유와 방탄소년단 뷔가 각각 말 못 하고 앞 못 보는 이들로 분해 로맨스를 펼친다.MV에는 ‘대혐오’를 표상하는 큐브 조형물이 두 사람을 쫓는 등 해석을 독촉하는 상징들이 직접적으로 연출돼 있다. MV 같은 이미지 콘텐츠를 해석하는 건 케이팝 팬들의 즐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배우이자 가수인 아이유가 논란에 올랐다. 그는 2년 만의 신보 발매를 앞두고, 앨범 콘셉트와 선공개 곡을 알리는 편지를 써서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렸다. 이 편지는 “대혐오의 시대”라는 시대 규정으로 시작해 “사랑하기를 방해하는 세상에서 끝까지 사랑하려 애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한 생각을 담은 “Love wins”라는 제목의 ‘팬송’을 소개했는데, 이것이 성소수자 운동의 구호로 쓰이는 문장이라는 비판이 나왔다.성소수자 운동의 맥락과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이 흐려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박진영은 지난 연말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유행을 좇아 슬릭백 챌린지를 감행했지만 전혀 미끄러지지 않는 몸동작은 도열한 직원들의 영혼 없는 환호성과 부조화를 이루며 놀림거리가 됐다. 청룡 영화상 축하 공연에선 시종일관 무참하게 음정을 이탈하는 목소리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배우들과 어우러져 폭발적 반응을 불렀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많은 이에게 웃음을 줬지만 박진영에겐 뼈아픈 경험이었을 것 같다. 그가 평소 음악에 관해 완벽주의를 지향해 왔고, ‘딴따라’를 자임하며 무대에 큰 애착을 피력해 왔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한국 남성들의 세계관은 이상하다. '어떤' 한국 남성들이 자신을 둘러싼 권력관계를 규정하는 모습을 보자. 한국에 사는 남성들은 한국에 사는 여성들보다 약자다. 이들의 믿음이 이렇다는 걸 더 설명할 필요는 없다. 기성세대 남성은 과거 호황의 기득권을 독점한 채 자기 세대가 저지른 성차별 업보를 ‘이대남’에게 전가하는 위선자다. 동성애자 남성은 서울 시가지를 행진하며 자신들의 성적 정체성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PC주의 점령군이다. 장애인들은 법을 농단하는 ‘기습 시위’로 출근길 지하철을 점거하는 테러범이다.아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배우 이선균이 사망했다. 이선균은 마약 투약 혐의와 룸살롱 실장과의 추문으로 비난받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총구를 맞은편으로 돌려 성토의 말을 난사한다. 마약 검사 결과가 음성이 나왔음에도 포기하지 않은 경찰의 집요한 수사와 피의사실 흘리기, 실장과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언론 보도, 그리고 이 모든 가십을 맛보고 즐긴 군중이 손가락질당한다. 다 맞는 말이다. 틀릴 리는 없다. 수사 내용과 혐의점은 어디서 새 나오는 건지 궁금할 만큼 넘쳐흘렀고, 사안과 본질적 연관이 없는 실장과의 관계는 솔깃한 대목이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은 왜 제목이 서울의 봄일까 궁금증이 드는 영화다. 서울의 봄은 박정희 사후 한국에서 민주화를 위한 희망이 열린 독재 권력의 공백기를 칭하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그런 희망을 인지할 수 있는 민주화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서사 무대는 군 내부로 철저히 제한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학생들의 모습 혹은 민주주의를 향한 그들의 기대감은 재현되지 않는다. 대신, 서울의 봄을 무산시킨 존재, 전두광의 반란 과정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민주화 항쟁 대 신군부가 아닌, 반란군과 진압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올해는 힙합 탄생 50주년이다. 연말이니까 50주년을 기념할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힙합의 태동은 1973년 여름이라고 합의 돼 있다. 힙합의 아버지라 불리는 DJ 쿨 허크가 어느 파티에서 턴테이블 두 개로 노래의 브레이크 구간을 반복해서 트는 기술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를 선보인 날이다. 이것이 샘플링과 룹을 기반으로 하는 클래식한 힙합 작법의 견본이 되었다. 이렇듯 힙합이 첫울음을 우는 분만실이 된 것은 흥겨운 파티장이었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이 탄생의 순간을 힙합의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영화배우 정우성이 화제다. 정우성은 흥행 가도를 달리는 영화 에 출연했다. 개봉을 맞아 홍보 차 출연한 유튜브 채널에서의 발언이 반향을 불렀다. ‘한국 영화가 어려우니 극장에 와달라는 영화인들의 당부는 염치가 없다’면서 배우들부터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고 현실과 대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영화계에 경종을 울리는 직언처럼 여론의 호평을 샀다. 티켓은 비싸고 영화의 질은 저하되는데 관객의 책임감에 호소하는 것이 무책임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나아가서 사람들의 소비자 심리가 발현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게임 ‘메이플스토리’ 홍보 영상에서 여성 캐릭터 엔젤릭 버스터가 ‘집게손가락’ 포즈를 취했다고 논란이 된 사건의 전모는 잘 알려진 상태다. 넥슨은 ‘남성 혐오’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래픽을 제작한 하청업체는 사과문을 냈다.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 여성 애니메이터가 개인 SNS에서 했던 발언이 유포되면서 사안은 ‘페미’ 애니메이터의 ‘남혐’ 행각이라 규정되었지만,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저 집게손 그림을 그린 건 해당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40대 남성이었다고 한다.이 논란에 관해선 많은 비판과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국가대표 축구 선수 황의조는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혐의로 피의자가 됐다. 하지만 21일 월드컵 지역예선 중국전에서 교체선수로 출장했다. 대표팀 클린스만 감독은 "황의조는 우리 팀의 일원"라고 말했다. “사생활 논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사실이 확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뛸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축구협회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언론에 전했다. 영상 유출 피해자가 선임한 이은의 변호사는 축구협회와 클린스만 감독을 비판하며 국가 대표팀 선수의 자격과 지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엠넷 시즌2에 참가했던 일본 댄스크루 츠바킬이 메가크루 퍼포먼스 비디오를 공개했다. 츠바킬은 멤버 개개인의 뛰어난 댄스 실력과 매력적인 캐릭터로 인기를 얻었지만 지난 9월 방송 4회 차에서 처음으로 탈락하는 팀이 되었다. 시청자들은 아쉬워했고, 츠바킬 역시 각자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미진한 기분을 피력했었다. 메가크루 퍼포먼스는 츠바킬이 데스매치 미션에서 생존했다면 다음 미션으로 수행했을 과제다. 해당 비디오는 츠바킬 멤버들의 아쉬움을 달래고 팬들의 애정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으로
[미디어스=윤광은 칼럼] 얼마 전 보이그룹에 관한 흥미로운 대화가 있었다. 보이그룹 ‘갓세븐’ 출신 뱀뱀의 유튜브 채널에 보이그룹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의 연준이 출연했다. 연준은 보이그룹은 걸그룹에 비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고, 뱀뱀은 그룹으로 활동하던 시절 비슷한 생각을 했다며 동의했다. 누구나 수긍할 만한 얘기이고, 보이그룹에 관한 일반적 인식이다.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하다, 다르게는 보이그룹은 대중성이 약한 대신 팬덤이 강하고 걸그룹은 대중성이 강한 대신 팬덤이 약하다.